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사 손실 합계 2964억원

돌파구는 정교한 해외 진출

제작 넘어 생태계까지 지원해야

 

지난해 국내에서 흑자를 기록한 OTT는 넷플릭스 뿐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흑자를 기록한 OTT는 넷플릭스 뿐이다.

 

  국내 콘텐츠 플랫폼의 적자 행진이 빨라지고 있다. 티빙, 웨이브 등 시청 시간 점유율 한 자릿수 이상의 국내 OTT 모두 지난해 적자 폭을 키웠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117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티빙의 재무 제표가 우리 문화 산업 전체의 위기 징후란 우려도 나온다. 세계 시장의 큰손 넷플릭스가 경기에 뛰어들어 우리 시장을 뒤흔든 결과다. 넷플릭스가 곧 규칙이 된 지금, 국내 OTT의 세계 경쟁력 확보 여부가 주목된다.

 

  소문난 매력에 한국 콘텐츠 관심 커져

  2016년 1월 한국 시장에 진출한 넷플릭스는 2019년이 돼서야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영화를 출시했다.  첫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인 <킹덤>이 글로벌 흥행에 성공하자 한국의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한국 시장에서 할리우드 콘텐츠를 이용해 수익을 올릴 계획이었던 넷플릭스가 더이상 콘텐츠 공급자에 만족하지 않게 된 것이다. 넷플릭스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 콘텐츠에 12억 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올해부터 4년간 25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박기수(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할리우드의 7분의 1에 불과한 한국의 제작비는 콘텐츠가 지닌 매력을 고려할 때 헐값 수준”이라 설명했다.

  지난해 넷플릭스 미국 인기 상위 100개 콘텐츠 중 15개가 한국 콘텐츠였으며 국내 소비자들도 꾸준히 넷플릭스로 유입됐다.   2019년 9월 기준 각각 217만명, 264만명이던 넷플릭스와 웨이브의 국내 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지난 1월 기준 각각 1282만명과 441만명으로 역전됐다. 김대길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장은 “국내 OTT보다 우수한 한국 콘텐츠에 할리우드 콘텐츠까지 고루 갖춘 넷플릭스로 소비자들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주형(심리19) 씨는 “화제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드라마를 찾아보면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방송사의 작품도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보니 국내 OTT는 더욱 선택지에서 밀리곤 한다”고 전했다. 

  국내 소비자를 빠르게 흡수한 넷플릭스는 매년 한국 콘텐츠에 막대한 지출을 이어가면서도 성장 중이다. 넷플릭스 한국 법인은 2022년 7733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전년도 대비 1416억원의 매출액 성장을 보였다. 한국에서 콘텐츠 생산과 판매 모두에 성공한 넷플릭스의 사례는 글로벌 OTT의 국내 진출을 부추겼다. 2021년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에 진출한 데 이어 HBO 역시 국내 진출을 시도 중이다. 박기수 교수는 “한국 시장을 이용한 넷플릭스의 성장 전략은 다른 글로벌 OTT들의 교과서”라며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글로벌 OTT는 늘어날 것”이라 전망했다.

 

  판 커진 싸움에 연전연패 국내 OTT 

  한국이 글로벌 OTT의 각축장이 되면서 국내 OTT들은 생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2022년 티빙, 웨이브, 왓챠 등 국내 OTT 3사의 합계 영업손실은 2964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공개된 왓챠의 감사보고서는 “현재 회사의 총부채가 총자산을 600억2800만원 초과해 계속기업으로서 존속 능력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왓챠는 2019년부터 6년째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 현 상황을 두고 낮은 콘텐츠 경쟁력이 국내 OTT를 적자 늪에 빠트렸다는 진단이 나온다. 류웅재(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24개월 이상의 약정으로 소비자를 묶어두는 IPTV와 달리 월 단위 구독인 OTT는 플랫폼에 양질의 콘텐츠를 계속해서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12월~2023년 4월을 기준으로 넷플릭스와 웨이브의 전체 콘텐츠 시청 시간 점유율 차이는 27.4%이지만 오리지널 콘텐츠에선 차이가 75%로 급격히 늘어난다.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 시청 시간 중 웨이브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3.9%에 불과하다.

 

오리지널 콘텐츠 시청 시간 점유율에서 넷플릭스는 78.9%를 차지했다.
오리지널 콘텐츠 시청 시간 점유율에서 넷플릭스는 78.9%를 차지했다.

 

  이런 현상은 글로벌 OTT와의 압도적 자본력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임양규(덕성여대 가상현실융합학과) 교수는 “넷플릭스는 막대한 자본으로 자체 콘텐츠를 다양하게 제작해 왔고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도 비용을 더 지불해 OTT 출시 시기를 앞당겨왔다”고 전했다. 류웅재 교수는 “드라마 <인간수업>과 같이 독창적이면서도 사회성 있는 웰 메이드 콘텐츠의 발굴·제작·유통이 선순환하는 한 넷플릭스는 세계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 설명했다.

