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2023년 3월 8일, 국내에서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역대 3월 국내 개봉작 중 3위를 기록했다. 역대 일본 영화 및 애니메이션 영화 중에서는 흥행 1위를 기록했고, 2023년 한국 개봉 영화 중에서는 흥행 2위를 기록했다. 그만큼 국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사람이 깊이 공감한 작품이 되었다.

  작품 내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하나 주목해 볼 것은 토지사가 열쇠로 문을 잠그는 방식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토지사와 스즈메가 재난을 일으키는 문들을 닫고 다니는 판타지적인 세계관을 주축으로 한다. 그런데 재난이 튀어나오려는 문은 그냥 잠글 수 없다. 반드시 재난이 일어났던 그곳의 사람들이 살았던 삶을 상상해야 한다. 재난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들이 누렸을 일상을 떠올리며 그들을 ‘기억’해야만 ‘재난의 문’을 닫을 수 있다.

  재난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희생자들의 삶을 기억해야만 한다는 건 어딘지 묘하다. 흔히 재난을 막기 위해서는 다시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점검하고 법령을 개정하며 행정적인 정교함을 더해야 한다는 정도가 상식이다. 재난을 다시 막기 위해서 그들의 삶을, 일상을,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이 누렸을 사랑을, 생명을 반드시 기억하고 상상해야 한다는 건 그저 만화적인, 낭만적인 상상력 정도로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마도 ‘재난’과 관련하여,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란 역시 토지사와 스즈메의 태도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타인의 삶을 상상할 때 재난은 더 이상 타인의 재난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을 상상할 때, 우리는 그의 삶을 가장 아쉬워하면서도 애도하고, 동시에 우리 삶에 감사하며 그로 인해 세상의 모든 삶에 대한 소중함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다고 믿고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일상, ‘다녀올게’, ‘다녀왔어’, ‘주말에는 캠핑하러 가자’, ‘올겨울에는 또 어디를 갈까’, ‘이번 주 금요일에는 이자카야를 가자’ 하며 이어지는 그 모든 순간이 감사해지고 소중해지는 순간, 그때야 우리는 그것을 잃은 그 누군가를 진심으로 애도할 수 있다. 나아가 특별한 누군가의 삶만이 대단하고 소중한 게 아니라, 이 모든 소소한 생명의 연장이 소중하다는 걸 이해한다. 거기에서 인간애가, 재난을 막으려는 의지가, 그래서 잊지 않고 또 남은 소중함을 이어가려는 간절함이 생긴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스즈메가 자신에게 도래했던 어린 시절의 재난에서부터 출발하여, 타인의 재난을 상상하고 이해하며, 특히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한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마음, 즉 그에게 도래한 재난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다시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을 구원하며, 자기 삶, 타인의 삶, 세상 모든 사람의 삶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는 우주적인 여정을 담고 있다. 정의로운 이타심이라기보다는, 그저 세상의 모든 삶이 나의 삶처럼 소중하다는 것을 이해한 바로 그 자리가, 애도와 감사함, 또 다른 재난을 막으려는 의지가 겹치는 곳이다.

  세상 모든 재난을 막을 수 없고, 또 개개인의 삶에는 크고 작은 재난들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그런 재난 앞에서 무엇보다도 그저 그 누군가의 재난을, 온전히 이해하고 상상하면서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기도하는 일이 우리 삶을, 또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지켜줄 것을 믿고 싶은 마음이 있다. 스러져 간 모든 삶을 오늘도 기억해야지, 그러면 나도 작은 재난 하나쯤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르고, 나의 이 작은 삶도 더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또 어쩌면 그런 기억하는 작은 마음들이 모인다면, 이 세상도 조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지 모른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