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결혼지옥>에서 올해 무척 인상적인 편이 하나 있었다. ‘연중무휴 부부’라 이름 지어진 부부의 이야기다. 우선 아내는 흔히 요즘 ‘열풍’이 불고 있는 경제적 자유를 향한 자기 계발에 참여한 사람이었다. 매일 새벽마다 일어나 미라클 모닝을 하면서 노트에 ‘나는 100억을 벌 수 있다’ 같은 글귀를 한가득 써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과거 유치원 교사였던 그녀는 실제로 그런 자기 계발의 힘 덕분인지 음식점을 성공시켜 2호점까지 확장하며 과거보다 큰돈을 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무 열심인 탓일까, 남편과의 관계는 점점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유치원 체육 교사로 만난 남편은 아내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데, 그 일을 매우 버거워한다. 한때는 회 손질을 하면서 양손에 다 밴드를 감고 손이 엉망이 될 때까지 정신없이 일을 해내기도 했다. 두 부부는 과거보다 경제적으로 더 여유로워졌을지는 몰라도, 점점 더 사이는 틀어지고, 특히 남편은 거의 번아웃에 온 것으로 그려진다.

  흔히 ‘경제적 자유’를 향한 자기 계발의 열풍은 ‘100억 언저리’ 어딘가에 이르면, 마치 천국이 보장될 것처럼 속삭인다. 그녀 역시 그런 천국을 믿는다. 그녀에게 100억은 자유와 행복의 상징이다. 그녀는 거기로 도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남편과는 골이 깊어지면서 가정에 사랑은 조금씩 희미해진다. 그녀에게 왜 그렇게 경제적 자유에 집착하냐고 묻자, 그녀는 어릴 적의 결핍을 이야기한다. 어릴 적,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적 있었고, 그것이 집안에 문제를 불러온 트라우마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자기 계발의 열풍은 이런 식의 결핍과 불안, 불균형의 문제와 너무 깊이 착종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한 기복신앙처럼, 우리에게 불안과 결핍을 건드리고, 극단적인 불균형을 추구하면 삶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뀔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 여기에서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기 계발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것이 극단적인 불균형으로 천국을 속삭일 때, 오히려 삶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다.

  남편은 식당 일이 큰돈을 벌어줌에도, 시간이 날 때면 유치원 체육 교사의 일을 한다. 아내는 이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부업으로 돈을 더 벌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에게 ‘유치원 체육 교사’ 일은 완전히 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는 유치원 체육 교사 일이 자기에게는 구원과 같았다고 이야기한다.

  원래 자신감도 없고, 말주변도 없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별로 없었다고 말하는 그는, 유치원 체육 교사 일을 하면서 달라졌다고 했다. 이렇게 자기를 반가워하며 달려오는 아이들, 자기를 그토록 사랑하며 기다려 주는 아이들로부터 치유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 그 누군가가 자기를 필요로 하고 좋아하며 기다린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마치 천국에, 꽃밭에 온 듯했을 것이다. 그는 그때, 자기 자신으로 살아났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별로 ‘돈’도 되지 않는 유치원 체육 교사 일을 놓지 못했다. 아내는 방송에서 그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가 우리 시대에 무척 중요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딘지 극단으로 치닫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든 휩쓸려 갈 수밖에 없는 강렬한 흐름 속에서, 무언가를 잃고 있다. 너무 깊은 불안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어서, 누구든 그 불안을 벗어던질 수 있는 만병통치약을 바라본다. 마약이든, 대박이든, 아파트든,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그것은 사실 우리 불안의 거울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런 와중에, 우리가 정작 가장 깊이 바라보아야 할 나 자신, 그리고 내 곁의 사람은 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보기 시작하면, 정말로 많은 게 달라질 수 있다. 내 안의 나와 내 곁의 사람을 온전히 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말이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