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의존도 높고 대중성 낮아

코어팬 사이 ‘탈케’ 여론 조성

손실 걱정보다 장기적 시야 필요

 

지난 8일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열린 황민현의 팬미팅 포토존에서 팬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8일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열린 황민현의 팬미팅 포토존에서 팬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케이팝 산업이 이미 정점에 다다랐고, 앞으로 하락할 일만 남았다는 ‘케이팝 위기론’이 회자된다. 일각에선 이러한 위기가 팬덤을 수익원으로만 여기는 기획사들의 전략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시됐다. 가격은 높였지만, 공연과 서비스의 질은 담보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는 늘어난 유료 콘텐츠에 대한 팬덤의 불만과도 맞물리고 있다. 10대와 20대가 주축을 이루는 팬덤 특성상 계속되는 가격 상승은 소비자들의 이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점 찍었지만 위기론은 시기상조

  ‘케이팝 위기론’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에 의해 처음 공론화됐다. 지난해 3월 15일 있었던 관훈토론회에서 방 의장은 “미국 등 주류시장에서 케이팝의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다”며 “빌보드 핫100 차트 기준 2021년 대비 2022년 케이팝 앨범의 차트인 횟수는 약 53% 감소했다”고 짚었다. 지표가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지난해 전체 실물 앨범 수출액은 2억9023만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우영 한국콘텐츠진흥원 데이터정책팀 부장은 “통계 수치상 음악산업시장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국내 주요 기획사들의 글로벌 진출이 활발해지며 음악산업 수출액은 연평균 16.8%로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케이팝 위기론이 시기상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케이팝의 꾸준한 성장세에도 위기론이 제기되는 이유는 방탄소년단의 공백이 크다. 방탄소년단만큼 대중성을 확보한 그룹이 아직까지 없기 때문이다. 윤선미 에이펀 인터랙티브 본부장은 “하이브는 방탄소년단이라는 대형 아티스트와 헤비 팬덤을 통해 정점을 찍은 기획사”라며 “방탄소년단의 공백 이후 수치적 하락세나 수익 구조의 부작용을 더 크게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케이팝의 파급력이 줄어가고 있음을 체감하는 건 팬덤도 마찬가지다. 방탄소년단 이후 세븐틴, 엔하이픈 등 다양한 아이돌 그룹의 팬을 거쳐 온 A씨(여·22)는 “케이팝이 점점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는 것 같다”며 “마치 간을 보듯이 여러 그룹을 번갈아 가며 좋아하는 팬들이 늘어났다”고 전했다. 이수연(여·20) 씨 역시 “케이팝이 대중성을 잃은 것에는 확실히 공감한다”며 “점점 매니아층만 두터워지고 있는 구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케이팝의 대중성 부족은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높은 팬덤 관여도가 산업의 원동력으로 작동해왔기 때문이다. 이지행 동아대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케이팝 산업의 흥행은 가수의 성공을 마치 나의 성공처럼 바라는 팬덤의 친밀도와 몰입이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기획사들이 팬덤 의존적 수익 구조를 유지하는 까닭이다. IBK투자증권의 2023년 분석 자료에 따르면, 국내 4대 엔터의 코어 팬덤 규모는 약 350만명으로 추정된다. 1인당 연간 매출 기여액은 52만원에서 104만원 수준이다.

  주요 향유층이 한정돼 있다 보니 최근 기획사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익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유료화되는 팬 서비스와 치솟는 가격에 팬덤 내 불만이 커지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케이팝 실물 앨범 구매, 공연 관람 등을 즐겼던 B씨(여·22)는 “새 앨범 발매와 음악방송 등 팬들이 적은 비용으로 아티스트를 만날 기회는 줄어가고, 비용이 크게 들어가는 공연과 팬 사인회만 늘어가니 케이팝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문서연(여·21) 씨가 구매한 그룹 VERIVERY의 미니 7집 앨범.
문서연(여·21) 씨가 구매한 그룹 VERIVERY의 미니 7집 앨범.

