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형들에게 요즘 뜨는 TV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무한도전. 제빵왕 김탁구.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은 나눔과 관련된 프로그램입니다. 재미가 없나요. 벌써.

 제가 일하는 방송국에서 피디들은 프로그램=자존심=능력이라고 생각하기에 인기 프로그램을 맡으려는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런 와중에 인기 없는 프로그램을 맡는 피디가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기도 없는데 거기다 무거운 책임감도 져야 한다면요.

 TV 프로그램에는 잘 나가는 프로그램만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Donation Program. 어려운 이웃을 소개하고 ARS 모금을 통해 긴급 후원을 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불편하죠. TV를 보며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어려움에 동참하여 함께 짐을 나누자고 요구하니까요.

 저는 IMF 경제위기가 한창 때인 12년 전 이런 프로그램을 처음 맡게 되었습니다. 그땐 주로 불우한 노인들을 소개했죠 . TV의 속성상 3B -Beauty, Beast, Baby -가 통한다는 것 방송사 입사 공부 좀 하셨다는 호형들 상식일텐데요. 불우 노인 돕기 프로그램은 3B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 시청률을 올리기도 어렵고 거기다 모금액까지 신경 써야하니 정말 맡고 싶지 않더군요. 너무나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촬영을 마치면 스텝들과 5000원짜리 점심먹기가 미안해지는, 상당히 불편한 프로그램입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는데요. 서울의 한 동네 좁은 골목길을 한참 올라가다보니 700년 된 향나무도 있더군요. 그 옆에 허름한 집이 있었는데 그 집 한켠에 세들어 사는 노인 부부를 만났습니다.

 좁은 방도 방이지만 방바닥이 울퉁불퉁했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나무가 오래되어 그 뿌리가 방의 방구들을 들어올리고 있었기에 바닥이 울퉁불퉁 하였던 것이고 어느 겨울날 연탄을 때다 연탄 가스 중독에 하마터면 돌아가실 뻔 했다는 것과 그래서 연탄 때기가 무서워 동네를 돌아다니며 못 쓰게된 가구의 얇은 판자를 주어다 불을 땐다는 것이였습니다.

 방송으로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됐고 후원금을 보내기로 결정도 하였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그 어른신들 세상을 뜨셨다고. 어른신들 밤새 안녕이라더니. 당시 저는 무척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가난은 왜 이리도 철저히 인간을 파괴하는지. 그리고 왜 대물림되어 가난한 부모는 가난한 아이를 만들며, 가난한 현재가 가난한 미래를 낳는다는 것에 화가 났습니다. 프로그램 제작에서 떠나고 싶더군요.

 10년이 더 지난 지금 다시 Donation Program을 맡았습니다. 이만하면 프로듀서 그만두어야 할까요. 하지만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저 자신입니다. 10년전엔 Give=Power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Give=Chance입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당시엔 불우한 사람들에게 나는 권력자였습니다. 내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던 교만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나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기회입니다. 인간답게 성숙할 수 있는 기회말입니다.

 기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은근한 우월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각도를 좀 틀어볼까요. 그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수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더 먹는 사람은 덜 먹거나 못 먹는 사람의 몫을 가져간 것 뿐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우월해서 더 가져간 것이라구요. 그렇다면 할말 없구요.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낮아짐이 있기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나의 것을 나누기는 무겁더라도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돈 내이소( Donation)

                                                                                                                                     <Paul 女史>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