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사이 ‘다문화사회’는 이제 우리에게 낯선 용어가 아니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다문화정책과 관심이 있었지만, 한국에 갓 시집온 베트남 신부 살인사건, 여수 외국인 근로자 수용소 참사, 다문화가정 중퇴 고등학생의 연쇄 방화 사건이 뉴스에 보도된 적도 있다. 장기간 다문화정책을 펼쳐왔던 서구사회 경우를 보면, 유럽 공공장소에서의 희잡 착용을 둘러싼 이슬람권 문화와의 충돌과 테러가 최근 발생하는 등, 인종갈등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듯하다. 우리의 발 빠른 다문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국내외 사정으로 미루어 볼 때, 안도감 주는 다문화사회 정착에 대한 전망은 왠지 불안하기만 하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식의 ‘빨리빨리’ 다문화정책은 민첩한 대응이 과도한 나머지, 충분한 사전준비와 적정성, 방향성에 대해서는 미처 손 쓸 여지가 없었던 듯이 보인다. 그동안 우리는 서구식 모델을 그대로 도입하여 표면적 모양새 갖추기와 가시적 성과 거두기에만 급급한 것은 아닐까. 정작 필요한 알맹이 다문화정책은 놓치고 오히려 엉뚱한 방향키를 작동시킨 점은 없는지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먼저,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다문화가족지원법에 명시된 이 용어의 범주 안에는 다양한 계층과 각 가정의 특성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다문화정책은 주로 농촌의 이주여성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애매하다. 또한, 이 용어는 마치 우리사회에 또 다른 부적응 계층, 소수자, 혹은 하층민이 형성되는 듯한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게 되고, 사회구성원 간 집단 분리를 조장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명칭의 사람들 역시 다문화가정이라 불리는 것을 꺼리고, 스스로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의 자긍심에 오히려 제약을 받는다. 유감스럽게도 이들이 우리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알게 모르게 각인시키고, 사회적 분리와 잠재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세대차, 부부간 성별, 종교, 지역 차이 등등, 실상은 어느 가족이나 다문화가정인 것인데, 지금은 이 용어로 인해 중국, 동남아에서 시집 온 이주여성들을 지칭한다는 새로운 고정관념을 만들어 내고, 다문화교육 대상과 내용에도 혼선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둘째, ‘민족’이라는 용어의 신화에서 벗어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서구 근대국가 형성 시기에 사용되기 시작하여 우리에게 도입된 이 용어가 국가 단결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지만, 실제로 ‘다문화’와 배치되는 개념은 아니다. 민족주의, 다문화사회, 이 둘은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실체로서보다는 다만 우리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동일한 사회를 다원주의 시각에서 다양성과 평등성을 강조하여 인식하거나, 사회의 집단 통일성에 우선적 가치를 두고 혈연적 신화적 의식을 통해 동질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보느냐가 다를 뿐이다. 우리의 다문화사회 논쟁과 정책의 바탕에는 이 점이 간과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셋째, 이주여성에 대한 우리의 복지지원활동의 실상은 한국 땅에 들어와 사는 외국인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내국인들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 자신을 위한 방편이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가난한 나라의 이주여성들이 우리 세금으로 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농촌의 젊은 인구 감소와 다수의 농촌총각들의 심각한 결혼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들이 젊은 결혼이주여성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와 농촌문제에 직면한 우리사회의 최선의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외국인 근로노동자들은 한국인이 마다하는 3D업종 일들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도 기꺼이 일 해주는 사람들이다.

현재 등록 외국인 인구는 약 백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지금은 다문화사회인가? 외국인 인구 몇 명이라는 수치만으로 다문화사회를 말하기에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배타적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난 구성원들이 ‘서로 다름’을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회는 지금까지 처럼 ‘동일함’이 익숙하게 머문 사회보다 더 구현하기 어려운 것일까? ‘차이’를 존중하고 ‘서로 다름’에 관용하는 자세를 구성원들이 더 편안해 하고 당연시 하는 사회가 진정 다문화사회일 것이다. 결국 다문화사회는 우리의 인식과 시선 속에 존재하는 것이리라.

김선미 순천국립대 교수·교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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