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할 타자에서 명장으로

‘뛰는 야구’로 분위기 바꿔

“LG 트윈스 왕조 세울 것”

 

염경엽 감독은 ‘미쳐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염경엽 감독은 ‘미쳐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1994년 이후 29년 만에 LG 트윈스가 한국 프로야구(KBO)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그 중심에는 사령탑 염경엽(법학과 87학번) 감독이 있다. 선수 시절 염경엽 감독은 10년 만에 배트를 내려놓았지만 그의 야구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여러 팀에서 프런트, 코치, 감독을 경험하고 올해 LG 트윈스의 지휘봉을 잡은 염경엽 감독은 LG 트윈스 팬들에게 29년 만의 우승을 선물했다.

 

  “피나는 노력 즐겨야”

  염경엽 감독은 야구 명문 광주제일고를 졸업했다. 청소년대표팀에 선출되는 등 유망주로 인정받으며 고려대에 진학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대통령기 타격상, 4학년 때는 추계대학대회 MVP를 거머쥐며 대학야구 정상에도 올랐다. 전형적인 엘리트의 길이었다.

  그러나 대학생 염경엽은 사회에 불만이 많았다. “대학을 입학했을 땐 고려대가 갖고 있던 딱딱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죠.” 학교의 무거운 분위기가 싫었던 염 감독은 자연스레 야구를 멀리했다. “야구가 싫어서 도망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대학생 때는 많이 놀기도 했습니다.”

  염 감독은 후배들이 자신과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를 바랐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믿지 않아요. 피나는 노력을 즐겨야 해요.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피나는 노력도 분명 즐거울 겁니다.” 야구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어떤 일을 하든 지금 대학생들은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게 우선이에요. 그래야 시련이 와도 극복할 힘이 생깁니다.”

 

  은퇴 후 간절해진 야구

  프로야구 선수 염경엽의 야구는 ‘즐기는 야구’였다. 1991년 신인 2차 지명 1순위로 화려하게 프로에 입단한 그는 잠재력을 인정받으며 데뷔 후 바로 태평양 돌핀스 주전 유격수로 경기에 나섰다. “즐기는 야구를 해서 힘든 시기를 마주한 것 같아요. 덜 절실했죠.” 염경엽은 후배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며 일찍이 선수 생활의 막을 내렸다. 10년간 통산 타율 0.195, 5홈런, 110타점을 거뒀고 KBO 1500타석 이상의 타자 중 역대 최하위 통산 타율을 기록했다. 51타석 연속 무안타로 역대 최다 타석 연속 무안타 타이틀도 보유하고 있다.

  선수 은퇴 후 오히려 절실함이 생겼다. “좋아하는 것을 뛰어넘어 절실하게 야구를 하기 시작했죠. 2001년부터 지금까지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산 것 같아요.” 염 감독이 야구를 절실하게 하는 방법은 본인만의 특별함을 찾는 것이었다. “나만의 특별함을 가져야 해요. 그 특별함을 무기로 남들보다 월등해질 수 있는 거죠.” 염 감독의 특별함은 ‘피나는 노력’과 ‘경험’이다.

  그는 현대 유니콘스에서 은퇴 후 현대 유니콘스 운영팀 직원으로 일했다. LG 트윈스로 팀을 옮긴 염 감독은 운영팀을 거쳐 수비코치로 임명됐다. 꿈에 그리던 현장에 다시 발을 들였다. “사람이 발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에요. 직접 경험한 것도 중요하고 상대의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죠.” 프런트 직원과 코치로 일한 경험은 염 감독을 성장시켰다. 단순히 여러 경험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공의 경험이든 실패의 경험이든 자신의 삶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해요. 실패했을 땐 핑계를 대고 남을 원망하기보단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게 중요합니다.”

  넥센 히어로즈 이적 1년 후인 2013년, 처음으로 감독 자리에 올랐다. “야구 루저들이 모여있던 팀이었어요. 실패를 겪은 사람들의 절실함이 큰 시너지를 만들어 냈죠.” 염경엽 감독이 거둔 준우승이라는 쾌거는 감독으로서 눈도장을 찍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우승 턱밑에선 계속 미끄러졌다. SK 와이번스 단장을 거쳐 감독 자리에 오르면서도 실패는 반복됐다. “실패 속에서 한 계단씩 올라왔다고 생각합니다.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렸다가 또 도전하기를 반복했어요.” SK 와이번스 감독직에서 스스로 내려온 염 감독은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야구 해설위원으로 일했다. 단 한 순간도 야구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염 감독은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말을 삶의 철학으로 삼는다. “선수, 지도자, 프런트 생활을 하며 많은 시련을 겪었고 이겨냈습니다. 그 시련이 자양분이 돼 저를 성장시켰죠.”

