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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짜위안부 앵벌이 시켜 진짜위안부 착복하는 여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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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자
등록일
2006-12-07 18:33:50
조회수
7195
위안부 할머니의 분노 "우리를 앵벌이 삼아 국제망신 그만시켜라"

지만원 "위안부를 해부한다" 2탄/

진짜 위안부할머니 인터뷰 "우리더러 창녀라고 욕하더라"...

정대협과 정부,日 위로금도 수령도 방해 불만 팽배,

박봉순할머니 장례땐 일본인이 화장비 내고 유골도 동료할머니가 홀로 운구

[2005-04-14 17:17:48]


위안부를 해부한다는 글을 써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인 지만원 박사가 위안부할머니들의 현실과 봉사단체들의 봉사없는 실상을 폭로하는 글 2탄을 발표했다.


지만원 박사는 13일 진짜 위안부들의 단체인 무궁화봉사회 회장 심미자 할머니를 직접 만나 장시간의 인터뷰를 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숙소인 ´나눔의 집이 생긴 유래부터 해서 최근의 박봉순 할머니 장례식 때의 일까지 상세하게 소개했다.

지 박사는 인터뷰를 통해서 "정대협(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할머니들을 앵벌이 삼아 모금을 하면서 국제적인 망신을 시키고 있다며 할머니들이 정대협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고 전하면서 "정신대 할머니들이 일본으로부터 위로금을 받으려 할 때도 개인적으로 받지 말라면서 방해를 했다"는 증언을 전했다.

특히 정대협은 일부 할머니가 일본으로부터 위로금 500만엔씩을 받자 이들 할머니들을 창녀라고 욕했다며 할머니들의 증언을 소개했다.

인터뷰에서 심 할머니가 거론한 두가지 큰 불만사항은 두가지.

1) 위안부봉사단체인 두 기관들은 위안부를 이용하여 국내외로부터 모금도 하고, 자신들의 명예를 올리기 위해 일하며, 모금한 돈을 나누어 주지도 않는다.

2) 몇 명 안 되는 할머니들을 앵벌이로 삼아 국제 망신을 시키고 다닌다. 우리는 돈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명예다. 우리를 이용하여 국제 모금을 하는 것은 우리를 두 번 모욕 주는 행위다.

이러한 취지에서 심미자 할머니는 6명의 변호인들로 구성된 변호인단을 통해 2004년 3월, 위 두 기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를 상대로 “모금행위 및 시위동원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고 한다.(가처분신청 자료 보관중).

또 우리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툭하면 위안부 할머니들을 내세워 일본을 비판하고 일본에게 배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작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위안부할머니에게 해준 일이 별로 없다고 지적하고 오히려 일본인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건강과 소송문제, 또 장례식 등까지 세세한 부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을 펴왔음을 역설적으로 전했다.

이와 관련 2004년 위안부 할머니중 한명인 박복순할머니가 사망했을 때 장례식장에 한국인은 거의 없고 일본인들이 몇명 모여서 장례를 치뤘는데 화장비도 일본인들이 내고 유골을 운반할 때도 무궁화회 회장인 심미자 할머니가 먼길을 걸으면서 홀로 운반해야 했다는 가슴 아픈 일화를 소개했다. 봉사단체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면서 위안부봉사단체의 허구성을 통열히 비판했다.

언론이나 TV에 나오는 할머니중 일부는 일본에서는 진짜가 아니라고 본다면서 이로 인해 한국이 불신을 받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우려가 있음도 지적했다.

지 박사는 "위안부들을 더 이상 욕보이지 않고, 한국의 명예를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위안부 문제는 활발하게 공론화되고 조사가 돼야 할 것"이며 "정대협과 나눔의 집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할머니의 주장"이라고 전했다.

또 "이 대로의 위안부 행사나 위안부를 위한 사회활동은 대한민국의 명예와 ‘진짜 위안부’들의 명예를 위해사라도 중지돼야 한다" "이런 식으로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는 반일운동의 일환으로 오해될 수 있다"면서 우려를 표했다.

다음은 지만원 박사의 위안부를 해부한다(下) 글 전문이다.


위안부 할머니를 해부한다(하)

위안부를 소재로 한 한국인 사회운동

1990년,11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위안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취지로 창설됐다. 창설 당시 정대협 운영을 주도한 사람들은 소위 ‘이대’ 졸업생들이었다 한다. 윤종옥(83세 가량)은 이휘호씨(김대중의 처)의 선배이자 기독교인으로 알려졌고, 지은희는 전여성장관, 그리고 이미경은 열우당 의원이다. 그리고 신혜숙 등이 있다 한다.

