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아니라 교묘하게 착취하는 어른들 잘못이죠”
“아이들이 아니라 교묘하게 착취하는 어른들 잘못이죠”
  • 김영현 기자
  • 승인 2020.04.05 2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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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여성인권센터, 탁틴내일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인터뷰

 55000원으로 살 수 있는 영상은 총 363개였다. 판매자는 실명 계좌를 사용했다.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작년 4월 라인(LINE) 1:1 대화방에서 363개의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과 불법 촬영물을 구매하고 모니터링해 경찰에 고발했다.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언론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매를 성착취로 규정했고, 경찰도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에게 법률·의료·심리·주거 등 사후 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캠페인, 교육 등 인식개선 활동을 지속해온 인권단체 십대여성인권센터탁틴내일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을 만나 아동·청소년 성착취 실태를 물었다.

 

  • 피해 아동·청소년이 호소하는 정서적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십대여성인권센터 권주리 사무국장

죄책감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가해자들은 철저한 계획을 갖고 아이들에게 접근해 성적으로 착취하며 이를 연인관계로 포장합니다. 성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도 없고, 어떤 상황이 위험한 건지 모르는 아이들은 쉽게 이용되곤 하죠. 이때 자신이 동의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려 죄책감에 휩싸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 가져야 할 죄책감인데 말이죠.”

 

탁틴내일 상담소 권현정 부소장

피해자를 탓하고 수치심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예요. 성범죄에서 유독 피해자를 탓하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의식이 아이들을 위축시켜요. ‘돈 벌려고 그런 것 아니냐, 그런 영상을 왜 찍냐는 반응은 가해자의 논리를 받아들인 2차 가해입니다. 어떤 행동을 했더라도 성적으로 착취할 정당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아요. 피해의 책임은 100% 가해자에게 있죠. 피해자 행동을 빌미로 가해를 합리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의 한계가 지적됩니다

탁틴내일 상담소 권현정 부소장

탁틴내일에서는 미성년자의제강간 연령 상향을 추진하고 있어요. (현행 형법 제305조는 13세 미만 아동과 성관계를 한 자는 승낙 여부와 무관하게 강간죄를 적용하고 있다.) 현행 13세 미만에서 최소 16세 이상으로 연령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승낙한 것처럼 보여도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13세에서 16세 사이, 그보다 나이가 많아도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의 경우가 그렇죠.

 작년 아청법 개정으로 만 13세 이상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경우 궁박한 상태를 이용해 성관계할 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추가됐지만, 기준이 너무 모호해요. 심리적으로 취약한 아이들, 경계선 지능을 이용한 범죄도 처벌돼야 하는데 경제적으로 궁핍하거나 가출한 청소년들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성범죄 예방에 큰 도움이 되지 않죠.”

 

십대여성인권센터 권주리 사무국장

추가된 궁박한 처지조항은 피해자를 또다시 구분 짓는 조건이에요. 무엇을 기준으로 궁박함을 정할 건가도 문제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 구분 짓기를 멈춰야 한다는 점이에요. 피해 경험이 있는 아이들을 왜 나눠야 하나요? 궁박함은 의미가 없어요.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건 아이들을 이용한 환경과 어른들이죠.

 

  • 밖 청소년이나 가출 청소년이 성매수 범죄에 유입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십대여성인권센터 권주리 사무국장

“2015~2016년까지만 해도 센터를 찾는 아이들 대부분이 가출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이라 불리는 친구들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엔 성매수자가 가출 청소년에게만 접근하지 않아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채팅앱을 통해 접근하기 때문에 범죄의 표적이 넓어진 거죠. 실제로 최근 센터를 찾는 친구 중에는 재학 중이거나 가정 안에 있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다시 말해 피해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절대 특수한 경우가 아닙니다. 최근 성매수 범죄는 업소와 같이 물리적 공간을 통하지 않아요. 디지털 환경에서는 집에 있든 밖에 있든, 학교에 있든 학교에 없든 모든 청소년이 범죄에 노출될 수 있어요.”

 

탁틴내일 상담소 권현정 부소장

청소년들이 여전히 성착취 범죄에 유입되는 것은 수요가 있기 때문이죠. 아무리 가정을 벗어나 있더라도 성매수 자체가 근절된다면 유입을 논할 이유가 없어져요. , 아이들이 성착취에 유입된다기보다는 10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앱에 가해자들이 침범해 대상을 물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들의 범죄 유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수요를 근절해야 합니다. ‘성착취 범죄를 저지르면 인생이 끝나겠구나하는 마음이 들도록 법을 제대로 적용하고 처벌을 확실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 (grooming)을 이용한 성착취는 어떻게 이뤄지나요(그루밍 성범죄란 피해 아동청소년과 정서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한 뒤 성착취하는 것을 뜻한다.)

십대여성인권센터 권주리 사무국장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 대부분에 그루밍이 이용되지만, 그루밍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은 부재합니다. 센터를 찾은 그루밍 피해 아이들의 스마트폰 속 가해자는 상담원으로 오해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사람이에요. 너무나 친절하게 아이의 말에 공감하고 고민을 들어줘요. 10대 아이가 가진 정서적 공허감이나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접근하니까요. 대화를 통해 경계가 풀어진 아이가 자신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그루밍이에요.

 그 과정에서 성적인 요구를 받으면 나에게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거절하기 어렵죠. 여기에 더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연령 권력이 지속적인 피해를 부추겨요. 어른이기 때문에 그가 괜찮다고 하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나아가면 사진과 영상을 요구하고, 그 끝에는 성매매가 있어요. 이 일련의 과정과 함께 묶여있는 것이 그루밍입니다.”

 

탁틴내일 상담소 권현정 부소장

아이들이 대부분 범죄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루밍으로 상담소를 찾았을 때는 이미 피해가 오래 진행된 상태일 수 있어요. 임신과 같이 스스로 도움을 청해야 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자발적으로 신고하지 않죠. 피해 사실을 눈치챈 보호자나 교사와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처벌을 원하는 보호자와 달리 피해자는 여전히 오빠(가해자)밖에 없는 상태예요. 신고하면 자살하겠다 하거나 진술을 거부하기도 해요.

 이처럼 위험에 처한 아이들이 상담 의지가 없는 경우 피해자 대신 보호자 상담을 진행해요. 보호자와 아이 사이 갈등이 심해져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는 경우를 방지하는 목적이죠. , 피해자가 자신을 착취하고 이용하는 가해자가 아닌 건강한 어른과 관계를 맺고 의지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오빠(가해자)가 아니라 엄마나 선생님도 괜찮은 어른이라는 걸 깨닫게 하고, 성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 건강한 관계에 대한 기준을 세워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꽤 많은 시간이 걸려요. 특히 10대는 가장 충동적인 시기잖아요. 건강한 관계를 통해 가해자에게 의존했던 부분을 채우도록 도와야지, 무조건 그 사람 만나지 마’’라고 말하는 건 아이에게 너무 가혹할 수 있어요. (탁틴내일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에서 20147월부터 20176월까지 3년간 의뢰된 면접상담 142건 중 피해자의 연 나이가 20세 미만인 성폭력 피해상담 사례 78건을 분석한 결과, 그루밍에 의한 성폭력 사례는 34건으로 43.9%를 차지했다. 피해 당시 나이는 14~16세가 44.1%로 가장 높았다.)”

 

김영현 기자 car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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