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형 재난

20대 보편 주거 지원 필요

공공임대주택 확대, 정책 의지 중요

 

 

  주거는 삶의 기초지만, 도시가 발달하면 누구나 누릴 수 없는 권리가 된다. 이계수(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서 <반란의 도시, 베를린>에서 베를린의 주거권 투쟁과 주거 안정성에 주목했다. 그는 독일과 베를린을 통해 대한민국과 서울, 특히 주거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 <반란의 도시, 베를린>의 메시지는

  “베를린이 주택 문제에 대응하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를린을 무조건 벤치마킹하자는 의미로 쓴 건 아닙니다. 국가마다 조건이 다르니까요. 제도는 사회적·역사적 맥락에 따라 형성됩니다. 독일에 좋은 점이 있다고 그대로 가져와 쓸 순 없죠. 주거 문제의 해결책과 도시의 주체에 대한 답은 각 시대와 사회가 갖고 있습니다. 답은 의외로 보편적일 수도, 특수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헌법적 상상력을 동원해 우리 사회가 재산권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헌법은 재산권을 임대인이 아닌 임차인 중심으로 재편할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두고 있어요. 재산권이나 민법상 소유권에 지나치게 매몰된 상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에는 주택 전용(轉用) 금지법이 있습니다. 해당 제도 덕분에 주거 공간이 쉽게 상업 공간으로 바뀌지 않아요. 위헌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이라 판결했습니다. 개인 재산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재산권의 사회적 의무이자 구속성 때문이라는 거죠.

  우리 헌법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는 맥락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린벨트는 개발제한구역이라 개축이나 신축이 어렵죠. 기존 건물을 수리해 용도 변경을 하려면 관청 허가가 필요해요. 그린벨트 개발을 제한할 수 있다면, 주거 문제가 심각한 도심 지역 안에서도 주택 전용 금지를 얼마든지 해볼 수 있습니다. 다들 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겠지만, 사회에 존재하는 재산은 당연히 공동체적 규제가 가능합니다. 그게 공화주의니까요. 당장 시도하자는 건 아닙니다. 열린 태도로 재산권에 접근하길 바랍니다.”

 

  - 젠트리피케이션을 ‘도시형 재난’이라고 표현했다

  “최근 도시화와 함께 문제가 된 ‘젠트리피케이션’은 곧 축출입니다. 대체로 도시 빈민들이 살던 공간에 ‘젠트리(중산층)’가 와서 원주민들이 내쫓기는 거죠. 개발 도상국이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있는 국가에서 주로 일어납니다. 2016 리우올림픽 당시 브라질이나 1988 서울올림픽 당시 대한민국이 그랬죠.

  문제는 우리나라는 서부 유럽과 달리, 원주민을 쫓아낸 후 중산층화·상업화되는 변화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막아야 한다는 도시민들의 합의가 매우 부족해요. ‘어쩔 수 없지. 집주인이, 건물주가 하겠다는데 어떻게 막아.’ 이런 인식이 도시형 재난으로 진행됩니다.

  자본에 의해 획일적으로 일어난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경리단길, 황리단길 등 ‘○리단길’이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처음엔 지역의 고유한 모습이나 성격 덕분에 주목받았는데, 뜨고 나면 다 비슷해집니다. 서울 북촌과 경주 황리단길, 전주 한옥마을은 크게 다른 점이 없습니다. 비슷한 카페들과 ‘힙’한 모습. 한국 젠트리피케이션의 특징은 획일화된 상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된다는 겁니다.”

 

  - 서울은 ‘살고 싶은 도시’인가 ‘사고 싶은 도시’인가

  “양면을 모두 갖고 있어요. 대부분이 사고 싶어 하지만, 살 수 없죠. 기회를 모색하는 20대들에겐 살고 싶은 곳입니다. 비용이 들더라도 서울에 살아야 더 나은 미래가 열린다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살고 싶은 도시’는 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곳이 아니에요. 사람들 간의 연대와 유대가 있고 서로를 적대하지 않으며 문제가 있으면 함께 해결하려고 하는 곳. 돈이 전부가 아니라 사람들의 재능이 교환되는 곳, 가난해서 쫓겨나지 않고 한부모 가정이라도 눈치 보지 않는 곳입니다.

