<스트레인져 댄 픽션>

 

별점: ★★★★☆ 
한 줄 평: 역사적 죽음과 일상적 삶의 대비


 

  영화의 주인공인 해럴드 크릭은 손목시계와 함께 모든 일상을 숫자로 정형화하며 살아간다. 칫솔질 몇 번, 몇 분에 타야 하는 버스 등 그의 매일의 삶은 같은 방향으로 일정하게 움직이는 손목시계처럼 흘러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해럴드의 머릿속에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해럴드의 일상을 모두 꿰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감정을 그보다 더 잘 알고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의 앞에 벌어질 일들을 예언한다. 마치 그녀의 말대로 해럴드의 삶이 이뤄지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날, 그녀의 목소리가 해럴드가 곧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죽음을 원치 않는데도 말이다.

  목소리의 주인은 소설가 캐런 아이펠로, 소설 속 주인공을 죽이며 소설을 새드엔딩으로 끝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지금 해럴드 크릭이라는 소설 속 주인공을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고 있다. 해럴드는 캐런을 만나 죽고 싶지 않다 말하지만, 소설의 재미와 극적 긴장감을 위해 그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대답만 듣는다. 캐런의 소설이 해럴드의 죽음으로 끝날 것인지는 영화의 결말에 등장한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들도 결국 현실적이지 않은 극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작가가 주제의식을 드러내며 글을 긴장감 있고 흡입력 있게 끌어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죽음과 상실, 고난 등 소위 우리가 ‘갈등’이라고 부르는 요소가 필수적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소설의 재미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과연 그런 극적 요소를 통해 짜인 소설의 플롯이 판에 박힌 듯한 우리 인생보다 더 재밌고 교훈적이며 기록의 가치가 더 큰가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준다.

  죽음이 주는 단절과 허무는 임팩트가 있다. 그러나 삶이 주는 연속성은 ‘그 다음엔?’이란 긴장감이 있다. 죽음의 임팩트는 결국 긴장의 해소로 이어지며 소설은 끝난다. 삶의 미래성은 긴장의 연속이며 계속된다.

  결국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는 모를 일이다. 우린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마침표를 찍기 전 반점과 접속사를 통해 순접으로 이어질지, 역접을 이뤄낼지는 삶의 주체인 우리도 알 수 없다. 다만 긴장감을 가지고 나아갈 뿐이다. 때로는 해소되지 않는 긴장에 지칠 수 있으나 죽음이 언제나 효과적인 긴장 해소 수단인 것은 아니다. ‘극복’이라는 더 할 나위 없는 해피엔딩을 향해 이 긴장은 점점 더 깊어지는 중이다.

  가끔 도저히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을 것 같은 스스로들이지만, 그러한 순간에 영화 속 조력자처럼 등장하는 극적 요소를 기다리며, 걸작이 아닌 그저 그런 작품일지라도 소수의 누군가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그런 삶을 살아나가자.

  참 다행인 것은 우리 인생에 작가는 없다는 것이다.

 

배은서(문과대 노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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