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닌 한국 극장의 위기”

OTT에 돈 걷고 울타리도 친다

극장 위기 방치하면 제작 인프라 위태

 

7000원에 영화를 볼 수 있는 ‘문화의 날’임에도 지난달 28일 저녁 CGV 왕십리의 상영관 출입구가 비어있다.
7000원에 영화를 볼 수 있는 ‘문화의 날’임에도 지난달 28일 저녁 CGV 왕십리의 상영관 출입구가 비어있다.

 

  극장에 빈자리가 여전하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극장 관람객은 2019년 대비 1억 154만명 줄었다. 영화 소비의 헤게모니가 극장에서 OTT로 바뀌었다는 것이 영화계의 중론이다. 위기를 맞은 극장과 달리 영화 제작 업계는 OTT 시대를 도약의 기회로 삼고 있다. 팬데믹 기간 가려졌던 극장의 문제가 OTT의 공세를 맞아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 가운데 극장이 경쟁력의 원천인 스토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위기감 고조되자 해결사 자처한 정부 

  관객이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은 더 이상 극장에 유리하지 않다. 임정수(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팬데믹을 거치며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서 영화를 보는 방식에 거부감이 생겼다”며 “OTT가 양질의 콘텐츠를 원활히 공급해 완벽한 대체재가 된 게 주요인”이라고 전했다.

  지금의 위기는 영화가 아닌 한국 극장의 위기라는 게 공통의 의견이다. 영화 제작사는 글로벌 OTT의 국내 콘텐츠 수요 덕에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이준희(성균관대 영상학과) 교수는 “극장에 영화를 공급할 땐 관객 수에 따라 손익이 결정되는 반면 넷플릭스는 제작 원가에다 일정 수익까지 보장하니 제작사가 절대 망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반면 극장의 회복세는 더디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연구팀의 <2023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2024)>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박스오피스 매출이 2019년의 91.2% 수준까지 회복했지만 한국은 65.9%에 그쳤다. 

  위기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극장 살리기에 나섰다. 영화관 입장권 가격의 3%가량이 영화발전기금으로 사용돼왔으나 관객 수가 급감해 2022년엔 2019년 대비 3분의 1토막이 됐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1월 OTT 수익 중 일부를 부족한 영화발전기금으로 걷는 안을 추진 중임을 발표했다. 흑자를 내는 OTT가 사실상 넷플릭스뿐이라 넷플릭스에 돈을 걷어 영화계를 지원하겠단 맥락으로 읽힌다. 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을 요구한다. 김영재(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방송 콘텐츠를 방영해 수익을 얻는 방송사에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부과하듯 영화를 송출해 수익을 얻는 OTT에 영화발전기금을 부과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OTT는 영화와 방송 모두 서비스하기에 영화의 수익 기여 정도를 넘어선 부담은 부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길종철(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는 “국내와 달리 글로벌 OTT는 부담금 부과에 크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의 인위적 통제가 어려운 글로벌 OTT가 부담금을 핑계로 구독료를 인상하면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영 중인 영화가 OTT에 공개되는 시점을 늦추는 정책도 추진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측은 “지난 1월 극장 지원을 위해 극장 개봉 영화에 투자하는 정부 주도 펀드를 출범했다”며 “해당 펀드에서 자금을 지원받은 영화에 대해선 일정 기간 OTT에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는 홀드백 규제를 의무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책 효과가 크진 않을 거란 전망이다. 길종철 교수는 “관객이 극장에서 볼 필요를 못 느끼는 영화라 OTT 공개를 늦춘다고 관객이 급증하진 않을 것”이라며 “홀드백은 극장의 근본적 경쟁력을 개선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김소정(생명대 환경생태22) 씨는 “소비자 수요로 결정됐던 홀드백 기간을 정부가 통제한다면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할 것”이라며 “소비자가 입을 피해보다 극장 대기업의 입장만 고려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극장만이 줄 수 있는 경험 찾아야

  정부의 OTT 때리기를 기대하기보단 영화 유통 과정의 세계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멀티플렉스 3사 중 유일하게 흑자전환에 성공한 CGV의 회복 배경엔 적극적인 해외 진출이 있다. CGV는 과점·과포화된 한국 상영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지난해 기준 해외 상영관 수를 369개 확보해 199개인 국내 상영관 수를 뛰어넘었다. 길종철 교수는 “CGV의 성장에는 튀르키예에선 할리우드 흥행 영화를, 중국에선 현지 제작 영화를 배급하는 등 한국 계열사가 제작한 콘텐츠를 자기 스크린에 트는 기존의 폐쇄적 유통 구조를 혁신한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비합리적 유통 구조도 손봐야 한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는 국내 상영관의 98%를 점유하고 있으며 영화 제작사·투자배급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이종승 대표는 “제작부터 상영까지 한 개 기업이 산업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니 상영관 몰아주기, 매표 조작과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며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2018년 ‘영화및비디오물의진흥에관한법률’ 개정이 시도됐지만 극장 관람이 줄자 문제가 가려졌다”고 지적했다.

  멀티플렉스 3사는 4DX, IMAX와 같이 입체적 감각 경험을 제공하는 특수상영관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김찬수(홍익대 영상·애니메이션학부) 교수는 “의자가 흔들리고, 향을 맡는 체험은 영화 관람의 본질적 목적이라 할 수 없어 제한된 이벤트에 그칠 것”이라면서도 “영상의 해상도를 극대화한 IMAX와 같은 관람 환경의 고급화는 장기적으로 관객이 극장을 찾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극장에서 봐야 할’ 콘텐츠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희승(동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넷플릭스가 보유하지 않은 소규모·한국형 독립 영화, 1인 미디어 제작물을 아우르는 콘텐츠를 기획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길종철 교수는 “개인이나 영세 제작사의 희생에 의존하는 아주 초기 단계의 아이디어 구상과 창작을 정부가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로 활동 중인 이승민(남·27) 씨는 “투자처가 유동적인 극장 영화와 달리 자체 예산으로 작품을 찍는 넷플릭스에선 무명 배우도 충분한 출연료를 받는다”며 “다만 무명 작가의 경우 아직 많은 수가 생계의 곤란을 겪고 있어 극장이 이들의 발굴과 지원에 나서면 극장의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라 전했다.

 

글 | 이경준 기자 aigoya@

사진 | 하동근 기자 hdng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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