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줄자 보도·교양도 휘청

드라마 잘될 때 내실 강화 등한시

OTT와 맞서려면 변화는 필수

 

상암동 MBC , SBS 사옥 앞.
상암동 MBC , SBS 사옥 앞.

 

  KBS는 지난해 11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방영권을 넷플릭스에 판매했다. KBS가 대하드라마의 방영권을 글로벌 OTT에 판매한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웨이브 지분 19.8%를 보유한 주요 주주임에도 KBS는 웨이브의 경쟁사인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했다. ‘황금알 낳는 거위’였던 드라마가 오히려 적자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270억원이라는 <고려거란전쟁>의 높은 제작비를 감안해도 KBS의 이번 결정이 지상파 방송사가 처한 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황근 KBS 이사는 “방송의 재정 악화는 대중문화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저해하고 언론 등 방송의 공적 기능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너진 드라마 왕국

  지상파 3사의 프라임타임 드라마가 실종되고 있다. 지난해 지상파 3사의 총방영 드라마 수는 32편으로 2022년 대비 20%가량 줄었다. 제작 편수뿐 아니라 드라마 회차도 줄고 있다. 방영 기간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 MBC와 SBS에선 주 1회 방영 드라마를 선보였다. 변화의 원인은 광고주들이 광고를 타 매체로 돌리며 드라마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적자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근 이사는 "방송사의 수입원인 광고는 줄어드는데 콘텐츠 제작 단가는 높아지고 있다”며 “한국 콘텐츠에 넷플릭스가 기존 제작비의 3배 이상을 지급하다 보니 편당 1~2억원 수준이던 미니시리즈 제작비가 5억원까지 치솟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송은 드라마를 전파로 동시 송출하다보니 광고 외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도 어렵다. 노동렬(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편당 10억원 수준의 제작비를 지출하기도 하는데 드라마 전후로 광고를 최대한 수주해도 광고 수입은 약 3억 6000만원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를 통틀어 최고 시청률 12.9%를 기록한 <연인> 역시 전파 송출 수익으로 제작비를 메꾸지 못했다.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연인>의 경우 결국 여러 콘텐츠 플랫폼에 방영권을 판매해 겨우 수지를 맞췄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지위 악용·현실 안주한 방송

  방송의 콘텐츠 경쟁력 약화는 방송사 스스로가 초래한 문제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영상 콘텐츠 공급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했던 1990~2000년대 방송사가 고액 광고를 쓸어 담고, 정작 제작사엔 원가에 못 미치는 제작비를 지급하며 경쟁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황근 이사는 “당시엔 방송이 아니면 드라마를 납품할 곳이 없다 보니 제작비 후려치기가 관행처럼 굳어졌다”며 “원가에 못 미치는 돈을 주고 간접 광고 등을 넣어 알아서 수익을 내라는 방식이었다”고 전했다. 그 결과 사전제작에 충분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 촬영 직전 날림으로 쓴 쪽대본이 횡행했다는 설명이다.

  OTT의 침공에 대처한 방식 역시 안일했다. 방송사들은 방영권·편성권을 무기로 지식재산권을 독점해 왔다. 넷플릭스가 등장하자 방송사는 독점 콘텐츠로 국내 OTT인 웨이브를 만들었다. 황근 이사는 “지분 59.4%를 보유한 지상파 3사는 웨이브를 케이블 대신 자사 콘텐츠를 재송출할 수단으로, 지분 40.5%를 보유한 SKT는 통신 상품과 결합 판매할 수단으로만 인식하며 웨이브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최영묵(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역시 “웨이브가 넷플릭스의 경쟁 상대는커녕 내수시장마저 내주고 있기에 결과적으론 자충수가 됐다”고 진단했다.

 

  공적 기능 적자 메울 길 사라져

  드라마 수입 급감으로 경영 여건이 악화하면 방송 본연의 역할인 언론 기능도 약화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KBS 시청자서비스부 소속의 유건식 박사는 “KBS 드라마국 재직 당시 본사에서 책정한 원가의 최소 3배는 벌어야 한다 생각했다”며 “원가와 간접비로 수입의 3분의 2를 지출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보도와 교양 등 비수익 부서 운영에 지원됐다”고 전했다. 드라마에서 적자가 이어지며 상황은 달라졌다. 최영묵 교수는 “지상파 채널 2개를 보유한 KBS는 KBS2TV에서 드라마 등으로 수익을 내 보도·교양을 맡은 KBS 1TV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버텼지만 교차보조가 어려워지며 공적 책무 수행이 크게 약화했다”고 말했다. 권태선 이사장은 “방송의 재원이 고갈되면 인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심층취재가 어려워지고 보도에서 광고주의 눈치를 보게 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영상 콘텐츠 소비 경로가 방송에서 OTT로 바뀌면서 시청자가 방송사의 뉴스·시사 프로그램과도 자연스레 멀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장석준(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TV를 틀 유인이 사라지면 방송 보도를 통해 접하는 정치·경제적 사안에 대중의 관심이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최준혁(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22)씨는 “TV 시청 문화가 사라지면 방송보도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 우려했다.

