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합법화

부동산과 떼어놓을 수 없어

가구 위주 행정, 허점 가져와

 

  서울시 관악구에서 폭우로 인한 반지하 주택 거주민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반지하 안전에 비상등이 켜졌다.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중 하나인 반지하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반지하, 창고에서 거주 공간으로

  건축법 제2조 제1항 제5호는 반지하를 ‘지하층을 거실로 사용하는 주택’으로 정의한다. 반지하의 역사는 길지 않다. 건축법이 제정된 1962년, 주택의 거실은 지하에 설치될 수 없었다. 경기연구원 남지현 연구위원은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위생과 햇빛이 보장되는 곳에 살아야 한다는 것은 영국 산업혁명 때부터 이어진 상식”이라며 “거주 공간을 지하에 설치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전 세계적으로 형성됐던 시기”라고 말했다. 북한의 청와대 습격으로 남북 간 긴장이 심화된 1970년, 정부는 연면적 200㎡ 이상인 집을 지을 때 주택 지하에 공습 대비용 방공호를 설치하도록 건축법을 개정했다. 이때도 반지하는 비상 대피용이었을 뿐,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1975년의 한국은 경제 성장으로 인구가 수도권에 몰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층에 주택 거실 설치 금지 조항을 완화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반지하에 사람들이 몰리자 정부는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3분의 1만 지상에 노출돼있던 지하 주택을 2분의 1이 노출되도록 1984년 주택법을 완화했다. 이는 주택의 반은 지하에, 반은 지상에 위치한 지금의 반지하가 양산되는 계기가 됐다. 전국에 반지하를 둔 다세대 건물이 우후죽순 지어지기 시작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32만7320가구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 전체 가구의 1.6%다. 1990년대 초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반지하는 2005년 건물 신축 시 주차 공간을 더 확보하도록 주차장법이 강화되면서 신축이 줄어들고 있다. 서울시 관악구의 한 부동산 관계업자는 “30년 전 건물은 지하를 파서라도 주차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비용이 상당히 비싸다”며 “주차장법 강화 이후 기둥을 세운 다음 1층을 주차장으로 만드는 필로티 건물이 유행하면서, 큰돈을 들여 반지하를 신축하는 경우는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성북구 석관동 소재 반지하에 방범창이 설치돼있다.

  폭우마다 거론된 ‘반지하 금지’

  서울시는 지난달 10일 ‘서울시 반지하 대책’을 발표했다. △반지하 신축 금지 △기존 반지하 건물 비거주용으로 전환 △지하에서 지상 이사 시 최장 2년간 월세 20만 원 지원 △공공임대주택 23만 호 신축이 주 내용이다. 반지하 일몰제라고도 불리는 이번 대책은 반지하에 사람이 살지 않게 만들겠다는 강경한 선언이다.

  반지하 금지 선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집중호우 시 반지하 주택이 침수됐다가 복구되는 일은 매년 반복됐다. 1998년 집중호우로 반지하 주택 피해가 극심해 침수 피해가 잦은 지역을 ‘재해위험지구’로 지정했다. 해당 지역에는 반지하를 신축할 수 없도록 했으나 건축·개발업자의 집단 반발에 부딪혔다. 2001년 가로등, 신호등 침수에 의한 감전 사고로 반지하 거주민 중 19명이 사망하자 다음 해에 지하 주택 침수 방지방안 회의를 열어 침수지역 내에서는 주거 용도의 지하층을 신축할 수 없도록 했다.

  폭우가 내렸던 2010년, 침수된 주택 12518동 중 90%가 반지하로 밝혀지며 긴급대책회의가 열렸다. 이후 상습침수구역 내 지하층은 건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주거용도 활용이 불허될 수 있도록 건축법을 개정했다. 반지하 신축을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건축위원회는 상습침수구역에 반지하 밀집 구역이 있는지를 심의할 뿐, 반지하 하나하나가 주거용으로 적합한지를 판단하지는 않고 있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 주택 실태를 논의 대상으로 끌어올렸다. 국토교통부는 그해 ‘주거복지로드맵 2.0’을 발표해 반지하 가구를 최저 주거기준 미달 가구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최저 주거기준은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한 기준으로 최소 주거 면적, 환경 등이 포함된다. 최저 주거기준 준수는 권장 사항이기에 미달하더라도 집주인이 처벌받지 않는다. 최저 주거기준 미달 가구로 지정하면 공공임대주택 이주 지원대상에 선정될 수 있다. 이주 시급 가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반지하도 전수조사 대상에 포함됐으나 코로나19로 제대로 된 데이터가 구축되지 못했다.

  올해 침수 피해는 이전 데이터를 토대로 미리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데이터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성과 없이 끝났다. 부동산 문제가 엮여있기 때문이다. 침수 예상 지역과 깊이를 드러내는 내수침수위험지도가 20년 전부터 만들어졌지만, 공개 시 부동산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는 우려로 서울시 426개 행정동 중 9개 동만이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경기연구원 남지현 연구위원은 “공공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시민을 위험에서 구제하는 것”이라며 “재해 위험이 부동산 가격에 반영되는 건 당연하다”고 전했다. 일본에서 집을 거래할 때는 반드시 지진·화산 분화·태풍 예상 진로나 소요 시간, 위험지역과 대피소 등이 적힌 ‘해저드 맵(Hazard Map)’을 첨부해야 한다. 이와 같은 재해 대비 정도나 내진설계는 주택 가격 결정에 큰 영향을 준다. 반면 우리나라는 재난 관련 요소가 주택의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반지하는 다가구 주택에 위치해 임차 관계가 복잡하다. 남지현 연구위원은 “건축사는 조금이라도 임대료가 많이 나오는 건물을 짓는 게 이득인 만큼 정부, 건축사,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반지하를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도시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국가가 집주인에게 어떻게 보상할지가 더 중요하다. 이용숙(정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주택 대책을 세울 때 정책 목표를 부동산 시장 안정화와 주거 불평등 해소 중 어디에 둘지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 성정윤·임예영 기자 press@

사진 | 양수현 기자 posi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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