  글로벌 OTT가 한국 콘텐츠 제작 시장에 개입하며 제작비가 상승한 것도 국내 OTT엔 큰 부담이다. 세계적 인지도를 얻은 배우, 감독, 제작사의 눈높이가 높아져 드라마 제작 단가는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 이전에 비해 급등하고 있다. 강명현 전 한국방송학회장은 “검증된 제작·출연진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며 OTT별 간판 작품의 제작비는 최소 3배 이상 오른 실정”이라고 전했다. 높은 제작비를 치르고 콘텐츠를 만들어도 이를 내다 팔 시장은 한국으로 고정돼 있다. 박기수 교수는 “제작비 급등을 못 이겨 작품성이 떨어지면 그나마 남아있던 국내 OTT 구독자들도 이탈할 것”이라며 “악순환을 막으려면 새로운 수요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콘텐츠 공급망에서 넷플릭스가 우월적 지위를 가지며 지식재산권 독점과 같은 문제도 발생했다. 넷플릭스는 제작 원가 전액과 원가의 최소 10% 수익을 반드시 보장하는 대신 지식재산권 일체에 대한 독점권을 요구한다. 권영성(동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넷플릭스 유통 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2차 제작물에 의한 생산 유발 효과가 국내 시장에 큰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오징어 게임>이 국내 콘텐츠임에도 넷플릭스가 지식재산권을 독점해 2차 제작물인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는 영국에서 제작됐다. 결과적으로 <오징어 게임>에서 발생한 약 1조원의 수익 중 국내 제작진은 240억원의 제작비와 약간의 추가 보수를 받았다. 권 교수는 “지식재산권 독점이 이어지면 국내 제작사의 창작 욕구는 떨어지고 넷플릭스 입맛에 맞는 콘텐츠 납품에만 매달릴 것”이라며 “콘텐츠 납품처의 다양화를 위해 국내 OTT가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비(문과대 독문17) 씨는 “넷플릭스가 전액 투자한 작품을 독점하는 걸 비도덕적이라 매도하긴 어렵다”며 “지식재산권에서 파생된 부가가치가 국내에 귀속되게 하려면 국내 OTT가 분발하는 수밖에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덩치 키워 태평양 건넌다

  자본 확충을 위해 국내 OTT는 몸집 불리기에 한창이다. 티빙과 웨이브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합병 추진에 나섰다. 국내 OTT 난립으로 발생하는 콘텐츠 중복 투자를 해소하려는 취지에서다. 넷플릭스가 시장의 절반을 점유한 상황에서 나머지 절반을 두고 수많은 시장 참여자가 다투다 보니 국내 개별 OTT의 생존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홍숙영(한세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당장 글로벌 OTT와 한국에서 싸우기도 버거운 만큼 국내 OTT의 규모를 키우는 전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국내 OTT의 몸집 불리기를 환영하는 눈치다. 정부는 1월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콘텐츠 분야 중점 추진 과제로 국내 OTT의 자생적 통합을 꼽았다. 다만 합병으로 몸집이 커져도 그에 걸맞은 자금력이 뒤따를진 의문이다. 김대길 학부장은 “국내 OTT가 모두 심각한 적자를 내고 있는데 하나의 회사로 합친다고 적자가 흑자가 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해외 진출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라는 데 의견이 모인다. 웨이브는 넷플릭스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한 해에만 <모범택시>를 비롯한 13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급했다. 그러나 무리한 투자는 오히려 독이 됐다. 이상기(부경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넷플릭스가 한국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과 유럽에서 천문학적 수익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강명현 전 학회장은 “해외 시장 개척만이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국내 OTT들은 해외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웨이브는 2022년 미주 콘텐츠 플랫폼 코코와를 인수해 북중남미 35개국에서 한국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티빙 역시 미주와 일본 진출을 추진 중이다. 

  단 해외 진출 방법이 정교해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상기 교수는 “해외에서 인지도가 없는 국내 OTT가 해외 소비자를 유인하려면 한국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것 이상으로 자막 제공 등 콘텐츠 소비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KBS 시청자서비스부 소속의 유건식 박사는 “2017년 KBS America 사장으로서 <굿닥터>의 리메이크 수출을 추진하며 콘텐츠 현지화를 통해 한국 콘텐츠가 더 친숙한 형태로 해외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국내 OTT의 콘텐츠가 영어 자막을 입고 태평양을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측은 “자막 제작·더빙과 같이 한국 콘텐츠에 대한 현지 시청자의 수용도를 높이는 리메이크, 해외에 구축한 거점·홍보관·비즈니스센터를 통한 콘텐츠 수출을 확대 중”이라 언급했다. 문유현(사범대 체교23) 씨는 “문화상품 수출은 유·무형의 파급효과가 큰 만큼 온전히 기업에만 역할을 맡기기보다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내일의 생존이 불투명한 국내 OTT 지원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류웅재 교수는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콘텐츠 발굴·제작, 창의 노동자의 노동 여건 개선을 위한 정부의 집중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올해 콘텐츠 분야 예산이 1조원 이상 배정됐지만 이는 국내 OTT를 간접 지원하는 데 그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문화체육관광부 방송영상광고과 측은 “정부가 제작비를 지원하는 콘텐츠는 국내 OTT에 반드시 방영토록 하고 있고 글로벌 OTT는 별도로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간접적으로 돕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지난달 28일 국내 OTT에 한해 콘텐츠의 지식재산권을 제작사와 공유할 경우 최대 3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콘텐츠 제작 지원에 머물렀던 정부의 정책 방향이 지식재산권 보호와 플랫폼 직접 지원의 형태로 달라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글 | 이경준 기자 aigoya@

사진 | 고대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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