1991년, 정부는 전국 읍면동에 공문을 보내 “위안부에 대해서는 비밀을 보장해 줄테니 창피해 하지 말고, 신고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고, 이에 따라 신고자는 총 2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125명 정도이며, 이 125명 중 진짜 “일본군위안부”라고 자기들끼리 확인한 노인들은 33명이다. 이 모임은 약칭 “무궁화회 할머니회”로 불린다. 이 할머니 대표가 바로 일본 대법원에서 진짜로 확인된 ´심미자´(82세) 할머니이며, 2005.4.13. 오전과 오후에 걸쳐, 필자가 여러 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현재 매주 수요일 시위에 나오는 할머니들 중 언론에 얼굴이 가장 많이 비친 할머니는 두 분 정도인데, 공교롭게도 이 두 분에 대해서는 일본 사회(국회의원, 기자)에서 “저 분들은 아니다”라는 평을 받은 분들이라 한다. 이 두 분은 아직도 정대협에 소속돼 있다 한다.

정대협에서 실망을 느낀 5명의 할머니들이 조계종 송월주 스님을 찾아가 생활고를 호소했고, 불교계 및 사회 각계에 모금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2년 10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처음으로 <나눔의 집> 개소식을 갖게 되었고, 명륜동, 혜화동을 거쳐, 1995년 12월 조영자씨가 기증한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소재 650여 평의 대지에 300여 평의 건물이 지어져 있는 것으로 소개돼 있다.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위안부 할머니 1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라 한다.

이 곳은 관광하러 한국에 온 일본인들의 관광 코스로 되어 있고, 국내외로부터 성금이 답지된다고 한다. 먼저 나눔의 집을 지어달라 호소했던 할머니들은 운영자측에 대해 많은 불만이 있어 나갔고, 현재 홈페이지에는 10명의 위안부 얼굴들이 나타나 있지만 이들 중 약 5명 정도는 중국에서 온 할머니들이라 한다. 이 중국 할머니들 중 몇 명씩이 하루에 3만원을 받고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 집회에 나간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정대협’이 기독교인들이 만든 단체라면 ‘나눔의 집’은 불교인들이 만든 복지시설이다. 원장은 혜진 스님, 무궁화회 33인은 진짜 “일본군위안부”이라 주장하며, 이분들은 정대협과 나눔의 집에 대해 상당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무궁화회 할머니 심회장은 불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1) 두 기관들은 위안부를 이용하여 국내외로부터 모금도 하고, 자신들의 명예를 올리기 위해 일하며, 모금한 돈을 나누어 주지도 않는다.

2) 몇 명 안 되는 할머니들을 앵벌이로 삼아 국제 망신을 시키고 다닌다. 우리는 돈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명예다. 우리를 이용하여 국제 모금을 하는 것은 우리를 두 번 모욕 주는 행위다.

이러한 취지에서 심미자 할머니는 6명의 변호인들로 구성된 변호인단을 통해 2004년 3월, 위 두 기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를 상대로 “모금행위 및 시위동원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가처분신청 자료 보관중).

위안부를 위한 일본인 사회운동

1995년, 일본에서는 무라야마 전직 총리가 “재단법인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일본 사회에서 광범위한 모금 운동을 전개했다. 일본군으로부터 피해를 본 12개국 여성들을 위한 단체인 것이다. 실제적인 주택개선, 간호 및 의료, 의약품 보조 등 본인의 실정과 의사를 반영하여 지원하겠다는 것을 문서로 약속했다. 이에 따라 한국 위안부들에게는 500만엥씩 주겠다고 제안해 왔다. 할머니들이 이 돈을 받으려 하자 정대협과 정부에서는 할머니들에게 “당신들이 이 돈을 일본으로부터 받으면 창녀가 된다. 절대로 받지 말라”고 했고, 일본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서는 “한국정부가 받아서 기념관과 위령탑을 건립할 것이니 정부에 달라”는 말을 했다 한다.

이에 따라 공식적으로는 7명이 500만엥을 받았는데 정대협은 이 할머니들을 가르켜 창녀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진짜 할머니 말에 의하면 “개인이 받으면 창녀이고, 정부가 받으면 당연한 것”이라는 말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며 분해 했다.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지 않은 나머지 위안부들은 한국정부로부터 3,150만원씩을 받았다 한다. 진짜 할머니는 일본 ‘아시아여성기금’에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지만 아시아여성기금은 2005.3.31자로 할머니에게 한국정부가 중간에서 방해한다는 뉴앙스가 풍기는 편지를 보내왔다.

박봉순 할머니의 경우

박봉순 할머니는 33인중 한 분으로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인해 여생을 병으로 보내다가 2005.2.30일,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이 분은 17년간 내내 식사를 하지 못했다 한다. 일본인 자원봉사단체인 ‘학기리’(확실하게 일한다는 뜻)의 대표 ‘우스끼’상이 할머니를 데려다가 정밀검사를 받게 한 후, 할머니에 맞는 우유를 개발해 17년간 보내왔다 한다. 1년에 5회 정도 한국에 계시는 할머니를 찾아와 불편한 점들을 점검했고, 아프면 일본으로 모셔다가 입원도 시켰다.

