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예술인복지법이 발효되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출범했다. 법이 통과된 지 1년 만에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물론 시행령과 규칙도 발효되었다. 모두 정해진 일정대로 진행되었으니 어쨌든 잘 된 일이다. 최초 법의 제안서부터 통과까지 그 답답하고 복잡했던 과정을 생각하면 시행령 확정까지의 논란은 사실 너무도 싱거울 정도이다.

애초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순천향대 최한준 교수의 연구를 토대로 예술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제안한 법안에는 예술인에 대한 4대 보험 보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러 국회의원들이 각기 발의하여 나중에 하나로 모이게 되는 법안들도 모두 이 예술계의 시안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였고 따라서 4대 보험 보장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무 협의를 거치면서 건강보험은 지역 가입이 가능하니까, 또 국민연금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니까 하는 식의 이유로 일찌감치 제외되었다. 사실 건강보험 못 내는 예술인도 많고 국민연금 가입은 엄두조차 못 내는 예술인도 많건만 그러한 현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었다. 사실 둘 중 선택하라면 고용보험이다. 예술인 복지와 관련하여 가장 자주 거론되는 프랑스의 경우 공연예술인들이 1년에 4개월 정도 일을 하면 나머지 8개월 정도 일종의 실업급여를 지급한다. 다른 분야 예술에 대해서도 이에 준하는 보장을 해주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고 그래서 기존의 고용보험에 편입시키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예술계에서 준비한 법안에 근로자의제, 즉 기존의 근로자 개념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예술인을 유사 근로자로 본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산재보험만 남고 고용보험은 제외된 채 법안이 통과되었다. 사실 산재보험은 예술인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핵심은 고용보험이 없는 예술인복지법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법이라는 비난을 들어 마땅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예술계는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안 통과에 동의하였다. 비록 내용이 없는 법이지만 예술인의 중요성을 인정한 최초의 법이라는 데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사실 아무리 법을 잘 만들어도 집행의 의지나 능력의 부족으로 유명무실해지는 경우도 많다. 반면에 아무리 보장 내용의 명시가 약한 법이라도 그 법의 근본 취지를 적극적으로 살리는 정책을 펼친다면 훌륭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예술계는 당연히 이 후자의 경우를 기대했던 것이다.

사실 시행령 확정 과정에서 지적된 문제점들은 얼마든지 수정 보완이 가능한 것들이다. 특히 예술인의 범위를 정하는 문제는 계속해서 자료와 검증 능력을 축적시켜가며 발전시켜 나갈 일이다. 그리고 마치 프랑스에서 공연예술인들을 기준으로 제도를 마련한 뒤 같은 취지로 모든 예술인들에게 적합하게 보완하였듯이 산재보험의 적용 범위도 계속 사례를 추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실체가 드러난 이 시점에서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우선 재원이다. 문화부는 내년 예산으로 350억 원 정도 책정했으나 기재부는 이를 70억원으로 대폭 삭감했다고 한다. 그나마 국회가 나서서 다시 370억원의 예산안을 예결위로 보냈다 하지만 이 또한 결과는 확신할 수 없다.

물론 문화부나 국회가 책정한 액수도 거의 상징적인 차원에 불과하다. 그중 복지기금 적립액 200억 원 정도와 복지재단 운영비 등 경직경비를 빼고 나면 실제 내년에 예술인들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안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기재부는 복지재단마다 정부에 손을 벌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식이다.

예술인복지가 중요한 것은 예술이 국가의 근간이며 따라서 예술인 역시 국가를 유지하는 필수 구성 요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독자적으로 생존하라고 방치할 경우 소멸될 우려가 큰 집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존심에 우는 소리를 안 하는 예술인들조차 찾아내서 복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마땅하건만 기재부의 태도는 제각각 손을 벌리는 여러 집단 중 하나로만 보는 듯하다.

사실 선언적 의미가 큰 예술인복지법을 통과시킬 때 커다란 전제가 있다. 즉. 가능한 한 많은 예술인들이 예술인복지법이 아닌 일반 복지에 편입될 수 있도록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일반인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활성화와 같은 일을 통해 대대적인 예술인 고용창출 정책을 펼쳐야 한다.

듣기로는 기재부도 이 부분의 예산을 다소 늘리는 데 동의한 것 같다. 그러나 전 국민 1인 1예술 시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대세이고, 이런 환경에서 예술인들이 전 국민에게 봉사하며 꼭 필요한 사람으로 존중받는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당국의 획기적인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예술인은 더 이상 베짱이처럼 놀고먹는 사람들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인들이 전 국민의 행복과 창의력과 국가경쟁력에 가장 중요한 양분을 제공하는 고마운 사람들로 존경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오세곤 순천향대 연극무용학과 교수,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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