 

  과도한 수익 창출에 떠나는 팬들

  기획사의 주된 수익원은 오프라인 공연 티켓과 음반 판매다. 공연 가격은 특히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경우 2019년 전석 11만원에서 2022년 VIP석 22만원, 일반석 16만5000원으로 3년 새 티켓 가격이 두 배까지도 올랐다. 세븐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의 가장 최근 콘서트는 VIP석 가격이 19만8000원으로 책정됐다. 하이브를 시작으로 후발주자들도 가격을 올리는 추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3 음악산업백서’에 따르면 2019년 이전 11만원~12만원 수준으로 형성돼 있던 국내 공연 평균 단가는 16만5000원~22만원 수준으로 올랐다. 피원하모니의 팬 유슬아(여·19) 씨는 “고등학생에게는 티켓 가격이 부담스러워 아르바이트를 찾을 수밖에 없다”며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방안을 찾다 보니 물류창고 단기 아르바이트 등을 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치솟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콘텐츠의 질과 소비자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기획사들은 공연과 연계된 각종 부가적인 이벤트를 기획했지만 반응은 좋지 못하다. 팬들은 기획사가 공연 차별화를 명목으로 15분에서 20분 남짓한 부가적 이벤트를 끼워 팔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수연 씨는 “사운드체크처럼 아티스트를 몇 분이라도 더 볼 수 있는 기회에 팬은 지출을 아끼지 않을 것이란 점을 이용해 기획사들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획사들은 멤버십 선예매, 응원봉, 가격 변동제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다양한 혜택과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전략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멤버십을 가진 팬이 먼저 티켓을 예매할 수 있는 제도인 멤버십 선예매는 오히려 멤버십을 구매하지 않은 팬들이 티켓을 예매할 수조차 없게 만든다. 응원봉 역시 콘서트가 열릴 때마다 새 버전으로 출시하는 실정이다. 구 버전은 공연장 시스템과 연동되지 않아 매 공연마다 새로운 응원봉을 살 수밖에 없다. 

  실물 앨범과 굿즈도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앨범 다량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 역시 다양해졌다. 소위 ‘팬싸컷’ 이상의 앨범을 구매해야 참여할 수 있는 팬 사인회 이벤트가 대표적이다. 음반 판매량 데이터 플랫폼 한터글로벌의 관계자는 “음반 판매 시장에서 아이돌의 기여도는 절대적”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봐도 실물 앨범만으로 이런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음악 장르는 케이팝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실물 앨범의 버전을 늘리거나, 동봉된 랜덤 포토카드의 종류를 늘려 소비를 유도하는 마케팅이 확장되기도 했다. 이규탁(한국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는 “이는 결국 음악과 퍼포먼스 외의 방식으로 팬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수익 다각화 전략이 강화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의 2022년 12월 ‘팬덤 마케팅 소비자문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굿즈 수집을 목적으로 앨범을 구매한다는 응답자 중 구매한 앨범에 랜덤 상품이 포함돼 있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91.5%였다. 원하는 랜덤 상품을 얻기 위해 구입한 앨범은 평균 4.1개로 나타났다.

  그러나 음반 구매를 통한 수익 창출은 업계의 불안 요소다. 팬들은 수익 다각화 전략을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케이팝 팬을 그만두는 걸 고민하고 있다는 C씨(여·21)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1분을 대화하기 위해 수십 장의 음반을 구매하는 등 큰 금액을 써야 하지만, 그에 맞는 대가를 받지는 못한다는 점이 팬들을 가장 무기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A씨는 원하는 굿즈를 얻기 위해 적게는 여섯 장, 많게는 열두 장 정도 같은 앨범을 구매했다. 그는 “포토카드를 모으는 게 일종의 문화가 된 것은 맞지만, 얻을 확률도 알 수 없는 굿즈를 위해 앨범을 구매하는 게 낭비처럼 느껴진다”고 전했다. 이규탁 교수는 “팬심을 증명하기 위해 같은 상품을 상자째 구매하는 소비가 얼마나 이어지겠느냐는 의문이 업계 내에도 있다”고 전했다.