 

  “두려움과 망설임은 최고의 적”

  이번 시즌 그는 다시 감독에 도전했다. “LG 트윈스 감독을 맡게 된 것은 저에게 큰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의 팀을 맡게 돼 설렘이 가득했다. LG 트윈스를 우승팀으로 만들기 위해 염경엽 감독은 작전 야구를 내세웠다. 그중 ‘뛰는 야구’는 양날의 검이라는 평을 받았다. LG 트윈스는 이번 시즌 267개라는 압도적으로 많은 도루를 시도했지만 성공률은 62.2%로 리그 최하위에 그쳤다. 그러나 염 감독의 목표는 많은 도루와 높은 성공률이 아니었다. “뛰는 야구는 선수들의 자신감을 위한 첫 번째 전략이었습니다. 도루가 죽고 살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염 감독은 선수들의 공격적인 주루를 통해 팀의 방향성을 바꾸고 새 칼날을 갈고 싶었다. LG 트윈스 표 ‘뛰는 야구’는 주루뿐만 아니라 타격과 전체적인 팀 분위기에 새로운 환기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염경엽 감독은 선수들에게 한 해 동안 두 가지를 약속했다. 가장 강조한 건 두려움과 망설임을 없애라는 것이었다. “LG 트윈스가 최근 몇 년간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을 갖고 있음에도 우승하지 못한 이유는 위기에 빠졌을 때 이겨내지 못한 정신적인 부분이었어요.” 두 번째는 기술적인 부분이었다. “한 점 지고 있을 때 따라가서 역전시키는 한 점의 무게를 아는 경기를 하자고 했죠. 포기하지 않고 매 경기 한 점 차 승부에서 최선을 다하면 우승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LG 트윈스는 이번 시즌 페넌트레이스에서 86승 가운데 42개의 역전승을 거두며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KT 위즈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선 9회 초 역전을 내주며 분위기를 빼앗겼다. “분위기가 가라앉긴 했었죠. 그래도 정규시즌 위기마다 이겨낸 힘이 있었기에 패배에 동요하진 않았습니다.” 2차전도 최원태 선수가 1회부터 흔들리며 위기가 계속됐다. “2차전까지 넘어가면 한국시리즈 전체적인 흐름을 넘겨준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은 ‘한 점씩 따라가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외쳤다. 선수들의 간절한 마음이 모여 LG 트윈스는 29년 만에 통합우승을 거둬냈다. “선수들이 서로 힘내는 모습을 보며 감독으로서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정규시즌 동안의 흐름이 한국시리즈 2, 3차전의 역전승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서울의 신바람, 우승 차지하다

  이번 가을 염경엽 감독은 절실했다. “너무 절실하다 보니 모든 걸 똑같이 했던 것 같아요. 심지어는 먹는 음식까지요.” 일어나는 시간부터 야구장에 나서고 경기를 준비할 때까지 모든 생활 패턴을 2차전과 똑같이 했다. “심지어는 2차전부터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속옷도 갈아입지 않았어요. 매일 빨아 입었죠(웃음).”

  한국시리즈 경기에 앞서 염경엽 감독은 선수들에게 아차상 수여를 약속했다. MVP 다음으로 활약한 선수에게 사비 1000만원을 준비했다. “정규시즌 1등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조그마한 선물보다는 선수진 사기 증진까지 일석이조를 위해 상금을 걸었죠.” 2차전에서 8회 말 역전 2점 홈런을 때린 박동원 선수와 시리즈 내내 중요한 때마다 불펜으로 등판했던 유영찬 선수가 1000만원을 나눠 가졌다.

  “올해 드디어 LG 트윈스와 팬분들의 목표를 이뤘습니다. 그리고 정말 간절히 원했던 제 개인적인 목표, 우승도 이뤘죠.” 우승의 축배는 짜릿했다. 지난달 17일 열린 ‘2023 KBO리그 통합우승 기념행사’에선 우승을 기다리며 29년간 묵혀둔 LG 트윈스의 아와모리 소주를 마셔보기도 했다. “오래됐는데 맛과 향이 좋더라고요. 저에게도 그렇고 모든 LG 트윈스 선수의 야구 인생에 있어서 큰 영광이고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염경엽 감독은 이번 한 해뿐만 아니라 29년 넘게 LG 트윈스를 응원한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다. “저희 팬분들은 특별하십니다. 선수들에게 절실함을 만들어 주고 책임감을 심어주셨죠. 팬분들의 열정적인 응원 덕분에 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염경엽 감독은 겨울 동안 이번 시즌을 돌아보며 다음 시즌을 준비할 예정이다. “올해 우승은 저희 구단과 제가 가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LG 트윈스는 명문 구단으로 가는 첫걸음을 내디뎠죠.” 염경엽 감독의 목표는 LG 왕조를 세우는 것이다. “내년, 내후년 LG 트윈스는 계속해서 조금씩 더 강해질 겁니다.”

 

글 | 하수민 기자 soomin@

사진 | 전수현 기획1부장 iam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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