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제작에 필요한 시간, 1년

“초기 작업에 특히 공들여”

로컬라이징으로 해외 독자 유입

 

마포구 YLAB 사옥 앞에 걸려있는 소속 작품들.
마포구 YLAB 사옥 앞에 걸려있는 소속 작품들.

 

  스토리 기획부터 연출, 작화, 편집까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작품 창작을 분업하는 ‘웹툰 스튜디오’가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웹툰 스튜디오의 수는 127곳에 달한다. ‘참교육’, ‘한림체육관’, ‘스터디그룹’ 등 인기 웹툰을 제작한 웹툰 스튜디오 YLAB(와이랩)은 글로벌 웹툰 제작과 번역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YLAB EARTH(와이랩 어스)를 설립했다.

 

  다수의 생각을 하나의 작품에

  서울특별시 마포구, 한적한 골목길 안쪽에 눈길을 끄는 건물이 있다. 웹툰 제작사 와이랩 어스다. 글로벌 시장을 타겟으로 한 웹툰을 기획하거나 웹툰을 번역해 해외에 수출하는 일이 주 업무다. 벽에는 다양한 표정의 캐릭터들이 행인들을 반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가면 분주한 2층의 작업실을 마주할 수 있다. 복도에 늘어선 웹툰 ‘쿠쿠쿠쿠’ 캐릭터의 인형과 와이랩 소속 캐릭터 굿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을 열자 새하얀 작업실과 줄줄이 선 책상들이 이어진다. 책상 위에는 드로잉 툴과 컴퓨터가 놓여 있다. 한 작가는 웹툰 스토리를 읽어 보며 태블릿으로 그리고 지우길 반복했다. 다른 작가는 옆에서 콘티를 그렸다. “과거 출판 만화 시절과는 달리 태블릿으로 주로 작업하고 있어요.”

  와이랩 어스의 대표 프로듀서 신의철 작가는 매일 오전 10시, 회의로 하루를 시작한다. 작가와 편집자, 작화가 등 많은 이들이 참여한다. “작품은 여러 사람을 거칠수록 계속 좋아지거든요. 혼자서는 객관화도 부족하고요. 그래서 관련한 회의나 논의를 많이 거치는 편입니다.” 빽빽한 일정표와 노트는 작품 하나에 쏟는 시간과 노력을 보여 준다. 회의 과정에선 콘티를 보면서 어떤 기획을 웹툰으로 만들지 결정한다. “최대한 재미있고 흥행할 만한 웹툰을 기획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초기 아이디어는 보통 *CP(Chief Producer)가 내는 경우가 많지만, 개별 작가의 기획도 흥행 요소만 있다면 웹툰으로 발전할 수 있다. “회사는 수익을 창출해야 하니 대중성이 있는 작품들 위주로 기획하게 되죠. 흥행이 보증된 웹소설 기반 웹툰이 늘어난 것도 웹툰 스튜디오들이 많아져서 그런 면이 있어요.”

  기획이 통과되면 그림 작가와 일정을 조율한다. “보통 동시에 3화 분량의 콘티를 그려요. 이후에는 그림 작가와 함께 캐릭터 디자인과 샘플 컷 작업을 진행합니다. 연재 준비를 위한 초반의 시간은 인고의 과정이에요.” 

  원고를 그린 후에는 네이버웹툰과 같은 플랫폼에 투고한다. “독자분들이 예전엔 4화~6화까진 봐 주셨는데 요즘은 1화가 재미없으면 안 보세요. 초반부 기획이 작품을 계속 읽을지 좌우하기에 준비하는 데 몇 달씩 걸리기도 하죠.” 플랫폼 편집부에서 연재 결정을 받게 되면 비로소 작품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그렇게 정식으로 연재되기까지는 짧아야 8개월, 일반적으로는 1년 정도 소요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매주 독자들에게 평가받는다. 16년째 웹툰 업계에 있는 신 작가도 독자의 평가는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작품을 준비할 때는 12시에 잠들어도 3시쯤 잠깐 눈이 떠지면 걱정 때문에 다시 잠이 안 와요. 그러면 집에서 일을 하다 눈을 다시 붙이고 8시, 9시쯤 출근하죠.” 재밌는 웹툰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건 이미 일상이 됐다. “작가가 그리고 싶은 것과 대중이 원하는 것이 일치하는 게 제일 좋은데 그게 쉽지 않아요. 모든 작가의 고충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주 반복되는 마감에 밤샘은 일상이다. 작업실마다 빈 커피 캔이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고, 냉장고는 피로회복제로 가득 차 있다. 작가들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책상에 앉아 작업을 이어나갔다. 건강이 나빠지기 십상이다. 손목에 보호대를 차고 있는 작가도 눈에 띄었다. “목, 허리, 손목이 시린 건 ‘작가병’인 것 같아요. 최근에는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하고 있어요.”

 

회의 내용을 반영해 작업실에서 콘티를 작업하는 모습.
회의 내용을 반영해 작업실에서 콘티를 작업하는 모습.

 

  번역과 수출도 도맡아

  해외시장이 커지며 번역 사업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한층 더 올라가면 원작 웹툰의 번역을 진행하는 작업실이 있다. 유명 작품인 ‘마음의소리’나 ‘노블레스’, ‘갓오브하이스쿨’이나 최근 인기를 끌었던 ‘여신강림’, ‘외모지상주의’, ‘현실퀘스트’ 등 다양한 작품들도 와이랩 어스에서 번역을 담당했다. 장보람 와이랩 어스 이사는 “한국은 이미 레드오션이다 보니 해외시장에서 저변을 넓히는 게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작업실 내부에서는 번역 전문가들이 대사를 입으로 중얼거리며 작업하는 모습이 보인다. 원작을 읽어 본 후 작품의 흐름에 맞춰 편집과 번역을 진행하며 일일이 검수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직역보다는 맥락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춰 ‘제2의 작가’ 역할을 합니다.”

  번역은 원작 웹툰의 제작에 맞춰 매주 진행된다. 한국의 연재분을 2~3일 내로 번역하는 ‘실시간 번역’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최근 작품 수출에서의 트렌드는 실시간 번역이에요. 한국에서 월요일에 연재된 작품을 적어도 목요일에는 다른 국가에 연재할 수 있게 하고 있어요.” 

  원어민들도 번역 작업에 참여한다. 대부분 현지 문화를 잘 알기에 번역 작업에 큰 도움이 된다. “'슬램덩크'의 주인공들이 강백호, 서태웅 등 한국식 이름으로 나왔던 것처럼 일본에 서비스되는 작품도 한국 캐릭터의 이름을 다 일본식으로 바꿔서 서비스해요. 군대를 유학으로 표현하는 등 작품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번역합니다.” 

  작가들은 매주 재미있는 작품들을 선보이기 위해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는다. “벅차지만 응원하는 댓글과 독자들 덕분에 이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관심과 응원 덕에 하는 일도 즐거워요.”

 

  *CP(Chief Producer): 웹툰의 기획, 제작 등을 담당하는 책임 프로듀서

 

글|도한세 기자 dodo@

사진|하동근 기자 hdng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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