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찬바람이 불어오는 이맘때면 대학 입학을 앞두고 설레던 기억이 난다.

남들보다 먼저 2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했던 10여 년 전 나는 인생 최대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더 이상 나를 간섭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처음 맞아보는 온전한 시간에 하는 것 없이도 마냥 좋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기쁨에 겨워 살다보니 바람처럼 한 해가 넘어갔다. 비로소 사회적으로 성인인 스무 살이 된 것이다.

새해 첫날밤을 맞이하려고 친구들과 모인 곳은 동네 술집이었다. 우리가 성인임을 실감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 그곳이기 때문이었다. 떳떳하게 술을 마실 수 있게 됐음을 우리 모두 자축했다. 어른들의 보호 없이 술에 합법적으로 다가서지 못했던 우리는 이제야 작은 울타리에서 벗어났음을 실감했다.

‘민증 검사’에도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응했다. 오래된 일이지만 아직도 그날 풍경과 기분은 잘 잊히지 않는다. 왠지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대학에서도 음주가 자유처럼 느껴졌던 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2월에 있었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 선·후배 할 것 없이 주량을 뽐냈다. 우리 신입생들은 12년 동안 교실 귀퉁이에서 받아온 압박감과 울적함을 술잔에 담아 한잔, 한잔 들이켰다. ‘이날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마시다 하나둘 쓰러지기도 했다.

오랜 기간 제도권 교육 속에서 갑갑했던 내게 캠퍼스의 공기는 무척이나 자유로웠다. 그 가운데서도 음주의 자유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대학생들은 압박과 스트레스의 총량만큼 잔을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악마처럼 숙취가 찾아온다는 사실도 깨달았지만 충분히 고통을 감내할만했다.

그러나 어느덧 사회 분위기도 변했다. 언론과 경찰에서는 연일 우리 시대 신인류인 ‘주폭(주취 폭력자)’들을 성토한다. 어떤 대학에서는 축제 때 주점을 꾸리는 일을 두고 학교 측과 학생들이 갈등을 빚기도 했다. 최근엔 술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팔도록 한다는 소식도 있었다. 술이 모든 악의 근원처럼 된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술 때문에’라는 핑계는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통하지 않는다.

물론 술이 한국 사회에 끼친 ‘해악’을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술 권하는 사회’라는 말이 대변하듯 우리 사회가 대학생들을, 주폭들을 음주 없이 견디기 힘들게 했다는 점도 분명하다. 수백 명 주폭들의 직업이나 소득이 대부분 사회 최하층이었다는 건 뭘 얘기해주는 걸까. 내게 한때 술이 자유의 상징이었듯 그들에게도 거의 유일한 도피처 역할을 해준 것은 아니었을지.

음주만 죄악시하는 바람몰이보다 그 너머 억압과 분노의 원인을 들여다보는 게 더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일까. 주폭이란 단어를 볼 때마다 착잡한 기분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윤재언 매일경제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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