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새학기를 맞은 학교는 들뜬 흥분 속에 신입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빈 공간이라면 어디든지 채우려는 듯 학교 곳곳에 동아리를 알리는 홍보물이 붙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나의 눈길을 끄는 포스터는 '연극 공연물' 포스터였다. 바로 고려대 극예술연구회 제 48회 워크숍 '동물농장' 포스터였다.  누구나 잘 알 듯 <동물농장>은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의 작품이다. 그 작품을 각색해서 이번 무대에 올린 것이다. 연극을 자주 접할 기회가 없었던 나는 학생들이 하는 연극이라는 점에 호기심이 생겼고, 또한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중앙도서관 앞에서 연극표를 팔길래 한장 달라고 하면서 만원짜리를 건냈더니,  한 분이 당황해 하시며 잔돈이 없다고 하시길래 내가 그냥 커피한잔 마시고 직접 바꿔 와서 표를 한장 샀다. 그랬더니 고맙다고 하시면서 표 한장을 그냥 주셨다. 친구랑 같이 오라는 말과 함께.

친구 녀석들에게 공연보러 가자고 했더니 몇몇은 귀찮다고, 몇몇은 잠 올 것 같다고, 몇몇은 과외가야 된다고 해서 결국 혼자 갈 수 밖에 없었다. 공연은 3일에 걸쳐 상연되었는데 제일 마지막 날, 4.18기념관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았다. 모두들 열심히 준비한 듯 했다. 적지 않은 분량의 대사를 모두 소화해 낸 것도 놀라웠지만 그들의 진지한 모습은 내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 48회 연극학교 '이바돔' 참가 회원들
인상적인 공연을 보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곳곳에서 '연극학교'를 알리는 포스터를 볼 수가 있었다. 바로 고려대 극예술연구회 연극학교 '이바돔' 포스터였다. 포스터에는 일주일간의 일정이 상세히 나와 있었고, 특히 '밥과 술은 공짜'라는 강력한(?) 문구가 있었다. 첫째 날은 무대설치, 둘째 날은 배우수업, 셋째 날은 조명수업, 넷째 날은 분장수업, 다섯째 날은 실제로 공연을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나의 호기심은 벌써 학관 6층 극회실로 달려가고 있었고, 동물농장에서 본 배우들과 직접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을 생각하니 무척 즐거웠다. 마침내 연극학교 첫째 날이 되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학관 6층을 향했다. 친구 한명과 함께 동행한 나는 이바돔 포스터가 떡하니 붙어 있는 극회실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인 뒤에 문을 열어 젖혔다. 벌써 몇몇 친구들이 와서 어색한 표정을 하며 앉아 있었고, 극회 동아리 회원들로 보이는 분들은 약간 긴장한 듯한 모습으로, 새로 온 우리들에게 연극학교에 온 걸 환영한다고 말해 주셨다.

   
   ▲ 첫째 날, 무대수업
첫째 날은 무대 수업이 있는 날. 동물 농장에서 무대 감독을 했던 조소학과 박혜정 양이 동물농장 무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무대에 대한 개괄적이면서 중요한 부분들을 동아리 회원인 윤보 군 (윤보 군 미안해요 과를 몰라서) 이 잘 설명해 주었다. 그 날 수업이 끝난 뒤 뒤풀이로 통닭집에 가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통닭집에서의 뒤풀이는 연극학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수업시간 내내 다소 딱딱했던 분위기를 술잔을 기울이면서 해소할 수 있었고, 서로에게 보다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뒤풀이에서 연기에 대해 재밌는 사실을 많이 알려준 환경생태공학부 염석민 군, 언제 술한잔 같이 해요.)

