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가동률 50% 내외

수술 연기, 응급 수술도 어려워

간호사가 인턴 업무 대신해

 

  정성훈(남·48) 씨의 어머니는 지난달 26일 오전 심한 두통을 느꼈다. 정 씨의 누나는 어머니를 길음동 서울척병원으로 모셨다. 어머니의 병명은 뇌출혈이었고 병증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였다. 척병원 측은 정 씨에게 응급 수술을 권고하고 주변 종합병원 응급실을 알아봤다.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은 차로 12분 거리 떨어진 고려대 안암병원이었다. 정성훈 씨는 의사로부터 ‘안암병원은 전공의 파업 때문에 수술을 받아줄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즉시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나섰지만, 어디에서도 ‘받아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정 씨는 자가용을 몰아 어머니가 평소 다니던 인천 소재 모 병원으로 향했다. CT 사진 속 뇌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두개골 안쪽이 피로 뒤덮였기 때문이다. 담당 의사가 3일 내내 당직을 서 바로 수술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정 씨의 어머니는 현재 의식불명 상태다.

 

  정부의 의대 증원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고려대 안암병원, 구로병원, 안산병원을 떠나고 있다. 의대를 막 졸업한 인턴도 병원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노조) 고대의료원지부(지부장=송은옥)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고려 안암·안산병원에 입사한 인턴은 0명이다. 구로병원에는 인턴 정원 34명 중 2명만이 입사했다.

 

전공의 파업 여파로 고려대 병원도 수술이 연기되고 있다. 사진은 안암병원 대기실.
전공의 파업 여파로 고려대 병원도 수술이 연기되고 있다. 사진은 안암병원 대기실.

 

  기약 없는 연기, 부담은 환자에게

  세 병원은 수용 환자를 줄였다. 수술을 집도하는 전임의는 병원에 남았지만 입원 환자를 돌볼 전공의가 부족해서다. 7일 기준 병상 가동률은 안산병원 45.5%, 안암병원 53.2%, 구로병원 56%로 떨어졌다. 안암병원은 항암 입원 치료 기간을 줄였다. 안산병원은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한 수술을 연기했다. 안산병원 응급실은 환자의 증상과 바이탈을 간호사에게 보고 받은 후에 의사가 접수 여부를 결정한다. 내원객 접수를 받은 뒤 진료를 받던 평소와 달랐다.

 

  A씨는 손목 인대 파열 수술을 받기 위해 3개월의 시도 끝에 안산병원을 예약했다. 담당 교수로부터 ‘골낭종이 커져 인대를 끊을 수도 있으니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을 듣고 가장 빠른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까지 또 3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수술을 이틀 앞두고 간호사로부터 취소 전화를 받았다. 병원에선 당장 수술이 필요하니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는 말뿐이었다. A씨는 다른 병원을 수소문하고 있지만,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면 광주까지 내려가야 한다. 휴직 연장을 위해서는 수술 진단서가 필요하지만 수술이 연기돼 진단서를 받을 수 없었다. 다른 병원에 부탁해 서류 문제를 해결한 후에도 애매해진 복직 시점이 골칫거리다.

 

  한번 연기된 수술은 기약 없이 미뤄진다. 송은옥 보건노조 고대의료원지부장은 “파업이 언제 끝날지 몰라 수술 일정을 새로 잡기는 어렵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환자가 많다”고 전했다. 수술 연기로 환자가 추가 비용을 부담하는 일도 생긴다. 송 지부장은 “수술 전 검사 항목인 심장 초음파의 경우 1개월 이내 자료를 활용해야 하는데, 수술이 밀리면 초음파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며 “수술 연기로 인해 생기는 컴플레인 중 비용에 대한 문제도 많다”고 말했다. 안암병원 기준 일반 경흉부 심초음파 검사 비용은 21만7000원(급여 인정 기준 미충족 시)이다.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환자를 받고 있지만 응급 수술은 어렵다. 사진은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환자를 받고 있지만 응급 수술은 어렵다. 사진은 권역응급의료센터.

 

  간호사가 전공의 공백 메워

  원래도 간호사들이 인턴 업무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파업 후 간호사의 업무는 더 늘어났다. 지난달 27일 보건노조 고대의료원지부가 제공한 간호사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공의 파업 이후 간호사들이 맡게 된 인턴 업무에는 △동의서 받기 △연구 간호사의 대리 처방 △서혜부(사타구니) 면도 △진료기록 및 진단서 작성 등이 있다. 전공의가 맡던 수술 및 검사 안내도 파업 개시 후 간호사의 몫이 됐다.

  보건복지부는 인턴 업무 일부를 떠맡게 된 간호사를 보호하기 위해 지난달 27일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계획안’을 발표했다. 계획안의 골자는 각 의료원장이 내부운영위원회나 간호부서장과의 합의를 통해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범사업에 따른 업무 조정 이후에도 간호사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송은옥 지부장은 “시범사업 내용에는 판례 몇 개만 있을 뿐 정확한 보호 절차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간호사들은 여전히 법적 보호망 없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암병원의 경우 업무 조정안은 배포됐지만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에 대한 안내가 없었다. 안암병원 간호사 B씨는 “업무 조정안이 어떤 절차를 거쳐 나왔는지 아는 간호사가 거의 없다”며 “파업 상황에서 환자를 위해 업무 범위를 변경하는 건 이해하지만, 간호사들에게 업무 범위를 설정한 과정과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송 지부장도 “회의 절차는 분명히 존재했겠지만 이를 공지하지 않은 건 병원 측의 잘못”이라 지적했다.

  떠맡은 업무에 대한 적절한 교육 체계도 없다. 생소한 업무의 경우 교육 자료를 배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모르는 건 질문하라’는 식이다. B씨는 “‘임상전담간호사’란 이름으로 차출되지만 정작 제대로 된 교육이 없다”며 “‘플로팅 간호사’라는 이름으로 실무 경험이 없는 과로 파견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간호사의 불안은 업무 변경에서만 오지 않는다. 송 지부장은 “원래는 간호사 1명이 환자 8~10명을 맡았지만 병상 가동률이 낮아진 현재는 3~4명을 맡는다”고 말했다. 고려대 병원은 이를 ‘일손이 남는다’고 판단해 간호사에게 연차를 권장하고 있다. 안산병원은 연차를 쓸 사람을 모집하거나 3월 연차를 당겨 사용하라고 권유했다. 보건노조 고대의료원지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안암병원 간호사 C씨는 ‘강제로 휴일이 돼 연차가 소진됨’이라 답했다. 송 지부장은 “간호사들에게 강제 연차를 주지 말라고 공지했으며 부득이할 경우 연차 외 휴가를 먼저 사용하라고 안내했다”고 밝혔다.

 

글 | 주가윤 기자 gogumakr28@

사진 | 주가윤·한희안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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