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주(공과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올해 3월 김용주(공과대 신소재공학부) 교수가 공학관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아직 물건이 덜 들어와서 휑한데, 곧 3D 프린터도 들어올 거에요.” 연구실에 들어서면 커다란 모니터가 반겨준다. “저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소재를 디자인합니다. 실제 실험보다는 컴퓨터 안에서 가상 실험을 주로 하고 있죠.” 연성 소재 이론 및 시뮬레이션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온 그는 교수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과거를 회상했다.

 

  학자가 되고자 유학길에 오르다

  학부 2학년, 병역 문제를 고민하던 그는 돌연 유학을 결심한다. “저는 중간에 공부를 그만두고 싶진 않았어요. 막연하게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들과 경쟁하고 싶었기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로 유학을 준비했다. 당시 그가 다니던 포항공대에는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MIT로 떠난 전례가 없었다. “어떻게 뚫을까 많이 고민했죠. 대가의 추천서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생각했던 ‘대가’는 당시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UIUC)에 재직하던 존 로저스(John Rogers) 교수였다. 존 교수는 휘어지는 ‘롤러블 폰’의 개념을 고안한 스타 교수다.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존 교수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박사가 포항에들어온 것이다. “인턴을 하고 싶다고 그분께 말씀드려 존 교수님과 연결됐어요. ‘교환학생을 와 자기 밑에서 일을 한번 해보라’고 하시길래 몇 개월 동안 연구실에서 지냈죠.” 추천서를 받는 데 성공한 그는 한 번에 MIT에 합격했다. 그의 나이 만 21살이었다.

  힘든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대학원에서의 연구는 학부 시절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연구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도 배워야 했다. “인공지능은 CPU가 아닌 그래픽카드로 연산을 해요. 그래서 그래픽 카드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는 코딩을 해야 합니다.” 당시는 인공지능이 유행하던 시기가 아니었다. 그래픽 카드를 이용해 코딩할 수 있는 언어조차도 NVIDIA에서 막 내놓은 때였다. “지도교수님께서 모든 코드를 그래픽 카드에서 돌아갈 수 있게끔 짜라고 하셨어요. 컴퓨터 공학과 전공자 수준의 코딩 능력을 요구하는 일이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팝핀, 20년 간 함께한 취미

  학부 재학 시절부터 즐겨왔던 취미는 춤이다. “춤을 되게 오래 췄어요. 팝핀 댄스를 한 20년 정도 했죠.” 시작은 대학교 내의 춤 동아리였다. 단순히 재밌어 보여 시작했지만, 유학을 떠나기 전에는 한국 프로팀에서 연습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춤에 대한 열정은 이어졌다. “팀을 만들어 미국을 돌아다니면서 춤 배틀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후 미국 대표로 세계대회인 ‘JAPAN DANCE DELIGHT’에 나갈 자격을 얻었다. “박사 과정 중이었는데 교수님께 ‘휴가 갔다 오겠습니다’라 말하고 나갔죠. 지도교수님께서 멕시코 분이셔서 자유로운 분이셨어요.”

  그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쌓으라 강조한다. “공부를 너무 많이 하진 말고 놀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강남까지 가서 놀기도 하고 술도 자주 마시고 춤도 췄어요.” 확실한 취미를 가질 때 오히려 본인이 하고 싶은 일도 명확해질 거라 조언했다. “진로를 한정해둘 필요는 없습니다. 본인의 길을 찾았다면 과감하게 빨리 도전하는 게 좋다고 봐요.”

  이번 학기에 김 교수는 학부에서 공학 수학을 강의한다. “오리엔테이션만 한 상황이라 아직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설레고 신납니다.” 교육자로서 김 교수의 목표는 교수를 배출하는 것이다. “이공계 교수님들은 그런 꿈이 있거든요. 졸업한 학생 중 교수가 한두 명이라도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글|장우혁 기획1부장 light@

사진|하동근 기자 hdng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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