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반다지 장 속에 내가 아끼는 소품과 마음의 정표로 받은 선물 증명서 등을 간직해 둔다. 이것들을 하나하나 보노라면 내 인생 역정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모교 고려대학교 어윤대 총장님의 "글로벌 KU프로젝트" 주제 강연이 있었다.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과거 고대가 민족의 독립투사 민주화에 앞장서는 리더와 정치가를 많이 배출했다면 앞으로 1백년은 한국의 지도자는 물론 세계적 지도자까지 배출하는 글로벌 리더를 양성할 고려대로, 국제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시스템을 개혁해 가겠다는 포부, 그의 혁신과 열정어린 진두 지휘가 CEO 대학총장이라는 칭송에 맞게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세계100대 대학 진입을 목표로 외국 유수 대학과의 교류확대, 모든 전공과목의 일정비율 영어원강강의, 국제 한국학센터 설치 등 세계적 차세대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고려대학을 세계화로, 세계화의 시대적 흐름에 앞서가는 안암의 언덕은 힘찬 변화의 물결로 웅비하고 있다. 
 70이 넘은 선배는, 우리시대에 영어로 강의를 듣고 전공을 따라 외국유학의 길을 열어주는 세계적 지도자양성을 위한 매년40억이 투입되는 모교혜택(母校惠澤)을 받는 대학생활이었다면 오늘의 이 자리보다 발전된 삶의 현장에 진출되었으리라 생각되어 오늘의 후배들의 복된 학교생활이 부럽게 느껴진다. 고대인이 자랑스럽다.

 1954년 1학년 때 변우창 교수님은 법학통론 강의에 앞서 우리에게 "자존심"을 가지라. 좋은 의미의 자존심이야말로 인격이다 하셨다. 일제하 고려대학이 가슴 아팠던 한 토막을 말씀하신다. 군수품 수탈에 급급한 일제가 강의실 의자의 가죽커버까지 뜯어간 사건이다. 교수님과 학생들은 나라 빼앗긴 치욕 비통함에 강의실은 침묵이었다 한다. 자주독립국가 부강한 국민으로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애국 애족의 뜨거운 불길이 용솟음쳐 학생과 교수 선후배가 한덩어리로 세계적 인재 지도자를 배출하는 민족대학으로, 나라의 초석이 될 것을 절규 결의하며 애교 애국을 가슴에 새겼다 한다. 그 때의 교가(校歌)
 “젊은 가슴 숨은 생명 힘 넘쳐 뛰노라 이 힘이며 이 생명을 펼 곳이 어데냐   눌린 자를 쳐들기에 굽은 것 펴기에 쓰리로다 펴리로다 이 힘과 이 생명    고려대학  고려대학  우리모교  고려대학”

고대인의 기상과 정의감 애국 애족의 열정이 담겨있다. 교수님은 먼저 고대인의 혼, 자존심 있는 인격, 지도자가 되라 하셨다. 이렇게 고대의 전통은 살아 숨쉬며 우리를 새롭게 깨어나게 한다.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는 법! 고대인의 최고의 지성과 야성 연마(硏磨)의 열정으로, 자유 정의 진리를 실현하는 나를 키워가라며 "자존심을 심어주신" 그 열강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살아가며 난관에 부딪쳤을 때 특히 자존심이란 것을 많이 생각했다. 어떤 선택이 자존심 있는 자의 삶일까? 이 시점에서 꼭 해야 할 일을 세심히 살피고 패배의 쓰라림을 딛고 살아남는 것이 참 의미의 자존이오, 강한 고대인의 어머니답게 사는 것이라 믿고 자식들을 키워내리라 결심했다. 남편의 3번에 걸친 좌절에도 3번 일어서는 기회로 창출함으로써 내 인생에 승부를 걸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마지막 웃는 인생의 승부를 놓고  선비의 삶으로 마음을 가누면서 외롭게 처절히 나를 지켜왔다. 그것은 어머니로 자식을 지키는 것이 나의 자존심인 것을 깨달았다. 나의 간절한 기도와 소원은 오로지 자식교육 이었다. 버스 안의 고학생을 보며 내 자식으로 떠올려 가슴으로 눈물을 흘렸고 살아남아 자식교육을 돌보는 존재가 바로 나의 구원임을 알았다. 낙선후의 生活苦는 우리가족에게 새로운 희망찬 창문을 열어주는, 자신을 바로 알게, 세상을 볼 수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 내 자식에게 돈의 소중함과 절약을 가르치기 위해 갖고 싶은 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로 할 때 사라고 타이르며 절약과 불편도 참고 이겨내는 인내의 실천을 가르쳤던 기억이 난다.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한 마리 학(鶴)이 되어 유유자적 세상을 읽고 바로 보는 단순과 여유로운 깨끗한 내 생애를 남기고 싶은 것이었다.