둘째 날은 식목일이어서 쉬었고 그 다음날 배우수업이 있었다. 배우수업에 앞서 동물농장에서 연출을 맡았던 경영학과 양청산 군이 무대 조명에 대한 설명을 재미있게 해 주었다. 그 전에는 조명이라는 것이 단순히 배우를 비추는 전등 쯤으로 생각했었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그것은 전등 이상의 효과를 만드는 중요한 장치였다. 조명장치를 실제로 켜보고 그 효과를 소극장에서 직접 느껴볼 수 있었다. 놀라웠다. 조명수업 후 배우수업이 이어졌는데 실제로 극단에서 연극을 한 경험이 있는 역사학과 전영지 양이 수업을 맡았다. 배우란 어떤 마음으로 연극에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4.18기념관에 직접 가서 실제로 연기를 해 볼 기회를 가졌다. 처음하는 연기는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 또 형편 없었지만 모두들 진지하게 연기에 임했다. 전영지 양이 실제로 연기 시범을 보여 주었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전영지 양 멋졌어요.) 그날 수업을 마치고 고모집에 들러 뒤풀이를 가졌다. 오가는 막걸리는 대화를 더욱 풍성하게 해줬고 마침 내 생일이어서 삼배주까지 했다.(4월 7일 입니다.) 밤 12시 경 뒤풀이가 끝나고 나와 회장님을 포함한 네명은 의기투합하여 동대문의 한 극장으로 심야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술에 반쯤 취해 '주먹이 운다'를 보고 새벽 4시 경 귀가했다.

넷째 날은 조명수업이었는데 이미 전 날 조명 수업을 한 지라 토요일에 있을 연극의 대본 선정과 캐스팅 작업을 하였다. 연출을 맡은 생명산업과학부 한혜미 양과 함께 대본을 읽어보고 기타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20장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배우들이 읽는 데만 45분 가량이 소요되었다. 만만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과연 다 외워서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지만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도와가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연극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다섯째 날, 분장수업

다섯째 날은 분장수업이 있었는데 그 분 소개를 잘 듣지 못하여 이름과 학과는 모르겠다. (분장하셨던 분 죄송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연출인 한혜미 양의 얼굴에 할머니 얼굴을 표현해 보았는데, 분장이라는 것이 단순히 분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고유의 성격도 드러낼 수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심지어 연극 전체의 주제를 전달 할 수도 있을 것도 같았다. 그렇게 분장수업이 있은 뒤 다음날 있을 연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섯째 날을 마쳤다.

여섯째 날은 한 주를 정리하면서 실제로 연극을 만들어 보는 날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극을 했던 나는 약간 떨렸지만 너무나 설레었다. 극회 회원분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면서 서로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이런 게 연극이란 거구나' 하고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대본을 끊임없이 외우고 실제로 연기를 해가면서 그렇게 연극준비를 하였다. 마침내 많은 극회 선배님들이 모인 앞에서 그 동안 준비한 연극 공연을 선보였다. 너무 긴장했는지, 연기는 온데 간데 없고 대본은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실수투성이었고 서툴렀지만, 선후배가 한마음이 되어 공연을 즐긴 유쾌한 자리였다. 연극은 신입생이 주축이 되어 이뤄졌고, 극의 중간 중간에 까메오처럼 등장한 극회 회원들의 익살스런 연기는 모두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 여섯째 날, 워크숍 후 뒤풀이
 
연극의 막이 내리고 모두들 아쉬워하면서 무대를 정리했다. 연극 후에는 무대를 치운 그 자리에서 바로 뒤풀이가 있었는데, 60· 70년대 학번 선배님들까지 오셔서 축하해 주셨다. 특히 올해는 고대 100주년으로 올 6월 초 국립극장에서 있을 100주년 기념 공연준비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그 분들의 극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오랜 전통의 고려대 극예술연구회는 고려대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회는 이 곳을 지나 가셨던 많은 선배님들의 자랑이었고 또 애인이었다. 지금 재학중인 많은 회원분들도, 지나 가신 그 분들처럼 극회를 동아리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느껴졌다. 한 주 동안의 연극학교는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고 또 큰 즐거움을 주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연극을 하는 것이 참 매력적인 작업임을 나 뿐만 아니라 모두 함께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내년 연극학교 때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 지 궁금하다. 그 때 또 참석해도 될런지 회장님께 여쭤 봐야겠다. 철학과 이지현 회장님, 제가 밥 한번 사지요. 그동안 얻어 먹기만 했으니…

   
   ▲ 48회 연극학교 '이바돔' 참가 회원들


김세영 (경영 02)


사진
고려대학교 극예술연구회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