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계의 ‘패티김’과 ‘이미자’

▲ (출처=스포츠조선)

허구연의 성공가도를 지켜본 경쟁 방송사들에겐 때 아닌 비상이 걸렸다. 거의 전경기를 라디오와 방송을 총동원해 중계해야할 정도로 야구의 인기는 대단한 것이었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선 허구연과 같은 해설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등장한 이가 바로 하일성이다.

하일성은 당시 환일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체육교사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선수 생활을 했지만 선수로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의 재치있는 말솜씨를 알아본 야구계 인사를 통해 방송에 입문하게 된 그는 친근하면서도 편안한 방송으로 팬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1980년대 해설계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쳤던 두 사람은 확연히 다른 해설 스타일을 지니고 있었다. 허구연이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확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해설을 한다면 하일성은 팬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편안한 어투로 해설을 진행한다.

만약 투수가 타자에게 원래 의도했던 것과 다른 곳에 공을 던져 홈런을 맞은 경우
하일성: 아, 저건 아니죠. 실투입니다. 실투....
허구연: 볼 두 개 정도가 빠지면서 타자가 좋아하는 인코스 쪽으로 공이 들어갔네요...제가 경기전 타자를 만났을 때...

두 사람의 차이를 보여주는 멘트다.

20여년이 넘게 선의의 경쟁자로 활약했던 그들은 야구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80년대 팬들은 그들을 ‘패티김’과 ‘이미자’라 부르며 라이벌 관계에 대한 별명을 붙여줬고, 지금도 네티즌들은 또한 특유의 유머로 그들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허구연을 벤치마킹하라

사람들은 그를 얘기할 때 ‘해설위원 허구연’만을 떠올린다. 그가 야구 해설자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이 사실이지만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바로 ‘법학석사 허구연’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체력은 국력‘을 외치며 운동만 하는 선수들을 양성하면서 시작된 ‘특기자 정책’은 선수들로 하여금 공부보단 운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물론 어느 한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며 누구도 절대적인 잣대로 그들을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한명의 특기자를 키우기 위해 같이 땀 흘렸던 최고가 아닌 선수들은 운동에서도 공부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렇듯 우리의 체육은 한명의 스타를 탄생시키기 위해 수많은 낙오자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다. 어린 시절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틈도 주지 않고 ‘모 아니면 도’인 인생으로 선수들을 유도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학교생활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선수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체육 정책의 변화 필요하다. 물론 공부가 인생의 성공을 따지는 절대적인 기준도 아닐뿐더러 운동을 하면서 얻는 장점도 많다. 하지만 선수와 학생을 구분 짓고 결국 다른 삶을 유도하는 이런 제도 하에서는 ‘학생선수’와 ‘선수학생’ 모두 어정쩡할 뿐이다.

허구연이 미국에 방문했을 때 우연히 스탠포드 대학 야구팀 훈련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선수들은 오전 훈련을 끝마치고 모두 수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오후 5시가 되자 선수들은 다시 운동장에 모여 훈련을 진행했다. 선수들은 수업과 운동을 병행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또 메이저리그의 션 그린(뉴욕 메츠), 마이크 무시나(뉴욕 양키즈) 선수는 스탠포트 대학 출신으로 대학시절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만큼 공부에서도 능력을 보였던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법학석사 허구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수 출신도 변호사가 될 수 있고, 박사가 될 수 있다. 허구연은 “운동선수 출신의 정치인, 존경받는 체육이 많아져야 체육정책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체육계가 발전할 수 있다”며 “직접 정치를 할 생각은 없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인들이 제대로 된 체육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야구 전도사’ 허구연

▲ 캄보디아에서 야구지도중인 허구연 (출처=다음카페 '살아있는 야구전설 허구연')

요즘 그는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프로야구 시즌을 앞두고 각 팀 전력 분석에 밤을 꼴딱 새기 일쑤다. “30년 해설 경력에 더 이상의 공부가 필요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금이라도 쉬면 감이 떨어지고 팬들이 먼저 알아챈다”는 허구연.

그는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이다.
‘야구 전도’
야구 불모지인 캄보디아에서 야구단 창설에 앞장서고 있으며, 야구 후진국인 동남아시아에서 순회코치를 하며 그곳에 야구 바람을 불러모으고 있다.

캄보디아인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 남은 여생을 보내기로 결정한 전직 교수 김길현 씨가 캄보디아에서 야구단을 만들기로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허구연은 곧바로 김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구연은 개인 돈을 털어 야구방망이와 글러브, 헬멧 등 500여만원 어치 용품을 구입했다. 지난 2월 캄보디아에 직접 방문해 기술 지도를 하고 야구용품을 전달했다. 허구연은 “은퇴 후 하려던 일을 좀 일찍 하게 됐다”며 “야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야구위원회 홈페이지를 보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에게 밝고 건강한 여가선용을 기치로...’라는 문구를 통해 프로야구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말처럼 많은 어린이들은 야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얻었고 25년이 지난 지금도 야구는 사람들에게 활력이 되고 있다.

‘늘푸른 소나무’처럼 프로야구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곁에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힘이 돼준 허구연 해설위원. “경험이 깃든 해설을 하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1982년의 드라마를 기억하고 이승엽의 56홈런을 기억하며 20년, 30년 후에도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야구 해설자로 기억되길 바란다.

이 글은 지난 11일(일) 허구연 해설위원의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쿠키 스포츠에서는 사회 각층에서 활약하는 본교출신 스타들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을 ‘추억의 그라운드’코너를 통해 하나씩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만나고 싶은 스타가 있으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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