 녹색연합-국민대 합동조사에서 한국대학생 절반이상(55%)이 소비중독 바이러스에 감염, 인터넷쇼핑몰을 하루 3회 이상 방문하고 대화 중 사고싶은 물건들의 얘기를, 물보다 음료수를 더 많이 마신다는 소비성향을 본다. 우리들 대학생시절 6.25와 9.28 수복이후 첫 입학생으로 수도서울이 우리에게 보여준 전쟁잔해와 참상은 폐허 그것이었다. 동대문 청계천 변 "하꼬방" 판자촌이 삶의 근거지로 상권을 이루고 있었다. 중앙청 꼭대기에 태극기가 꽂혀진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고 종로 4거리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들의 폐기물을 간신히 쳐들고 그 속에서 겨우 은신하며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우리 대학생활에서 미국유학을 마친 교수님들이 미국의 대학에는 콜라를 마시며 아이스크림과 꼭지를 눌으면 음료수가 나온다는 말씀에 미국이 천국 같아 그 풍요에 황홀해 했던 적이 떠오른다.

 그 당시는 시골의 산과 논 밭 을 팔고 농사일을 돕는 일꾼 소를 팔아 등록금을 냈기에 대학상아탑을 우골탑(牛骨塔)이라 했다. 그 시절 대학생은 정장 한벌없이 군작업복을 검은 물감 염색해 입었고 검은 와이셔츠로 사철입고 다니는 남학생, 겨울철 자취방의 문고리가 쫙쫙 달라붙는 손시림속에 담요를 뒤집어쓰며 책을 보던 우리네 대학생활과는 너무도 격세지감이다. 오늘의 화장실문화와 난방시설 교통의 편리함 그때의 교정에서 승용차를 보기란 힘들고 이따금 택시를 발견할 뿐이었으니까...  학교 앞 천 변에서 일요일엔 빨래를 하고 머리를 감으며 시험 땐 임업시험장의 나무그늘 밑에서 책을 보았던 그 시절이 동요처럼 떠오르며 정겹게 느껴진다. 지금 아파트 자리는 채소밭으로 분뇨냄새가 향기처럼 풍기기도 했다.

  오늘의 후배들에게 일러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생은 다 차려놓은 밥상 앞에 손님으로 앉는 인생으로 시작함 보다, 내가 하나하나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가꾸며 내 노력의 대가로 살아갈 때, 진정 성공의 내 인생을 그리고 행복을 갖는다라 하겠다. 그대들은 소비에서 성취욕과 만족을 캐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생각과 마음으로 "완벽히 만족" 하는데는 간절히 소원하여 이루어질 때 그 노력의 대가에서 우리는 행복을, 나의 구원을,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얻어냄이다. 최상의 마음의 평화는 그 사람 나름대로 갖는 행복감에 있다.

 모교 100주년 기념행사로 고려대학교 박물관장 최광식교수는 선배님들의 그 시절 사진과 빼지 등 역사유품이 될 것들을 기증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내 반다지 장 속의 소장품 중 가장 소중히 간직해 온 학생증이 떠 올랐다. 유효기간 단기4288-4289년 법학과 2학년 학생증이다. 54학번이니 반세기가 지난 학생증이 다시 부활 모교 박물관에 역사의 유물로 장식될 것을 생각하니 그동안 간직한 시간들이 너무도 소중해 가슴 터질 듯 기쁘다. 유진오 총장님께서 개교 50주년 기념 행사에서 이병노 초대대법원장께 법학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기념촬영 사진도 함께 전달했다. 박물관 후배는 그 시절 몇 장의 사진과 학생증을 받아보고 반기며 어떻게 이렇게 깨끗이 간직했느냐며 사진의 내용도 잘 알고 있었다. 1954년 禁男의 집으로 우리 여학생들만의 휴식공간으로 여학생관에서 우리1학년 입학을 축하해 주시던 교수님과 여자선배님들의 시진도 있다. 그 때의 교복과 노트 책가방은 없느냐며 찬찬히 유물을 챙기는 남자교우 박물관 과장의 성실성이 돋보인다. 50년이 넘는 1장의 학생증을 애지중지 아껴옴은 애틋한 고대사랑 모교사랑의 징표 이리라.

 세상은 자연은 순환한다. 하루도 동트는 새벽에서 정오의 작렬함 절정에서 석양의 황혼으로 저문다. 다시금 내일 해가 뜨고 진다. 우리는 이 자연에서도 충분히 인생을 읽을 수 있다.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도 하늘은 특정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은 생명이 존재하는 한 어느 위치에  서던 기회요 위대한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안암동산의 젊은 꿈 기상이, 세계만방에 거침없이 솟아나고 펼쳐져서 영원한 평화, 인류의 행복을 위해 쓰여지고 빛나기를 기원하는 바다.                       

 金 禎 珠(법학과54)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