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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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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없는 시대, 늙은이만 있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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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조근호
등록일
2010-05-13 09:27:59
조회수
2352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J.Toynbee)가 1970년대 초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 나라의 가족제도에 대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부러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특히 가정과 사회에서의 효친사상이야말로 인류가 간직해야 할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며, 한국의 가족제도는 그 최고의 본보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굳이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자신보다 나이가 서너 살 더 많으면 마땅히 형님 대접을 하고, 열 살 이상 많으면 부모 대접을 하던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어른들이 있어서 그들의 말은 하나의 법처럼 지켜졌다. 그들은 질서를 바로잡고 풍기를 바르게 하여 마을의 미풍양속을 지켜왔다. 그들의 고함 한 마디면 온 마을이 조용해지곤 했던 것이다. 음주나 흡연도 어른들 앞에서는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어른의 눈치를 보아가며, 아니면 멀찌감치 숨어서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셨던 것이다. 어른은 숱한 세월을 보내면서 많은 것들을 경험했고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연륜을 쌓은 분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젊은이들의 잘못을 보면 꾸중을 하거나 타일러서 바로잡아 주는 것이 사회적 통념으로 당연시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를 살펴보면 세계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한국의 아름다운 가족제도, 가정과 사회에서의 효친사상을 기반으로 한 유대와 질서가 지금도 과연 남아있는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지금 이 사회에는, 가정에 가장이 없고 마을에 어른이 없으며 문중(門中)에는 문장(門長)이 없다. 그저 힘없이 젊은 사람의 눈치만 보는 늙은이들만 있을 뿐이다. 이제 아이들은 더 이상 어른을 어른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어른이 있어야 잘못하는 사람에게 올바른 길을 가도록 충고할 텐데 정작 바른 말 하는 어른은 보기 드물다. 버스와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에서 손자뻘 되는 아이들은 자리를 양보 할 줄 모르고, 그들의 부모 세대 역시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전혀 지적하지 않는다. 괜히 나서서 말했다가는 망신만 당하고 심지어 아이들에게 봉변을 당하기까지 하는 것을 누구나 잘 알기 때문이다. 모처럼 서울 아들집을 방문한 노부(老父)가 아들이 키우는 애완견보다도 못한 홀대에 혀를 내두르며 통탄하고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요새 젊은이들은 날마다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지식을 학습하기에 바쁘다 보니 어른들이 알고 있는 삶의 경험과 지혜는 고리타분하고 쓸모없는 것으로만 여기게 된다. 어른들이 무슨 말을 하면 무조건 고리타분한 것으로 생각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사회 원로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다 못해 신문이나 방송에 한 마디 충고와 고언을 하면 곧바로 젊은이들에게서 반개혁적이라느니 원조보수라느니 온갖 비난이 쏟아진다. 인터넷과 컴퓨터가 어떻고 디지털이 어떻고 하며 기를 죽이는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은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고 있다. 지하철 안에서 젊은 커플이 붙어 앉아서 마치 자신 둘 밖에 없는 것처럼 낯 뜨거운 행동을 해도 보지 못한 것처럼 눈을 감아버린다. 어른 자리가 아닌 노약자석에 입 다물고 앉아 오지도 않는 잠이나 청해 보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어른이 사라진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인 전통이 지닌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양 사회는 오랜 세월 동안 유교적인 전통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혈연주의에 의해 지탱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가정과 사회를 유지해오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질서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삼강오륜으로 함축될 수 있는 동양의 전통적 인간관계가 순식간에 붕괴되고 있다. 동양사회를 지탱해온 혈연주의의 핵심인 대가족제도가 무너지고 핵가족화 되면서 가족구성원간의 공유성과 유대감도 점차 약화되고 있다. 개인주의 및 합리주의 그리고 기독교적 관점에 기초하여 과학을 발달시켜온 서구사회는 급격한 변화에도 견딜 수 있는 적응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 그러나 동양 사회는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 문화가 유입되면서 혈연주의적인 인간관계가 급속히 무너지는 데에 따른 정신적인 공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동양인이 지닌 삶의 방식은 이성적인 합리주의에 익숙하지 못하기에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과학의 발달 속도는 차분히 대책을 준비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어른이 사라진 이유를 서구의 합리주의가 가져온 부작용에서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나, 어른이 젊은이들을 귀하고 어여삐 여기는 것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친(親)의 덕목이다. 또 젊은이가 어른을 공경하는 것이나 자식이 아버지를 섬기는 것은 효(孝)의 근간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풍습이 살아남고 전해지기 위해서는 아이를 아이로 보살피고, 어른을 어른으로 모실 줄 아는 역할 모델(role model)로서의 어른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어른들의 삶을 보면서 아이들은 무엇이 소중하고 올바른 것인지를 몸으로 깨닫고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가정과 사회에는 어른이 없다. 자식에게 오냐 오냐 하는 하인 같은 어머니는 흔해도, 매섭게 회초리를 들 줄 아는 엄한 아버지는 보기 드문 것이다. 어른다운 어른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과 젊은이들의 비위나 맞추는 늙고 약한 노약자보다는 젊은이들의 잘못에 대해 당당하게 꾸짖고 야단칠 수 있는 어른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보며 아이들의 잘못이 크지만 어른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일부 어른들이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스스로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 어른은 어른다워야 하는데 그들 스스로가 어른 대접 받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해주면 고맙다고 말하는 노인을 보기 힘들다. 그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쉽다. 예절은 중요하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 쪽이 베풀면 이에 상응하는 예절을 갖추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여러 가지 실수와 허물로 인하여 스스로가 어른이 되기를 포기한 어른들이 권위만을 자신만의 무기로 삼아 무조건 젊은이들에게 순종을 강요하거나 군림해서는 안 된다. 그럴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의 큰 어른인 정치인들이나 종교 지도자 그리고 교수들이 각종 이슈나 민감한 사안에 대하여 좀 더 올바르고 당당한 목소리를 내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 쪽으로 치우치는 잘못된 사회 분위기를 충분히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막상 중요한 시기에 목소리를 아끼거나 심지어는 그들 중 일부는 구설수에 휘말리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실망스러울 뿐이다. 온갖 이익에 눈멀어 지도자라는 역할을 이미 버린 지 오래인 정치인들은 보는 사람들을 답답하게 한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그렇기에 돈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살아온 어른들이 그런 생각으로 길러낸 아이들로부터 늙어서 돈 때문에 설움을 받게 되는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어른만 있는 세상도 무섭지만 아이들만 있는 세상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는 세상을 움직일 수는 있어도 이끌고 가지는 못한다.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을 도와줄 사람이 어른이고, 아이를 바른 세상으로 이끌어줄 사람도 바로 어른이다. 아이만 가득하고 어른이 없는 사회는 균형과 조화를 잃은 사회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늙은이는 있어도 어른은 없다. 그래서 2010년 대한민국은 어딘가 불안하다.
작성일:2010-05-13 09:27:59 123.111.27.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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