  공영방송으로서 느끼는 위기감은 심각하다. 권태선 이사장은 “팬데믹 기간 재난 대응 보도 등 세계적으로 공영방송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지만 KBS는 올해 수신료 급감이 예상되고, MBC는 수신료 지원은커녕 오히려 방송발전기금을 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KBS는 개정된 ‘수신료 분리고지 시행령’ 실시로 올해 2627억원의 수신료 결손이 발생할 것을 예상해 15년 만에 1431억원의 적자 예산을 편성했다. 황근 이사는 “지난달 확인한 KBS 내부 자료에 따르면 구조조정의 본격화로 평년의 9배에 달하는 87명이 명예퇴직과 희망퇴직을 신청했다”며 “콘텐츠 제작과 기획을 책임지는 인력들이 공영방송의 미래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라 이야기했다.

 

  변화된 방송의 위치 인정해야

  전례 없는 위기를 겪는 지금이야말로 방송이 경쟁력 회복을 위한 방향성을 결정해야 할 때라는 진단도 제시된다. 이성민(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글로벌 OTT와 대적할 수 있게 대규모 콘텐츠 투자를 계속하거나 신인 작가 발굴 등 미래 미디어 산업의 주인공을 육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렬 교수는 “국내 방송사는 공적 역할을 하면서 돈도 벌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입장이었지만 이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넷플릭스와 경쟁해 보겠다’고 하면 규제를 풀어 경쟁시키고, ‘공공성을 실현하겠다’고 하면 드라마로만 돈을 충당하지 않도록 세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OTT와의 협력이란 대안도 있다. 송종현(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넷플릭스의 1년 콘텐츠 투자 예산이 국내 모든 방송사의 콘텐츠 투자 규모를 더한 것보다 크기에 정면 대결은 어렵다”며 “라디오가 TV의 경쟁자에서 동반자가 된 것처럼 방송은 OTT를 보완하는 형태로 역할을 새로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한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토로도 나온다. ‘칼에 가슴이 찔려선 안 된다’, ‘담뱃불을 붙이되 흡연은 불가’ 등 빡빡한 방송 심의가 방송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 MBC는 넷플릭스에서 한국 예능 최고 시청 시간을 기록한 <피지컬: 100>을 자체 제작했지만 MBC 전파가 아닌 넷플릭스 공급을 선택했다. 권태선 이사장은 “<피지컬: 100>을 포함해 장기간 사이비 종교의 범죄 행각을 심층 취재한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과 같은 콘텐츠가 OTT에 제한적으로 공급된 이유도 불필요한 규제 탓”이라 지적했다. 이민재(문과대 한국사19) 씨는 “OTT 콘텐츠는 동시 송출이 아니란 이유로 심의를 면제하니 ‘OTT는 자극적’, ‘방송은 재미없다’와 같은 이분법이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OTT에만 규제가 완화되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2022년 9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지난해 6월부터 7개 OTT에 한해 영상물등급위원회를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영상물 등급을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송종현 교수는 “방송과 OTT간 규제의 역차별이 계속되면 방송사가 창의적이거나 실험적인, 과감한 표현을 시도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 우려했다.

  장기적으론 방송의 불안정한 지배·경영 구조 개선이 경쟁력 회복의 열쇠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공영방송인 KBS와 MBC는 각각 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 구성원을 정당이 추천하는 구조라 경영이 정치권의 영향을 받는다. 권태선 이사장은 “JTBC가 드라마국을 독립 스튜디오로 출범시켜 양질의 드라마를 제작하자 MBC도 드라마 부문의 분사를 추진했지만, 영입하려 한 자원들이 사장 임기조차 불안한 MBC에 오는 것을 꺼려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김명성 전 KBS전주방송총국 보도국장은 “수신료 분리 징수 고지 등에 따른 경영 위기가 예상된다”며 “KBS는 최근 약 30~40억원의 지출 조정을 위해 지역 방송국에서 40분간 진행하던 오후 7시 뉴스를 10분으로 줄이려다 철회했다”고 전했다.

 

글 | 이경준 기자 aigoya@

사진 | 하동근 기자 hdng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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