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을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규정한다. 국회와 더불어 국민의 대표기관 그 자체이기도 한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되기에 대통령의 권한이 강한 편이다. 이러한 대통령의 권위는 대통령의 특권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대통령 고유 권한으로 불리는 '법률안 거부권'과 '특별 사면'에 대해서 짚어봤다.

 

법률안거부권은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에 대통령이 승인을 거부해 법률로써의 성립을 저지하는 권한이다. 헌법 제 53조에 따르면,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돼 이의가 없으면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이의서를 첨부해 국회로 돌려보내 재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거부권은 제헌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각 정권마다 특색을 띠며 1948년 ‘농지개혁법안'을 둘러싼 정쟁부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까지 굵직한 정치 사건들의 뒤에 있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대통령이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는 64건이다. △이승만 대통령 45건 △박정희 대통령 5건 △노태우 대통령 7건 △노무현 대통령 6건 △이명박 대통령 1건이 다. 최근부터 역대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 행사의 결정적 장면을 짚어봤다.

2013년 1월 22일 : 정권 말, 의외의 반기를 들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야 합의를 통해 통과한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임기 내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대통령은 이의서에서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것이 당해 법률의 본래 입법취지와 맞지 않다는 점, 재정부담이 과중된다는 점을 들어 거부 사유를 밝혔다. 김두래(정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여야가 합의하에 통과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 자신의 정책적 판단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김선화 국회입법조사관은 “해당 사안이 선거철을 맞아 표를 의식해 등장한 선심성 법안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2003년 11월 25일 : 국회와 대통령의 극화된 갈등
이날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비리 특별검사법안’에 대한 법률안거부권 행사는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소추의 단초가 됐다. 노 대통령은 측근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자 “특검으로 측근비리 여부를 밝히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며 온건한 수용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야당 의 강력한 특검 실시를 촉구하는 장외투쟁 선언에 반발하며 거부권 행사를 강행했다. 결국 여소야대 정국에서 비난여론이 겹치며 재의결 당시 재적의원 272명 중 266명이 참여, 찬성 209표로 약 80%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1988년 7월 15일 : 전관예우인가, 법리적 문제인가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안’과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노 대통령은 거부권과 함께 첨부한 이의서에서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안’ 중 3분의 1이상의 찬성으로 국회의사를 결정하도록 한 것은 다수결의 원칙에 어긋나며, 지방자치단체의 감사는 지방의회의 권한이므로 국회에게 감사권을 부여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법률안’에 대해서는 “국회 위원회 의결로 증인을 강제로 법정에 소환하는 제도는 사법권에 대한 침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반민주행위자들을 법정에 세우기 위한 국민의사가 반영된 만큼 특위활동을 마비시키기 위한 거부권 발동은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1975년 11월 1일 : 강력한 대통령, 고개 숙인 의회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유신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된 법률안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안'으로, 재의결 결과 폐기됐다. 박 대통령은 16년이라는 역대 최장의 대통령 재임기간 중 5건밖에 법률안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국회와의 합의를 통해 철회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관철시켰다. 김두래 교수는 “유신 이후 박 대통령은 국회 의석 중 3분의 1을 공천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등 초법적 권한을 갖고 있어 굳이 법률안거부권으로 의회를 견제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1949년 5월 9일 : 조용하지 않은 시작
‘농지개혁법안’의 국회 환송이 결정됐다. 지주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던 야당 한민당과 농민을 지지기반으로 두던 이승만 대통령 사이의 이해관계가 원인이 됐다. 당시 소장파 세력이었던 윤재근 의원은 “지주만을 위한 토지분배는 결국 농민들을 북한으로 이탈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며 야당을 비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 12년간 45회의 거부권을 행사했을 정도로 법률안거부권 발동 횟수가 잦았다. 이를 두고 김선화 입법조사관은 “당시는 헌정 초반인 만큼, 정치적 문제에 의해서라기보다 재산권 등 이권 조항과 관련한 법률안거부권 행사가 주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현재 : 법률안거부권 행사의 방향은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 행사에 대한 명문규정이 없다.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경우’라고 정해 놓아 행사 범위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법률안거부권 행사는 대통령의 자유판단에 달렸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법률안 환부 당시 이의서를 붙이도록 한 것처럼 거부권 행사에는 정당한 이유와 기준이 필요하다. 통상적으로 인정된 기준으로는 △헌법 등 상위법에 위배되는 경우 △집행이 불가능한 경우 △국가적 이익에 반하는 내용을 담은 경우 △행정부에 대한 부당한 정치공세에 해당하는 경우 등이 있다.

김두래 교수는 “거부권은 행정부가 입법부를 견제하고, 입법부는 재의결을 통해 다시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상호방향의 균형을 유지하는 제도인 만큼 합리적으로 행사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화 입법조사관은 “우리나라는 미국과 다르게 행정부의 법률안제출권을 인정한다는 점이 특이하다”며 “의회 출범 당시 의회의 전문성 결여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등장했지만 현재는 의회의 전문성이 신장되고 의회의 법률안제출 비율이 증가한 만큼 추후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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