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준 의과대 교수·보건대학원장
                                     윤석준 의과대 교수·보건대학원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매년 발간하고 있는 <OECD Health at a Glance>라는 책자를 보면 OECD 회원국들의 건강 수준과 관련된 비교가 일목요연하게 제시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대부분의 지표에서 평균을 넘어 상위권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일례로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률, 암으로 인한 사망률 등 신체 건강과 관련된 지표는 거의 우수한 수준이다. 그런데 마음 건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단위 인구당 자살률은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마음 건강과 연관된 다른 지표인 주관적 건강 인식 역시 OECD 평균이 약 60% 정도인 데 비하여 우리는 40% 수준을 밑돌고 있다. 신체 건강은 당뇨병으로 인한 입원율 등 일부 지표를 제외하면 세계 최우수 수준인 데 비해 마음 건강 수준은 최하위 수준인 것이다. 무슨 이유일까? 자살의 원인을 분석하다 보면 남성 노인 자살률이 높은 것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필자는 보건복지부 장관 법적 자문기구인 ‘중앙 정신건강 복지사업 지원단장’을 역임한 경험이 있다. 이 당시 기초자치단체 자살예방센터장인 정신의학과 선생님들과 의견을 나누다 보면 추석과 설 명절이 지난 후 지역사회 독거 남성 노인들이 자살한 채로 발견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한다. 다른 이웃들은 가족들이 모여 즐거운 정을 나누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로움이 자살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이유로 추정된다.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이웃 동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훈련이 상대적으로 잘 되어 있는 데 반해 남성 노인들은 고립된 경우가 많다. 노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 요소를 흔히들 신체 건강, 물질적 경제력, 말벗 친구를 이야기한다. 이 세 요소 가운데 더불어 살아가는 말벗의 존재는 독거노인의 증가 등으로 인해 자살 예방을 위한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자 수는 인구의 1%인 50만 명에 가깝다는 통계가 있다. 필자가 2017년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반복성 우울증 3대 중증질환으로 해당 연도에 한 번이라도 의료보험을 이용한 국민이 약 43만 명이었다. 낮게 추정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해 보면 우리 국민의 1%인 약 50만 명 가까이가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크기가 이처럼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이들 중증 정신질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지나칠 정도로 배타적이다. 폭력성을 부각하는 언론도 문제이지만 우리 국민이 이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가까이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있지 않다. 중증 정신질환자들의 입원 기간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퇴원 후 머물러야 할 그룹홈 등 지역사회 재활시설들도 님비(NIMBY) 현상 등에 의하여 설치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정신 질환자들의 자살률은 일반인보다 4.7배나 월등하게 높다. 마음이 아파 ‘정신 장애인’이 되었는데 의지할 곳이 없어 자살에 이르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의 행복 척도는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만족감이 지배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대부분의 우리 국민은 행복의 기준이 타인의 주관적 평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러한 외부의 평가 기준에 따른 주관적 행복은 늘 상대적이기 때문에 마음이 허기져 있기 마련이다. 물질적 축복을 넘어 마음의 행복을 누리는 세상을 만들어야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저출산, 높은 자살률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대학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마음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학생과 구성원들의 훈련장을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윤석준 의과대 교수·보건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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