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정족수를 채우지도 못한 채 무더기로 법안을 처리해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지난 8일 끝난 정기국회에서 국회는 80여개의 법안을 처리하면서 무려 48개 항을 의결정족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처리해 무효논란을 빚었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항의와 여론이 들끓자 국회의장은 부랴부랴 재의결을 발표했고,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법안 재의결이라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정쟁과 졸속운영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아온 국회다. 그런 국회가 이번에는 축조심사도 제대로 못한 부실법안들을 무더기로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정족수도 채우지 않고 법안을 동네 반상회 하듯 통과시키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기국회의 법안 처리 과정을 지켜보면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직무유기 수준이다. 정치개혁법이나 민생관련 법안 등 중요한 법안들은 모두가 대선 이후로 미뤄졌다. 국민의 여론에 떠밀려 겉으로는 개정·개혁을 외치면서도 정작 국회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당리당략에 따라 불법도 불사하는 것이 우리 국회의 모습이다.

아무리 국민의 관심이 대선에 집중돼 있고, 정치권이 대선구도로 움직이고 있다하더라도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법을 어겼다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우리 국회의 파렴치한 행태에 익숙한 국민들이야 또 한번 웃고 넘어가겠지만 법치의 근간이 입법부에서부터 흔들린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이제 대선 힘겨루기에 본격적으로 동참할 의원들이 어떤 정치지형을 만들어나갈 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최소한의 규칙도 금도도 없이 정쟁과 당리당략이 난무한 시점에서 새삼 정치의 본령에 대한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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