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의 북쪽’이라는 뜻을 가진 ‘성북(城北)’. 본교 서울캠퍼스가  있는 성북구는 조선시대 도성으로 접근하는 주요 골목이었으며 양반들의 별서(별장)가 여럿 있을 정도로 경관이 좋았다. 일제강점기에는 돈암동을 중심으로 개발이 이뤄져 새로운 중심지로 성장했고, 2000년대 성북천의 복개를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익숙한 캠퍼스에서 빠져나와 관찰한 성북구는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을까? 역사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곳, 각양각색의 매력을 가진 한양도성 성곽마을, 색다른 문화공간. 성북구의 참멋이 담긴 여덟 군데를 선정해 소개한다.

 

 

성곽을 따라 들어선 달동네, 북정마을

  안암역에서 보문역 방향으로 1111번 버스를 타고 20분을 가면 북정마을 입구에 다다른다. 조선시대 때 궁궐에서 사용하는 메주를 만들던 곳으로, 매해 철이 되면 사람들로 마을이 북적거린다는 의미에서 ‘북정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지금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도 불리는 북정마을, 점점 가팔라지는 오르막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알록달록한 지붕들과 함께 탁 트인 성북구의 전경을 볼 수 있다. 북정마을에 오랜 시간 거주한 장순복(여·85) 씨는 점차 과거의 모습이 사라지는 마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도 여기서 살다가 돌아가셨고 내 동창생들도 여기 정말 많아. 쓰러지기 직전이지만 참 정이 많이 가는 동네야.”

지붕 위에서 화초를 가꾸고 있는 북정마을 주민의 모습. 위험해 보이지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태연한 그의 모습에서 북정마을의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다.
지붕 위에서 화초를 가꾸고 있는 북정마을 주민의 모습. 위험해 보이지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태연한 그의 모습에서 북정마을의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다.
북정마을에서 사람들에게 방 세 칸을 세주며 살고 있는 장순복 씨. 인자한 웃음에는 북정마을을 사랑하는 마음도 담겨있다.
북정마을에서 사람들에게 방 세 칸을 세주며 살고 있는 장순복 씨. 인자한 웃음에는 북정마을을 사랑하는 마음도 담겨있다.

 

이름만큼이나 매력적인 369마을

  한양도성의 성곽마을 중에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다. ‘369마을’이다. 이곳은 재개발 추진 당시 ‘삼선6구역’으로 불렸는데 그 중 글자 3개를 모아 만든 이름이다. 마을의 정체성과 문화를 바탕으로, 주민이 주도하고 화합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마을, 이 세 가지 가치를 지닌 언덕(三育邱)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마을 카페인 369마실에서 8개월째 일하는 진소정(여·22) 씨는 마을의 매력으로 ‘연결성’을 꼽았다. “사랑방, 예술공방, 마을공작소 등 마을의 모든 요소가 잘 연결돼 있어요. 사랑방에서 점심을 먹고 저희 카페로 와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티켓도 있답니다.”

  마을 일대에선 5, 6, 9, 10월의 매주 토요일 ‘성곽 여가 풍류’ 행사가 진행된다. 마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369 성곽 마을 여행’, 마을 어머니들께서 직접 만든 비빔밥을 대접하는 ‘369 어머니 밥상’, 지역 예술인들이 펼치는 거리 문화 축제인 ‘369 풍류 한마당’, 지역 청년 작가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전시한 ‘369 성곽 예술제’로 구성된다.

한양도성 백악구간 부근인 369마을. 정원의 꽃들과 이곳의 랜드마크인 카페 369마실은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양도성 백악구간 부근인 369마을. 정원의 꽃들과 이곳의 랜드마크인 카페 369마실은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369사랑방에서 사람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369마을 어머니들이 직접 만든 비빔밥과 후식으로 식혜가 제공된다.
369사랑방에서 사람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369마을 어머니들이 직접 만든 비빔밥과 후식으로 식혜가 제공된다.

 

숲과 어우러진 삼태기마을

  상월곡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나지막한 언덕이 펼쳐진다. 이를 따라 올라가면 삼태기마을이 보인다. 높은 곳에서 본 마을의 모양이 소쿠리를 닮았다 해 이름 붙여진 삼태기마을.

