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장벽 높은 하드 리스닝

“이지 리스닝, 당분간 계속될 것”

한계 달한 콘셉트, 새로움 필요해

 

김영대 평론가는 “미학적으로 비전있는 인력이 케이팝에 유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대 평론가는 “미학적으로 비전있는 인력이 케이팝에 유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비의 ‘밤양갱’부터 라이즈의 ‘Love 119’까지 국내 음원 스트리밍 차트에 이지 리스닝 음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음원 차트는 여자 아이돌 그룹이, 음반 차트는 남자 아이돌 그룹이 양분하던 이전과는 달라진 풍경이다. 차트에 새롭게 등장한 음악은 공통적으로 일상적인 가사와 콘셉트, 가벼운 안무와 비트 등 ‘이지 리스닝’의 문법을 사용하고 있다. 김영대 대중음악 평론가는 “틱톡과 스포티파이로 음악을 듣는 세대들이 과연 복잡한 음악을 선택할 것인지 의문”이라며 듣기 쉬운 음악의 유행 배경을 설명했다.

 

  - 케이팝의 이전 경향은 무엇인가

  "이지 리스닝의 반대 개념인 하드 리스닝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하드 리스닝이라는 단어가 명확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중독성이 있는’ 강한 음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스트레이키즈, 에이티즈 같은 그룹이 선보인 강렬한 음악이나, 르세라핌의 걸크러시 스타일 음악이 있죠. ‘UNFORGIVEN’이나 ‘ANTIFRAGILE’ 같은 곡이 대표적이에요. 좀 더 실험적인 스타일인 NCT 127의 ‘Cherry Bomb’과 같은 노래도 하드 리스닝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공통점은 강한 사운드를 사용한다는 거죠.”

 

  - 하드 리스닝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케이팝은 사운드가 화려해지고 무대와 안무도 더 강해지는 수순을 밟았습니다. 전통적으로 안무는 음악을 떠받치는 역할에 불과했지만 케이팝은 이 둘을 융합했습니다. 여러 명의 가수로 그룹을 구성해 모두가 댄서 역할까지 수행한다는 것이 타 장르와의 차별점이라고 봐요. 이는 글로벌 시장 공략의 측면에서도, 팬덤 유치의 측면에서도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특히 아이돌 그룹은 다양한 세계관을 표방하고 개인의 정체성이나 복잡한 메시지를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드 리스닝은 이러한 요소에 어울리는 사운드적 경향이죠. 강한 비트와 신나는 리듬은 젊음의 표출이나 폭발에 유리해요.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에 철학적인 주제나 세태 비판 같은 것들을 녹이기도 쉬워집니다.

  센 음악이 일반 대중에게 닿는 것은 꽤 어려워요. 방탄소년단 역시 ‘봄날’이나 ‘DNA’, ‘Dynamite’ 같은 곡이 없었다면 라이트 팬을 모으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럼에도 센 음악의 이점이 있기에, 팬덤을 만족시키기 위한 전략을 세웠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입장벽이 높다는 건 결국 그 벽을 넘은 사람들이 굉장히 강한 팬이 된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음원 차트 상위권에 다수의 ‘이지 리스닝’곡들이 자리하고 있다.
음원 차트 상위권에 다수의 ‘이지 리스닝’곡들이 자리하고 있다.

 

  - 최근에는 이지 리스닝이 강세다

  “아이돌 음악 시장은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시장’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즐길 수 있었던 감성적이고 쉬운 음악에 대한 향수가 짙어지고 있어요. 2000년대 초반의 음악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죠. 

  콘셉트의 한계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주로 대형 기획사가 새로운 콘셉트를 시도했고, 중소 기획사들은 그런 흐름을 따라가는 양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형 기획사의 콘셉트도 지금은 한계에 다다랐고, 나올 만한 세계관은 다 나왔죠. 최근에는 가볍고 일상적인 콘셉트가 많이 등장하고 있어요. 남자 아이돌 그룹들이 공통적으로 청량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이전 아이돌의 강한 느낌은 많이 빠졌어요. 이런 콘셉트가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닙니다. 샤이니, 세븐틴, 투모로우바이투게더도 시도했던 것들이거든요.

  해외 시장 진출을 노리고자 한 것도 작용했습니다.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처럼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최소한의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해야 해요. 그런데 이들이 과연 복잡하고 어려운 케이팝을 좋아할까요? 여기에서 고민이 시작된 것 같아요.”

 

  - ‘케이 없는 케이팝’ 역시 시도되고 있다

  “기획사들의 입장이 크게 반영된 논리로 보여요. 한국인 멤버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거나 외국인 멤버를 한두 명 투입하는 방식으로는 완전한 현지화가 어려운 거죠. ‘어차피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케이팝을 듣는데, 처음부터 영어로 쓰인 텍스트를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는 고민을 시작한 겁니다. 실제로도 해외 팬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그들의 언어로 만들어 해외에 진출하는 전략이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국내 팬 입장에선 당연히 한국어로 된 노래가 좋겠지만, 케이팝 아이돌 음악은 이미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서 한국이 만들어낸 음악’으로 향해 가고 있어요.”

 

  - 케이팝이 대중성을 확보할 방안은

  “현재의 케이팝은 기존의 경향에 질렸거나 지친 사람들, 혹은 좀 더 일반적인 대중들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유행이 한 번 지나고 나면 다시 강한 음악이 강세를 보일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듣기 쉬운 음악이 대세일 것으로 보입니다.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뉴진스가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입니다. 이지 리스닝이 대세가 될 수 있는 하나의 초석을 놓은 팀이죠. 이들이 주목 받은 이유는 여러 레퍼런스들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새롭다는 이미지를 줬기 때문이에요. 케이팝이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선 미학적으로 비전이 있는 인력이 지속적으로 케이팝에 유입돼야 해요. 그런 아이디어 기획력이 담보돼야만 케이팝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글|정혜원 기자 hye1@

사진제공|김영대 평론가

이미지출처|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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