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문제라고 말해도 정부는 당당하다. ‘문제의 중심에서 문제없음을 외치는 꼴’이랄까. 이쯤 되면 지긋지긋한 ‘선진국’의 사례도 등장한다. “선진국은 법치주의를 확립해서…”, “선진국의 어떤 제도가 이렇기 때문에…”. 며칠 뒤 잘못이 명확해지면 침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사퇴하겠습니다”
반면 진보 세력에게서는 ‘문제있다’는 말만 들려온다.
오늘과 같은 현실에서 문제를 지적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겠지만 요즘은 모든 현상, 사건을 그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문제’에 부합하도록 해석하려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든다. 얼마 전 고인이 된 본교 중퇴생 정 모 학우의 이야기가 그 예다.
고인의 죽음에는 물론 어려운 경제 사정도 한 축을 담당했겠지만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는 ‘현재진행형’이다. 무엇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것인지에 대한 답변을 아무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등록금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식의 주장은 사건을 확대해석에 불과하다. 고인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한다면 사건의 정황이 좀 더 명확해지길 기다리자. 사회 문제와 연계된 집회와 기자회견은 그 이후에 진행해도 늦지 않다. 그전엔 ‘사회의 희생자 정 씨’가 아닌 우리와 함께 대학을 다니고 같은 이야기를 공유한 선배로, 후배로, 동기로 기억하고 추모하자. 그것이 진정 고인을 위한 길이다.
이명박 정부는 문제 있음을 인정하고, 진보 세력은 좀 더 신중한 자세로 사회를 바라보자. 그게 ‘제대로 된’ 정부고, ‘진짜’ 진보를 위한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