  그리고 이곳에는 삼태기 숲이 있다. 상쾌한 피톤치드 향과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이자 이곳이 도심 속 공간이라는 것을 잊게 만든다. 숲에는 산책로뿐만 아니라 연못, 오두막, 흔들다리 등이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삼태기 숲 해설사는 “이곳에는 유독 물까치가 많다”며 “사뿐사뿐 걷는 다른 새들과 다르게 통통통 뛰노는 물까치 소리를 가만히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삼태기 숲의 진정한 묘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삼림이 울창하게 우거진 삼태기 숲. 더워지기 시작하는 요즘 숲의 그늘은 찾는 이들에게 휴식처가 된다.
삼림이 울창하게 우거진 삼태기 숲. 더워지기 시작하는 요즘 숲의 그늘은 찾는 이들에게 휴식처가 된다.
삼태기 숲을 방문한 지역 주민이 맨발로 숲길을 걷고 있다. 발바닥의 감촉을 오롯이 느끼며 자연을 만끽한다.
삼태기 숲을 방문한 지역 주민이 맨발로 숲길을 걷고 있다. 발바닥의 감촉을 오롯이 느끼며 자연을 만끽한다.

 

도심 속 거대한 산책로, 오동숲속도서관

  월곡역에서 내려 월곡산 자락길을 따라 오동근린공원으로 들어오면 도심 속 거대한 산책로를 가진 오동숲속도서관에 도착한다. 도서관은 하나의 산 같다. 창밖으로 햇살과 숲의 흔들림이 눈에 담긴다. 도서관 내부도 나무로 가득하다. 나무 책꽂이는 벽에 붙어 있지 않고 중간에서 또 하나의 공간을 구성한다. 책꽂이가 만든 네모난 공간 안에는 자유롭게 비치된 의자들이, 공간 밖에는 숲을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북카페가 있다.

  마치 미로 같은 순환구조의 도서관에는 7600여 권의 도서가 비치됐다. 방치됐던 목재파쇄장에서 먼지와 소음이 사라지고 나무로 만든 무언가가 새로운 공간을 아늑하게 채워가는 곳. 사계절 숲속의 변화를 책과 함께 맞이할 수 있는 도서관. 단순한 형태의 직선적 도서관이 아닌 마을의 율동이 살아있는 도서관이다.

모녀가 나란히 앉아 숲을 바라보며 책을 읽고 있다. 쌓아놓은 책더미에서 일상의 여유와 소중함이 느껴진다.
모녀가 나란히 앉아 숲을 바라보며 책을 읽고 있다. 쌓아놓은 책더미에서 일상의 여유와 소중함이 느껴진다.
굽이굽이 접혀있는 지붕과 나무로 이뤄진 도서관은 숲속 오두막을 연상케 한다. 도서관 둘레에는 회랑이 있어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쉴 수 있다.
굽이굽이 접혀있는 지붕과 나무로 이뤄진 도서관은 숲속 오두막을 연상케 한다. 도서관 둘레에는 회랑이 있어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쉴 수 있다.

 

방치 공간이 문화공간으로, 천장산 우화극장

  삼태기 숲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천장산우화극장이 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객석이 고정된 일반 무대와 달리 공연의 성격과 필요에 맞춰 공간 전환이 가능한 블랙박스 무대라는 점이다.

  이곳은 월곡, 장위, 석관동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모임 ‘월장석 친구들’이 성북문화재단과 협치해 만든 공간이다. 방치됐던 성북정보도서관 지하 공간을 개발해 극장과 공연 연습이 가능한 스튜디오가 탄생했다.

  지난 18일부터 21일까지 ‘국가공인 안마사’라는 연극이 진행됐다. 월장석 친구들은 삼태기 마을에서 거리극을 진행하기도 한다. 천장산 우화극장은 단순히 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 지역마을까지 확장해 주민들과 관계를 형성해가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다.

가로 15.7m, 세로 9.45m, 높이 4.1m의 블랙박스 무대인 천장산우화극장. 전시를 위해 무대를 미로 모양으로 만들어 활용하는 모습이다.
가로 15.7m, 세로 9.45m, 높이 4.1m의 블랙박스 무대인 천장산우화극장. 전시를 위해 무대를 미로 모양으로 만들어 활용하는 모습이다.
극장 옆 작업실의 벽면에 다양한 종류의 무대 소품이 걸려있다. 전부 월장석 친구들이 자체 제작했다.
극장 옆 작업실의 벽면에 다양한 종류의 무대 소품이 걸려있다. 전부 월장석 친구들이 자체 제작했다.

 

벗어나고 싶으나 등지고 싶진 않을 때, 길상사

  한성대입구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버스가 한 번에 텅 비는 정류장에 도착한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연등이 가득 걸린 절, 길상사다.

