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고대신문에 ‘중립과 편향, 언론매체는 무엇을 향해 가야하는갗라는 제목으로 〈고대문화〉에 대한 논쟁이 실렸다. 학내 언론을 하는 치로서 이것이 항상 고민이다. 학우들은 〈고대문화〉를 읽고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인다. 좀 더 빡세고 강하게 해야 한다는 것부터, 공산당 싫다는 의견까지 다양하지만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구석은 없다. 왜냐하면 교지대가 분리납부 되었다하더라도 교지는 학우들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이며, 학내언론 또한 학우들을 계몽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계몽이라는 말이 “운동권”만큼이나 위험한 것처럼 사고되는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고대문화〉에 대한 비판을 무시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지도 모르겠다. 허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지난 호 고대신문에 학내건물 흡연 실태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이 기사를 읽고 학우들은 학교건물이 법적으로 금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수 있다. 또한 담배꽁초가 화장실 고장의 원인 된다는 점과 청소하시는 분의 노고나 복도 흡연으로 불쾌해하는 학우들의 목소리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흡연권에 대해 별로 고려치 않은 법적 근거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흡연권에 대해서도 배려해 줄 방안을 모색하지 않은 점 또한 아쉬움을 남겼다. 이런 스트레이트 기사에서조차 편집진의 방향을 찾을 수 있고, 거기에 대해 독자의 비판은 가능하다. 
 
계몽이란 무엇인가. 한 철학도는 계몽을 영어 단어 enlightenment의 어원을 들어 ‘빛을 밝히다’는 뜻이라 설명해 주었다. 계몽은 나쁜 것일 수 없다. 헌데 계몽이 정치적 언술에서 ‘강변’이 된다면 문제는 다른 지점에서 발생할 수 있다. ‘학내 언론의 위기’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은 치에겐 무관심보다는 적대적인 감정이라도 고마운 실정이다. 이 글을 쓰는 데에도 걱정이 앞선다.

그렇지만 항상 겸손하게 작은 것부터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다음 호 작업에 임할 것이다. 관념적이지만 이것이 나의 소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대문화 편집장 권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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