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9월에 열린 '70회 고대미전'이 끝나고서도... 2년 쯤 흐르고 나서... 虎美會 창을 통하여 윤화백으로부터 이러한 편지가 올라온 적이 있다... 윤화백이 근 이십년 은거끝에 호미회 창에 등장하던 순간이다...

소능,

답이 늦었습니다.
더위에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군요.

고맙고도 미안합니다.
늘 친구로써 도리도 못하지만,
그래도 생각을 해주시니....

실은 이 자리에서 언젠가는 소능을 만날 줄
기대하였습니다.

아이들도 이제 많이 컸겠지요?
혜리엄마께서도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혜리 어릴 때였던가 온 가족이 함께
해운대에 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손님맞이가 좀 서툴렀습니다.

이곳에는 여러 사람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군요.
경희씨는 미국에 갔다하고, 은애는 미술전람회를
열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영대형은 이제 환경운동가가
되셨다고...

어느새 적지않은 세월이 무심하게 흘렀군요.

지난 번 미전때는 고생 많이 하셨을 텐데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하지만 마음 한 쪽은 그 쪽으로 가 있었습니다.

시간나시거든 부산 나들이 한번 하시지요.
이번에는 잘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주말에는 늘 집에 있습니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혹시 70회 미전 팜플렛이
남아있으면 한 부 보내주십시오.

607-102
부산시 동래구 안락 2동 630-38

그럼 또 연락드리지요.

2001. 8. 24

진주에서 天實

PS. 나도 오랜 만에 소능의 시집을 꺼내 들었더니,
그속에 오래전 소능에게서 온 편지들이 있었오.
그중 하나 소개하지요.

尹兄 ,

나는 감격한다는 말이오.
그 어떤 사건보다 뭉뚝한 筆體의 尹公의 편지를 받는, 그러한 때.
그러한즉 이런 아삼삼한 기분을 다 제하고나면 이 세상을
사는 맛이 없다하는 그런 사람이요.
통계학은 통계학이고, 物理學은 物理學이고,
사는 것은 보다 重한 것 아니겠소.

오요! 나는 그 구절을 읽다말고 오요! 라고 했소.
딸을 셋이나 얻다니.
分明하오. 그것은 現代物理學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요.

그래 이름은 뭐랍디까. 셋이 오글거릴 모습을
생각만 해도 대단하오. 그림이 달리 그림이 아니라
그 모습이 그림이겠소. 그 모양을 언제 한번 화폭에 담으시오.

더 커서 징그런 딸이 되기전에 지금의 모습을
담아두길 바라오. 尹公 一生 一代의 貴作이 될 것 같소.

여그 사정이야 자빠지면 엎어진 걱정이고,
엎어지면 자빠진 걱정이고.
그런 와중에 세월만 까먹고 있소.

단지 쓸개빠진 先生이 아니라,
오장육보가 제각기 탱탱거리고 작동하는
선생될라꼬 목하 애쓰는 중이요. 다만.

尹公 便紙 제일 나중에 진주에서 라고 썼소.
촉석루에서 강변을 따라 시내쪽으로 흐르다보면
왜 있잖소. 장어이든가 곰장어이든가?
석쇠에 굽는 장사들이, 거기에 가보고 싶소.

얼른 가서 마주 앉아 더도 말고 소주 한 홉만
먹고 오고싶소.

내 언제 가리다.
거기 가서 좌판에 앉아 전화하리다.

健康하시고, 분투하시오.

一九九四. 十一月 十七日
少陵

윤화백은 졸렬한 소생의 편지글을 7년 세월 동안 품고 있다가... 虎美會 창을 통해 나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그래...그랬던 것이다...윤화백과 더불어 보낸 그때 그 시절을 되새김해보니...'눈먼 나비 하나 여기저기 더듬으며 돌아다니고, 더듬이로 한없이 만져본 봄'(황동규의 '눈먼 나비'에서)...바로 그것인 것이다...

최종후 (자연과학대 교수·정보통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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