  숲속의 길상사와 우거진 계곡을 보고 있노라면 불과 20년 전엔 이곳이 요릿집이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힘들다. 골짜기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을 건너면 고즈넉이 길상화 공덕비가 보인다. ‘길상화’ 김영한 보살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받아 10년 동안 시주를 청했고, 1997년 길상사는 그녀가 운영하던 *요정 자리에 들어섰다. 그녀는 ‘푹푹 눈이 날이는 날’ 유언대로 길상헌 뒤 뜰에 뿌려졌다. 산골로 가고 싶으나 세상을 등지고 싶지는 않을 때, 굽이굽이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맡겨 도착한 길상사에선 내면의 고요한 외침만이 울려 퍼질 것이다.

  *요정: 고급 요릿집

연등 공방인 적묵당 앞 벤치에서 방문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편안한 표정을 띈 이들 뒤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연등이 걸려있다.
연등 공방인 적묵당 앞 벤치에서 방문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편안한 표정을 띈 이들 뒤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연등이 걸려있다.
길상화 보살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덕비. ‘길상화’ 김영한 여사는 자신의 건물과 대지를 모두 시주해 지금의 길상사를 지었다.
길상화 보살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덕비. ‘길상화’ 김영한 여사는 자신의 건물과 대지를 모두 시주해 지금의 길상사를 지었다.
 

 

심우장에서 소를 찾다

  길상사에서 북정마을의 좁은 골목길 사이로 보이는 경치를 보며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산 중턱에 있는 심우장에 도착한다. 심우장은 한용운 선생이 1933년부터 1944년 입적할 때까지 기거한 곳이다. ‘소 찾는 집’. 자신의 본성을 찾는 집. 대문을 들어서면 한용운 선생이 직접 심은 향나무가 마당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조선총독부를 마주하지 않고자 북향으로 지어진 집 안에는 볕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심우장을 한용운 선생의 배경에만 집중하면 섭섭하다. 심우장을 유심히 살펴보던 정종규(남·58) 씨는 “교과서적인 잣대 속에서 한용운을 바라보는 자세를 떨쳐버릴 수 있는 곳”이라 말했다. 스님, 독립운동가, 철학자가 아닌 나와 같은 그저 한 평범한 인간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공간. 북쪽으로 틀어진 창을 보며 그의 시선대로 세상을 눈에 담아보려니 생각이 많아진다. 세상살이에 치여 나를 잃어버리면 우리는 어디로 떠날 수 있는가. 심우장의 북향 툇마루에 앉자, 차라리 잃어버린 나를 찾을 필요가 없음을 깨달을지 모른다. 찾은들 지닐 수 없으니까.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심우장. 이곳에서는 매년 6월 29일 한용운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다례제가 열린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심우장. 이곳에서는 매년 6월 29일 한용운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다례제가 열린다.
한용운 선생이 서재로 사용하던 방에 정종규 씨가 앉아 한용운 시집을 읽고 있다. 북향인 방 안으로는 볕이 잘 들지 않는다.
한용운 선생이 서재로 사용하던 방에 정종규 씨가 앉아 한용운 시집을 읽고 있다. 북향인 방 안으로는 볕이 잘 들지 않는다.

 

역사적이면서도 안락한 쉼터, 정릉

  성북구의 역사적 명소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정릉이다. 국내에 있는 묘 중 가장 먼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며 영화 <건축학개론>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정릉은 조선 태조의 두 번째 왕비인 신덕왕후의 능이다. 처음 정릉의 위치는 현 서울 중구 정동이었으나 태종은 정릉이 도성 안에 있는 것이 예에 어긋난다며 현 위치로 옮겼다. 또한 태종은 신덕왕후를 태조의 비로 인정하지 않아 신주를 종묘에 모시지 않았다. 민묘와 다름없는 모양으로 남아있던 정릉은 현종 때가 돼서야 현재의 모습으로 조성됐다.

  이젠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가득 들어선 정릉은 인근 주민들에게 안락한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넓은 터와 산기슭에서 흘러나오는 숲 내음, 졸졸 흐르는 작은 개울까지. 역사의 산실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현세에 녹아들었다.

정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규모가 소박하지만 정자각 뒤로 높이 솟은 봉분과 정갈하게 정리된 터가 그 위엄을 드러낸다.
정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규모가 소박하지만 정자각 뒤로 높이 솟은 봉분과 정갈하게 정리된 터가 그 위엄을 드러낸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홍살문을 방문객이 지나고 있다. 왼쪽은 왕이 제향을 올리러 올 때 다니는 어로이며 오른쪽은 제관이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향로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홍살문을 방문객이 지나고 있다. 왼쪽은 왕이 제향을 올리러 올 때 다니는 어로이며 오른쪽은 제관이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향로다.

 

글·사진 | 나지은·문원준 기자 press@

인포그래픽 | 김성민 기자 meenyminym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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