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준 의과대 교수·보건대학원장
                                                  윤석준 의과대 교수·보건대학원장

 

  대한민국 국민의 의료 이용 빈도는 입원과 외래 공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연간 외래 방문 횟수는 탁월하게 1등이고 입원을 통한 연간 입원 일수 역시 압도적이진 않지만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과거 국민건강보험이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1989년 이전까지는 병원과 의원을 방문했을 때 지불해야 하는 진료 비용으로 인해 의료이용의 제약을 크게 경험한 국민이 드물지 않았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보편적으로 도입되었다. 그 당시 제일 우려했던 지점이 경제적 장벽이 줄어들 때 반대급부로 과다하게 의료이용을 많이 하게 되는 점이었다. 그 현상을 방지하고자 의료전달체계로 불리는 정책을 도입한 바 있고 지금도 제도 자체는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동네의원과 중소병원을 거쳐 필요하다고 의료진이 판단하면 더 큰 대학병원 급의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용하는 질서는 거의 무너져 버렸다. 우리 국민 누구나 본인이 판단했을 때 조금 중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대학병원(대부분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상급종합병원의 외래 진료실은 항상 과밀하다. 특히 주말을 지난 월요일 오전의 외래는 그 과밀함이 매우 심하다. 대학병원의 유명 의사 외래 예약은 몇 달 이상을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은 기다림을 순응하지 않는다. 지인이나 관계자 등의 도움을 받아 조금이라도 시간을 앞당기려 한다. 필자는 청탁금지법(이하 김영란법)의 발효 시점 전과 후에 모 공공기관의 파견 임원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그때도 가장 큰 민원은 국회나 정부 관계자 등으로부터 병원 외래 시간 앞당기기 등 병원 관련 민원이 압도적이었다. 필자가 전해 듣기로 김영란법이 발효되어 정착된 이후에도 이런 관행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필자의 지인이 영국 런던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늦은 저녁 시간에 머물던 호텔에서 복통 증세를 느껴 마침 근처에 유명한 종합병원이 있어 응급실을 방문했다 한다. 병원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 담당 의료진이 몇 가지 증상을 점검하더니 당신은 응급환자가 아니니 귀가하고 필요하면 외래를 예약해 다시 방문하라 해서 호텔 방으로 되돌아왔던 일을 전한 상황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아마도 해당 병원 또는 보건소 등 관련 공공기관에 진료를 거부했다는 민원이 접수되어 한동안 시끄럽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판단기준은 정서적인 측면이 앞설 때가 많다. 이미 확립된 제도에 대한 순응보다는 편의를 봐줄 수 있는데 왜 안 도와 주는지를 서운해한다. 그나마도 요즘은 ‘갑질’이나 부당한 민원 등으로 가끔 곤욕을 치른 경험이 인터넷상에 공유되기 때문에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필자의 경우도 지인의 도움을 받아 종합병원급 이상의 병원을 이용할 때 진료 시간을 앞당겨 본 경험이 있음을 고백한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자기 자신이 의료이용할 때는 가급적 정해진 순서를 지키려 하지만 부모님 등 집안의 어르신 관련 사항은 주변 가족의 압력 등으로 인해 정해진 순서를 지키기가 무척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강의 시간에 이러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성향을 제도에 순응하기보다는 제도를 극복하려는 경향이 더 강해 보인다고 농담처럼 설명하곤 한다.

  의료전달체계의 준수는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일 수 있고 건강보험재정 및 자원의 낭비를 막아 선순환의 질서를 형성할 수 있다. 일종의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약속인 셈이다. 불편하더라도 다수가 사회적 약속을 지키는 세상을 소망해 본다.

 

윤석준 의과대 교수·보건대학원장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