한국에는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가 있는데 회장이 양 모씨라 한다. 양회장은 공개적으로 통곡을 했고, 5일장으로 장례식을 연기했다 한다. 널리 보도됐던 장례식에는 약간의 일본인들 말고는 한국인들이 별로 없었다 한다. 화장터에서 유골을 찾을 때, 한국인의 그 누구도 화장비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우스끼’상이 냈다 한다. 박할머니의 유골을 운반하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그 82세의 심미자 할머니가 유골함을 앞에 메고, 추위에 버스 두 정거장 길을 걸어 대기중인 봉고차를 타고 천안에까지 갔다 한다. 천안의 ‘망향의 동산’에까지 무릎에 얹고 가는데 너무나 힘들고 추워서 그 후 심히 앓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내세우며, 애국자인 체 하고, 양심가인 체 하던 사람들 다 어디 가고 없는가! 박봉순 할머니는 일본 여성들이 17년간 부모처럼 돌보았고, 장례식 비용도 부담했고, 장례식도 치렀다.

* 일본 봉사단체와 한국 봉사단체는 어떻게 다른가? 일본 봉사단체는 17년간 박 할머니에게 일반 자식들보다 더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장례도 치렀다. 그러는 동안 한국의 그 많은 위안부 봉사단체는 무엇을 했는가?

*일본 봉사단체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감동할만한 봉사를 했지만 위안부를 위한다는 그 많은 한국의 봉사단체들은 위안부를 앵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했다는 말인가?

* 박 할머니에게 1억 5천만 원이라는 눈물 젖은 돈이 있었다. 일본으로부터 500만엥(5천만원)을 받았고, 다달이 받은 60만원들이 모인 돈이다. 이 돈은 누구에게 가야 하는가? 가만 두면 정부가 갖게 된다. 그 돈을 정부가 갖어야 하는지 정부의 조치가 주목된다.

심미자 할머니의 경우

심미자 할머니는 2004.11.29. 일본 대법원에서 진짜 ‘일본군위안부’로 판결 받은 분이다. 이 할머니를 위해 법정투쟁을 해준 변호사들은 한국인 변호사가 아니라 일본인 변사호사들이며 ‘우스끼’상과 ‘히라다’상이라 한다.

1940년 황해도 모 학교 5학년 때였다. 그녀는 자수를 잘 놓았다 한다. 한국지도에 무궁화꽃이 만발한 자수를 놓았더니 선생님이 교실 벽에 붙여놓았다. 이를 본 일본 선생이 일본 지도에 꽃을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심할머니는 일본 지도에 나팔꽃을 수놓아 주었다. 하루는 일본 순경이 잡아다 심문을 했다. 일본 꽃은 사꾸라 꽃인데 왜 하루살이 꽃인 나팔꽃을 놓았느냐는 것이 트집이었다. 일본 순사에게 강간을 당한 후 고진 고문을 당했다. 등과 다리, 손톱에 심한 고문을 당해 아직도 고문자국이 깊게 패여 있다.

‘일본군위안부’가 되어 일본 땅에 갔는데, 마침 얼굴이 예쁘고 지적으로 생겨서 일본헌병대장 스즈끼의 애인이 됐다. 신임을 얻은 할머니는 유곽생활은 면하게 됐다. 스즈끼 헌병대장의 부인이라는 증명서까지 받았다. 당시 한용운과 김마리아가 찾아와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다. 엄마와 할머니한테 가는 게 소원이라 했더니 그러면 독립운동에 자금이 필요하니 자금을 대라고 말했다 한다. 심 할머니는 그게 정말인 줄 알고 일본군 장교들의 빨래를 해주고, 뜨개질도 하고, 하나마끼라는 허리에 차는 돈지갑을 만들어 20원씩에 팔아 자금을 댔다고 한다.

독립군이 와서 여행증명서를 해달라고 부탁하면 스즈끼 대장에게 친척이라고 말해 ´자유통과´ 효력을 가진 강력한 여행증을 만들어 주기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1992년 3월, 심 할머니가 현지 증언을 하러 후꾸오카에 갔을 때, 법정에 들어서려는 할머니에게 “얼마를 보상하면 되겠느냐”고 말하기에 “야 이 나쁜 자식아, 내가 돈 받으려고 증언을 다니느냐, 일본 땅 전체를 주어도 보상이 안 된다”고 소리를 친 후, 졸도를 했다 한다. 할머니를 보상이나 받으러 다니는 존재로 알고 있는 데 대해 분노가 치밀었기 때문이었다 한다. 일본인들에 이런 인식을 심어준 것은 바로 한국의 언론이요 한국의 위안부을 위한다는 사회단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할머니는 분노했다.

