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 비용 가장 낮아

재생에너지만으론 한계 존재

“전문가로서 대응할 것”

 

정범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이번 예산 삭감으로 당장 다음해 수출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정범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이번 예산 삭감으로 당장 다음해 수출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원전 분야 예산 전액인 약 1820억원이 삭감된 2024년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안이 지난달 2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의결됐다. 삭감된 주요 예산안은 △원자력 생태계 지원 사업비(약 1120억원) △원전 수출 보증비(250억원) △소형 모듈형 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 SMR) 기술 개발 사업비(약 333억원) 등이다. 원전 해체 R&D 사업은 256억원이 증액됐다.

  한국원자력학회는 지난 21일 원자력 관련 예산 전액 삭감 결정을 반대하는 입장문을 냈다. 정범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원자력은 장래 효자 수출 상품이며 가장 저렴한 발전 방식”이라며 “정치적 이유로 원자력이라는 산업이 침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 원전 관련 예산 삭감이 결정된 이유는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탈핵·탈원전 정책 시즌 2를 하려는 겁니다. 민주당이 탈원전을 진행하는 표면적 이유는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이고, 이면적 이유는 재생에너지 장사입니다. 예산이 삭감된 주요 항목인 원전 생태계 활성화, SMR 개발, 원전 수출 사업은 더불어민주당이 여당 시절에 만든 겁니다. 원전 생태계 활성화 사업은 2021년부터 있었고, SMR 개발 사업은 2022년 착수했어요. 그런데 민주당은 국민의힘과의 정치 문제로 과학·기술의 영역에 유탄을 떨어뜨렸습니다.

  저는 에너지 정책에 정치가 개입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국회가 힘이 강해져 권리를 휘두르고 있는데, 예산안은 전문가와 공무원이 오래 검토해 작성한 문건입니다. 정책에 필요한 예산을 최상위에 있는 국회의원 몇 명이 18분 만에 삭감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많은 사람의 수고를 무시한 셈이죠.”

 

  - 예산 삭감으로 예상되는 문제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려면 많은 업체가 필요합니다. 부품 제작업체, 건설업, 원자력발전소 유지보수 업체, 페인트칠 업체 등 다양하죠. 이런 공급망을 크게 생태계라 부릅니다. 그동안 유지되던 원자력 생태계는 이번 탈원전 정책으로 곤란을 겪게 됐습니다.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으면 업체는 부품을 납품할 수 없고 건설 등의 사업을 할 수도 없습니다. 버티지 못한 업체들이 업종 전환을 하거나 유지 비용이 드는 라이센스를 반납하면 결국 생태계는 무너집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소를 과거만큼 싸고 좋게 지을 수 없습니다. 수출할 때도 싼값에 원전을 지어줄 수 없죠.

  원전 수출 보증비 관련 예산 삭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출 보증비가 삭감되면 타국에 기술을 선보일 수 없습니다. 원전 산업의 경쟁력은 튼튼한 생태계와 공급망에 달려있는데, 이번 예산 삭감으로 당장 다음해 수출 사업이 어려워졌습니다.”

 

  -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란

  “보통 상업용 원자로는 출력이 1000MW (메가와트)나 1400MW인데, 300MW 미만이면 소형이라 부릅니다. 모듈형은 건물에 필요한 시설을 공장에서 가져와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입니다. 시공 과정이 간단하고 건설 소요 시간도 짧습니다.

  기존 대형 원자력발전소는 건설하기까지 10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시공에 착수한 기업은 한 푼도 벌지 못합니다. 기업엔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니 국가가 나서는 경우가 많죠. 민간 업체가 원전을 짓는 나라에선 대형 원전 건설 시도 자체를 못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지어도 우리나라만큼 건설을 빠르게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SMR은 원자로가 모듈 형태라 이런 국가들도 원자력발전소를 빨리 건설할 수 있게 합니다.

  SMR은 석탄 같은 다른 연료보다 싸게 생산 할수 있지만, 대형 원자로만큼 싸게 전력을 생산하진 못합니다. 하지만 크기가 작으면 화재 위험이 줄어듭니다. 부피에 비해 면적이 넓어 펌프 없이 자연 대류만으로도 안전하게 냉각할 수도 있죠. 작고 안전하기에 도심 근처에 설치할 수 있고 열이 필요한 경우 열을 생산해 사용할 수 있어요. SMR에서 나오는 전기나 증기를 이용해 수소도 만들 수 있습니다. SMR은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 탄소 중립 원자로입니다. 우리의 장래 수출 상품이죠.

  세계적으로도 SMR은 90종이 넘게 개발되고 있어요. 그런데 탈원전 정부는 앞으로 △안전 △방사선 △방사성 폐기물 △원전 해체 연구만 하라고 제한해 과학자들이 수출형 원자로나 SMR 등을 연구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시기적으로 많이 뒤처져 있습니다. 다행히 문재인 정권 마지막 해에 국회에서 SMR 포럼이 열려서 국회의원들과 전문가들이 합의해 SMR 개발 사업을 시작했어요. 가뜩이나 진도가 느려 빨리 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이 예산을 삭감한 겁니다. 예산이 줄어들면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어요.”

