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평화의 소녀상
서울 평화의 소녀상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전국 생존자들이 잇따라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 세계에 알려졌다. 사람들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기억하고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전시 성폭력이 중단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소녀상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기억하고 일본군의 반인륜적 범죄를 고발하는 의미는 하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가 온전히 회복되길 바라며 서울 각 구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갔다.

 

  종로구|평화의 소녀상

소녀상을 둘러싸고 각 단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소녀상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은 펜스를 쳤다.
소녀상을 둘러싸고 각 단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소녀상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은 펜스를 쳤다.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은 공개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으로 세워진 이 소녀상은 2011년 12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1000차 수요집회를 기념해 건립이 추진됐다. 소녀상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종로구청은 건립 허가를 명확하게 하지 않았고, 일본 정부의 비판과 건립 반대 요구가 점점 거셌다. 건립 후에도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소녀상 철거를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건립 지지 목소리가 높아져 현재는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까지 소녀상이 세워졌다.

 

  종로구|서울 ‘위안부’ 기림비

시민들이 많이 찾는 일상적 공간에 아픈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기림비를 세웠다.
시민들이 많이 찾는 일상적 공간에 아픈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기림비를 세웠다.

 

  일제강점기 조선신궁 터에 손을 모은 김학순 할머니와 서로 손을 마주 잡은 한국, 중국, 필리핀 세 나라의 소녀들을 형상화한 소녀상이 들어섰다. 한국 소녀와 필리핀 소녀 사이는 비어 있다. 시민이 손을 잡고 함께 기억하겠다는 의미다. 종로구 ‘위안부’ 기림비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미국 샌프란시스코 교민들이 자발적으로 제작해 서울시에 기증했다.

 

  서초구|위안부 소녀상

왼쪽에는 서초고 학생들이 만든 도안이 놓여 있다.
왼쪽에는 서초고 학생들이 만든 도안이 놓여 있다.

 

2013년 9월 4일 서초고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도안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이 교정에 설치됐다. 교내에 소녀상을 세운 것은 서초고가 처음이다. 광복절을 맞아 8월 중순에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평화의 소녀상’ 작가의 저작권 시비로 디자인이 수정된 후에야 공개됐다. 소녀는 벚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태극기를 두 손으로 쥔 채 왼쪽을 바라보고 있고, 저고리 왼쪽 가슴에 무궁화를 달고 나비 모양 노리개를 하고 있다.

 

  은평구|은평 평화의 소녀상

소녀상 옆에는 청소년들이 적은 글이 함께 놓여 있다.
소녀상 옆에는 청소년들이 적은 글이 함께 놓여 있다.

 

  은평평화공원에는 새를 하늘 높이 날려 보내는 소녀상이 있다. 은평구 학생들과 시민단체, 구민들은 ‘은평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를 꾸려 소녀상을 세웠다. 소녀상의 형태를 결정한 주체는 청소년들이었다. 은평구 청소년들은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하늘로 날려 보내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담아내길 바랐다. 소녀상 옆에는 소녀와 나란히 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으며, 옆 사람과 손을 잡을 수 있도록 소녀의 왼손이 비어있다.

 

  금천구|금천 평화의 소녀상

금천구청 앞에 소녀상이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금천구청 앞에 소녀상이 두 손을 모으고 있다.

 

  왼손에는 번데기, 오른손에는 나비를 날리며 서 있는 소녀상이 있다. 금천구 주민들의 모금으로 제작된 소녀상은 유동 인구가 많고 접근성이 좋은 금천구청 광장 앞에 설치됐다. 번데기는 상처받은 과거를, 나비는 미래를 뜻한다. 독특한 디자인의 이 소녀상은 두 손으로 과거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희망을 맞이하며 자신의 힘으로 상처를 치유하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포구|마포 평화의 소녀상

소녀상은 주로 단발머리가 많지만, 마포 평화의 소녀상은 일제강점기 때 자주 했던 댕기 머리로 돼 있다.
소녀상은 주로 단발머리가 많지만, 마포 평화의 소녀상은 일제강점기 때 자주 했던 댕기 머리로 돼 있다.

 

  마포중앙도서관 뒤뜰 마당 한쪽에 굳건한 표정으로 가슴에 주먹을 댄 한 소녀상이 서 있다. ‘마포 평화의 소녀상’은 마포구 지역 학생과 주민들이 기금을 마련해 제작했으나 설립지를 찾지 못해 표류하다 마포중앙도서관에 세워졌다. 과거 일본군 주둔지였던 상암동 일본국제학교에 세우려고 했으나 일본 주민의 반대와 유동 인구 부족을 이유로 무산됐다. 홍대걷고싶은거리는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취소됐다. 마포구청은 공공장소에 적합하지 않다는 일부 지역의원들의 반대로, 홍익대는 홍익대 재단 측의 반대로 제막식이 결렬됐다. 결국 청소년들이 많이 다니고 교육적인 가치를 지니는 도서관에 겨우 자리 잡았다.