  베를린엔 다양한 형태의 가족 모습을 가진 가구들이 많습니다. 한부모 가정, 미혼모 가정, 성소수자 가정 등 우리가 정상 가족의 범주로 생각하지 않는 가족 형태가 많아요.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의 경제가 침체해 살기 어려워지고 있긴 합니다만, 여전히 그런 사람들도 품어주는 도시입니다. 서울은 어떤가요?  되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 현재 한국 청년들이 직면한 주택난은

  “우선 주거비가 매우 비싸요. 주거비는 점점 상승하고 있는데, 비용 지원 프로그램은 부족합니다. 특히 20대, 대학생은 소득이 적거나 거의 없죠. 주거비 지원이나 학비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국가장학금 제도가 있지만 철저하게 선별적인 복지입니다. 보편적 주거복지가 갖춰지지 않다는 게 문제죠. 운 좋게 기숙사에 살아도 그 이후엔 월세나 전세를 얻어야 하는데, 월세는 비싸고 전세를 얻는 과정에서 사기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주거 형태가 주거 문제를 개별적으로 해결하게 돼 있다는 겁니다. 독일에는 ‘본 게마인샤프트(Wohngemeinschaft)’라는 학생들의 임대 공간이 있습니다. 40평짜리 아파트에 4개 방이 있으면 4명이 함께 사는 거죠. 이런 주거 공간이 매우 많아요. 만약 집주인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주택을 매각하려고 한다면, 공공이 개입해 선매권을 행사합니다. 집을 공공에 먼저 팔아야 하는 거죠. 우리나라식으로 ‘매입 임대주택’이 됩니다. 이렇게 대학생들이 살던 주거 공동체가 계속 유지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사회주택 형태의 주거 형태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실정입니다.”

 

  - 주거권 쟁취 운동에는 무엇이 있나

  “20세기 유럽에서는 주택 점거 운동이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여러 주택 점거 운동이 있었지만, 베를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베를린에선 1979년에서 1982년까지 적어도 239채 주택 대상의 265건의 주택 점거가 감행됐습니다. 당시 점거자 수는 일시적으로 1만명, 적극적으로 동조한 사람들을 포함하면 2만명에 달합니다. 이들은 빈민들의 구역을 중산층 마을로 재개발하는 것에 반발하며 토착 생활 환경 보존을 외쳤습니다. 1981년 조사에 의하면 서베를린 주민 82%가 불법 빈집 점거를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전세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전세자금 대출 규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을 물으면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도 주거권 운동입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20~30대가 특히 피해를 많이 봤습니다.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면 이런 비극이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2009년 용산참사 이후 주거권 활동가와 철거민단체가 중심이 돼 강제 퇴거 금지법 제정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세입자, 영세자영업자, 전세 사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관련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실제로 제정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중의 지지와 연대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강제 퇴거 금지법과 같은 법률이 만들어졌다면 전세 사기 같은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전세 사기 문제는 남의 문제라 생각하고 나 몰라라 하면 언젠가 나의 문제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주거약자와 연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주거 문제의 해결책은

  “어려운 문제지만,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주택 사회화가 대안으로 제시됐습니다. 베를린 내 3000호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민간 주택 회사를 공영화하고, 낮은 가격에 주택을 임대하라는 주택 사회화 운동 끝에 2021년 국민 표결에서 투표한 베를린 유권자 57.6%가 찬성표를 던지며 가결됐습니다. 아직 합헌적 사회화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이라 갈림길에 서 있죠.

  어떤 사람은 주택 사회화는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냐고 묻더군요.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새로운 정책적 전환이나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도 많은 공공임대주택을 보유하고 있죠. 공공임대주택을 위해 많은 집을 지어야 한다는 우려가 있지만, 미분양 주택가를 국가가 일부 인수하는 방식으로도 가능하죠. 재원 조달이 쉽지 않아도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는 길은 있는데 정책적 의지가 강하지 않아 아쉽습니다.

  사실 모든 부동산 시장은 국가가 규제할 수 있어요. 현 주택 체제에서 우리나라는 미국식 자유주의 시스템을 갖고 있기에 주택 시장 규제를 굉장히 꺼립니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인데, 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합니다. 헌법적으로도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고요.”

 

김아린 기자 a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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