 

  - 원자력발전소가 위험하다는 우려가 있는데

  “원자력 산업은 굉장히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45년 동안 원자력발전소 영향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이 없었어요. 세계적으로도 원자력발전소가 500기 이상이 50년 이상 운전됐음에도 알려진 사고나 사망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다른 산업과 비교하면 사망자 수는 낮아요.

  잘못 알려진 부분이 상당히 많죠. 체르노빌 사고 이후에 체르노빌이 완전히 불모지가 됐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체르노빌 4호기에서 사고가 났지만, 1~3호기는 계속 운전했습니다. 체르노빌 사고로 수만 명이 죽었다고 알려졌는데, 유엔 보고서에 의하면 사망자는 43명입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피폭자 자손들에 대한 역학조사가 60년 이상 이뤄졌지만, 유전적 변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어요. 잘못 알려진 사실에 기반해 정책을 입안해선 안 됩니다.

  핵폐기물은 사람들이 불안하게 여기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 폐기물 처분장이 위험한 설비라고 여기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원자력발전소에는 작동하는 펌프와 구동 시설이 있지만, 폐기물 처분장에는 구동 파트가 없어요. 보관만 해두는 처분장이 원자력발전소보다 위험할 리가 없습니다. 처분장은 인식만 개선되면 언제든 만들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닌 국민 인식과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인 신고리 1, 2호기.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인 신고리 1, 2호기.

 

  - 한국전력공사 적자에 대한 비판은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 이후 한국전력공사의 적자액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그런데도 탈원전 정책에 대한 반성이 없어요. 1kWh(킬로와트시)라는 전기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지난해 한국전력공사 실적 자료에 의하면 원자력이 52원, 석탄이 158원, LNG가 238원, 재생에너지가 271원입니다.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려면 원자력의 5배에 달하는 비용이 필요하죠. ‘재생에너지는 이산화탄소가 안 나오니 친환경적이지 않냐’고 얘기할 수도 있어요. 자동차에 휘발유를 가득 채우기 위해선 8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합니다. 따로 친환경 휘발유를 이용하기 위해 이용자가 5배인 40만원을 내야 한다면, 그게 쓸 만한 연료일까요? 이게 5배의 진실이에요. 내가 지불해야 하는 돈으로 생각했을 때 5배는 적지 않아요.

  싼 원자력과 석탄을 빼고 비싼 LNG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면 전기료는 올라갑니다. 그런데 전기료를 못 올리게 하니 한전 적자가 계속 늘어난 거예요. 최근에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연료값이 더 올라가서 적자 폭이 심해지기도 했지만, 근원적으로 탈원전 정책은 발전 비용을 올리는 정책입니다. 전문가들이 5년 동안 이 문제를 지적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 원전을 다시 짓겠다는 유럽 국가가 많아졌다

  “탈원전을 선언한 나라는 꽤 있었습니다. 과학적이라기보다 정치적으로 선언한 경우가 많죠. 그런데 발전 비용이 너무 비싸지니 감당이 안 되는 겁니다. 한번 탈원전을 선언했던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최근 원자력발전소를 다시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기를 한두 개 설치할 때는 연료도 안 들고 좋지만, 대량으로 비중을 늘리기엔 너무 비싼 겁니다. 기술적으로도 재생에너지는 20% 이상 늘리면 안 돼요. 20% 이상 늘어나면 기후나 날씨에 영향을 받는 재생에너지 특성상 안정된 전압과 주파수를 유지할 수 없어요. 그런데 이산화탄소를 줄일 방법은 재생에너지 아니면 원자력밖에 없잖아요. 재생에너지를 유지하는 독일에선 국민들이 냉난방을 제대로 못 해 고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원자력은 아주 적은 인력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싼값으로 전기를 공급해 왔습니다. 원자력 산업이 침체하면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원자력은 중공업, 조선업, 건설업 같은 다른 산업을 선도하는 효과가 있어요.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커질 수도 있죠.

 

  - 앞으로의 예산 삭감 대응 방안은

  “전문가 집단으로서 우리가 가진 생각을 사회와 나눌 겁니다. 과거 탈원전 정책에도 똑같은 문제가 있었는데, 지금 원자력이라는 과학·기술 및 산업 분야에 정치가 개입하고 있습니다. 40년 동안 역대 대통령과 국가가 돈을 들여 개발해 수출할 수 있게 된 효자 상품들을 지금 날리고 있는 겁니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사안을 당리당략 차원에서 처리해선 안 됩니다. 원자력에 대한 안전 등에 관해 가짜 뉴스로 국민이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해서도 안 되죠. 국민은 과학·기술이나 산업의 영역에서는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글 | 장우혁 기자 light@

사진제공 | 정범진

이미지출처 | 한국수력원자력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