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별점: ★★★★★

한 줄 평: 생각이 영화가 아닌 내게로 침잠해 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98년도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서 그려지는 사후 세계는 사뭇 특이하다. 모든 망자는 이승과 저승의 중간 지대 림보에서 일주일을 보내게 된다. 재판관도 상벌도 없는 그곳에서 망자들이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하나, 저승까지 가져갈 기억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들은 림보의 면접관 앞에서 삶을 되돌아본다.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할머니, 자기 삶에 냉소적인 청년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감독은 일관된 정면 미디움 숏으로 인물들을 담아 연극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표정과 몸짓,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여러 인생의 각기 다른 단면을 마주한 관객은 자신이라면 어떤 기억을 선택할지 고민하게 된다. 면접관들은 선택된 기억을 영상으로 재현해 망자들에게 선물한다. 과거의 전철 소리가 담긴 녹음을 재생하고, 비행기에서 본 풍경을 재현하기 위해 솜으로 구름을 만든다. 면접관들은 이 일에 진지하게 임하고, 촬영 과정을 지켜보는 망자들은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행복해한다.

  영상으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영화 제작과도 같다. 어떤 영화들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파고들지만, 문화예술의 중대한 사명 중 하나는 인간에게 위안을 선물해 주는 것이다(망자들에게 쥐어지는 비디오테이프처럼). 이 영화도 그런 식으로 내게 다가왔다.

  면접관들의 이야기도 다뤄진다. 그들이 림보에 머무는 이유는 기억을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약혼자를 두고 전사한 면접관 모치즈키, 약혼자가 남편이 아닌 그와의 기억을 선택했음을 알게 된다. 그에게는 잘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아있는 선택하지 않은순간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는 당신의 평범한 순간이 누군가에겐 소중한 기억일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 사실은 모치즈키가 삶을 재고하고 림보를 떠나는 계기가 된다. 관계와 기억의 마법이다.

  ‘원더풀 라이프는 정적인 영화다. 생각할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나는 기억을 필사적으로 뒤적임과 동시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순간이 누군가에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에 쓸쓸해졌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임을 평생 깨닫지 못할 수도 있는 우리에게 이 영화의 제목은 사치스럽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그러므로 삶의 모든 순간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해 준다. 영화관에서 화장실에 가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이상엽(미디어22)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