  지나치게 수익을 좇는 전략은 소비자 권익 침해로 이어졌다. 한국소비자원의 앞선 실태조사는 “음반과 함께 랜덤으로 지급되는 굿즈는 정확한 이미지가 공개되지 않으며 종류·수량 등의 정보만 공개되고 있다”고 밝혔다. 팬 사인회 응모는 당첨 기준이 명확하게 공지되지 않으며, 이벤트와 연계된 상품이라는 사유로 주문 취소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C씨는 “팬 사인회는 추첨제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대개 정해진 수량 이상을 구매해야 갈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김하영(여·22) 씨는 “이렇게 구매한 앨범은 처리가 어렵다”며 “앨범을 되파는 업체나 ‘팬싸컷’을 사전에 유출해 판매하는 사람도 생겼다”고 말했다. 소비자 권익 침해는 결국 팬덤을 대하는 업계의 태도로 인해 발생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지행 연구원은 “업계에는 여전히 팬덤을 ‘빠순이’로 취급하고, 착취해도 괜찮은 존재들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팬덤과 대중 사이 균형 찾아야

  기획사들 역시 팬덤의 이탈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러나 당장의 수익 손실 때문에 전략 변화를 망설이고 있다. 윤선미 본부장은 “미디어 환경이 뉴미디어 위주로 변화하며 광고 및 매니지먼트 수익과 음원 수익이 줄었고 상위 몇 개의 기획사들이 독점하게 됐다”며 “나머지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팬들의 다양한 니즈를 공략하는 수익 다각화를 도모하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코어 팬덤의 이탈 방지를 위해선 당장의 손실을 걱정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이규탁 교수는 “대형 기획사가 선도적으로 지나친 팬덤 의존적 수익 구조를 바꾸는 전략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본부장 역시 “선택지를 늘려 팬들의 수요를 충족하되, 가격 정책을 여러 방면으로 바꿔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너무 상업적인 방식보다는 새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팬 사인회의 경우 응모 및 추첨 방식이 변하고 있다. 일부 행사에서는 음반 한 장당 응모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일정 개수 이상 음반을 구매할 경우 동등하게 추첨을 진행하는 방식이 시도되기도 했다.

  이지행 연구원은 “기획사들이 코어 팬덤 매출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만큼 존중을 보여달라는 것이 팬덤의 여론일 것”이라며 “팬들은 계속해서 떠나고 싶지 않으니, 떠나지 않게 만들어달라는 메시지를 표명하고 기획사들과 타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티스트와의 진정한 친밀감과 팬으로서의 소속감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수연 씨 역시 “케이팝 산업이 좀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팬들을 충성도 높은 소비자가 아닌 함께하는 거래처와 동반자로 보는 시선이 필요할 것”이라 전했다.

  음악을 찾아 듣는 것에서 나아가 가끔 앨범을 사고, 가볍게 콘서트를 즐기는 소비자층의 필요성이 계속해서 공론화되고 있다. 케이팝 위기론을 꺼내든 방시혁 의장 역시 케이팝의 높은 진입장벽을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한 방송에서 “케이팝 팬은 어떤 팬보다 더 강한 몰입과 소비를 보인다”며 “이 점이 확장성의 한계가 되기도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지행 연구원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지나친 공동체 의식과 강고한 충성도라는 팬덤의 특성이 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문턱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규탁 교수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 음악의 접근성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며 “대중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친숙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코어 팬덤 위주로 구성돼있는 케이팝 음악과 이미지, 상품과 가격 등의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윤 본부장은 이에 대해 “팬을 위한 그룹도 있어야 하고 대중성을 추구하는 그룹도 있어야 한다”며 “특정한 전략 하나를 고르기 보다는,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져가고 소비자들에게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글|정혜원 기자 hye1@

사진|진송비 기자 bshnfj@

사진제공|문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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