 

  중구|고등학생이 함께 세우는 평화비

소녀상 뒤편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소녀상 뒤편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정동길 프란치스코 회관 앞의 소녀상은 전국 고등학생의 손길이 모여 만들어졌다. 이화여자고등학교 역사 동아리 ‘주먹도끼’에서 시작해 53개 고등학교의 1만6400여 명이 모금에 참여했다. 2015년 11월 3일 학생 독립운동 기념일에 고등학생의 힘으로 소녀상이 건립됐다. 활짝 올린 오른팔은 미래에 내미는 악수고, 손가락 위의 나비는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들을 상징한다.

 

  도봉구|도봉구 평화의 소녀상

담요와 목도리, 모자를 하고 있는 소녀상.
담요와 목도리, 모자를 하고 있는 소녀상.

 

  노곡중학교 동아리 학생들과 덕성여대 소녀상 서포터즈가 도봉구민회관 옆 광장에 소녀상을 세웠다. 자발적으로 결성된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는 지역에서 열리는 모든 축제에 빠짐없이 참여해 서명 운동과 모금 운동을 벌였다. 소녀상 옆에는 청소년들이 할머니들께 적은 편지가 새겨져 있다. “한결같이 꽃 같으신 할머니들께 … 더 이상 상처받지 마시고 꽃길만 걸으시길 바랍니다.”

 

  서대문구|대학생들이 세우는 평화비

대현문화공원 입구에는 파란 나비 날개를 단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대현문화공원 입구에는 파란 나비 날개를 단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대현문화공원 입구에는 파란 나비 날개를 단 소녀상이 눈에 띈다. 소녀상은 이화여대 총학생회를 비롯한 여러 대학 총학생회와 평화나비 네트워크 대학생의 모금을 통해 세워졌다. 등 뒤 파란 날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대학생들이 나비가 돼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다.

 

  강동구|평화의 소녀상

왼손에는 김 할머니 그림 속 꽃을 본떠 조각한 꽃이 있다.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한 못다 핀 꽃이다.
왼손에는 김 할머니 그림 속 꽃을 본떠 조각한 꽃이 있다.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한 못다 핀 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못다 핀 꽃’을 차용한 꽃가지를 들고 어깨에 나비를 얹고 있는 이 소녀상은 강동구청 앞 잔디마당에 자리하고 있다. 강동구 평화의 소녀상은 강동구에 사는 당시 17살 박세희 씨의 얼굴을 본떴다. 할머니들의 옛 모습인 땋은 머리, 흰 저고리, 검정 치마를 살렸으며, 오른손을 피고 앞으로 나가고 있어 희망찬 느낌을 준다.

 

  성북구|한중 평화의 소녀상

(좌) 한국인 소녀상, (우) 중국인 소녀상. 한국인 소녀상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은성 작가와 김석영 작가가 만들었으며, 중국인 소녀상은 중국 칭화대 미술학과 판위친 교수와 영화제작자 레오스융이 만들었다.
(좌) 한국인 소녀상, (우) 중국인 소녀상. 한국인 소녀상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은성 작가와 김석영 작가가 만들었으며, 중국인 소녀상은 중국 칭화대 미술학과 판위친 교수와 영화제작자 레오스융이 만들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아시아 소녀들을 기억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 시민들이 함께 한성대 입구역에 ‘한중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한국인 소녀상 뒤에는 할머니의 그림자와 흰 나비가 있고, 중국인 소녀상 뒤에는 의자로 걸어온 발자국이 있다. 그림자는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소녀들이 백발의 할머니가 됐다는 의미를, 흰 나비는 부디 나비로 환생해 한을 풀길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중국인 소녀상 옆 빈 의자는 다른 아시아 국가의 희생자들을 위한 자리다. 소녀상 뒤편에 적힌 글귀가 눈에 띈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친구를 찾아와 옆에 앉았습니다. … 절대 잊을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 이제 함께하려 합니다.”

 

  성동구|성동 평화의 소녀상

 

김학순 할머니의 조각상은 실제 할머니의 모습을 본떴다.
김학순 할머니의 조각상은 실제 할머니의 모습을 본떴다.

 

  모든 소녀상이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다. 왕십리 광장에는 성동 평화의 소녀상과 기림비가 세워져 있다. 평화의 기림비는 세 개의 문과 김학순 할머니 동상과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소녀, 비둘기를 날리는 소녀가 있다. 문과 문 사이에는 무릎을 쥐고 앉은 소녀와 비둘기를 든 장년, 편안한 표정의 노년 여인상이 있다. 회전문 형태의 세 개의 문은 과거의 역사를 인식하고 함께 연대해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염가은·한희안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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