위안부 놀음, 이제는 제발 접어야

현재 남아 있다는 125명의 위안부 할머니들, 그리고 그 125명 중의 33명의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 그들은 한국의 위안부 봉사단체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지만 금전적인 도움을 별로 받지 못했고, 생활지원도 별로 받지 못했다는 것이 심 할머니의 증언이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로부터는 얼마나 도움을 받았는가? 한국정부는 오히려 일본의 ‘아시아여성기금’으로부터 받는 도움마저 못 받게 하는 방해꾼이라는 게 심할머니의 말이다.

지난 15년의 봉사활동이 이와 같다면 ´정대협´과 ´나눔의 집´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매일 같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벌이는 위안부 시위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에 대해 심 할머니는 두 가지를 말한다. 첫째는 모금과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하는 것이고, 둘째, 위안부들의 명예를 짓밟는 행위라고 말한다. 심할머니가 바라는 유일한 것은 돈이 아니라 명예회복이라 한다. 자신들은 창녀가 아니라 국가가 강하지 못해 당한 희생양들이며 그래서 평화를 사랑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염원하기 때문에 ‘세계평화를 위한 무궁화회 할머니’들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런 희망에 반해 오히려 위안부를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위안부들을 창녀라고 하니 기가 막히고 원통하다고 말한다. 이들이 과연 위안부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위해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지금 그 할머니 곁에는 그 할머니를 위한 자서전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한 사람이 있다. 자료는 실로 방대했다.

일본 사회봉사 단체 그리고 이론 정부는 한국인 위안부들에 대해 한국의 정부와 사회단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매우 불신하고 있다 한다. 그 한 예가 “위안부 행사 뒤에는 북한 공작원이 있다”는 취지의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위안부들을 더 이상 욕보이지 않고, 한국의 명예를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위안부 문제는 활발하게 공론화되고 조사가 돼야 할 것이다. 정대협과 나눔의 집에 대해사도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할머니의 주장이다.

이 대로의 위안부 행사나 위안부를 위한 사회활동은 대한민국의 명예와 ‘진짜 위안부’들의 명예를 위해사라도 중지돼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런 식으로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는 반일운동의 일환으로 오해될 수 있다.

필자는 어떤 불순세력들이 미선이-효순이를 왜곡하여 반미감정을 일으켜, 한국국민을 세계에서 가장 의리없고 은혜를 모르는 배운망덕한 국민으로 만드는데성공했고, 이와 동시에 위안부 역시 반일감정을 유발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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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일본군위안부´다"
심미자 무궁화회장 인터뷰 "내 말은 ´유언´이다"

[2005-04-16 23:05:18]

- 심미자 무궁화회장

´무궁화회´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임인데도 불구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 위안부 할머니들의 복지기관인 ´나눔의 집´ 등 다른 위안부 관련 단체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곳이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전 날 <독립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분들은 피해자이면서도 가해국인 일본 우익들의 목소리를 따라하고 있다"면서 ´배상금´도 아닌 ´위로금´을 받고 민족 자존심을 내던지고 있다고 비난했고, 정대협 관계자 역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이들과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비난하는 등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무궁화회´에 대해 심 회장은 "지난 91년, 정부가 비밀을 보장해 줄테니 위안부 피해자들은 부끄러워 하지 말고 신고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전국 읍면동사무소에 보낸 바, 이에 신고자 중 진짜 ´일본군위안부´라고 자신들끼리 확인한 할머니들 33명의 모임"이라고 소개했다.

심 회장은 지만원 소장의 글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과 관련, "이 사람(지 소장)은 ´위안부´에 대해 제대로 써주고 있다. 그 내용이 사실인데 왜 문제가 되느냐?"고 입장을 밝혔다.

´정신대´와 ´위안부´는 다르다며 용어 사용을 분명히 해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심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정신대´는 여성 근로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위안부´는 일본군에게 ´성´을 제공한(빼앗긴) 여성들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위안부´도 ´종군위안부´와 ´일본군위안부´ 두 종류가 있다면서 자발적이지 않은, 강제로 끌려간 여성들이 후자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심 회장은 현재 국내에 있는 위안부 중 자신과 같은 `일본군 위안부´는 20%뿐이며, 나머지 80%는 ´종군위안부´라고 주장 하면서

"이러한 통계는 내가 직접 전국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증언을 통해 분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부의 위안부 심사과정에 대해 심 회장은 "별다른 자료 없이 ´구술의 신빙성´에 의존해 선정하고 있다"고 밝혀 전날 <독립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이 2차대전 당시 일본군 포로들을 심문하여 입수한 위안부 명단 등이 적힌 문건을 참고하고 있다"는 여성부 관계자의 말과 차이를 보였다.

한편 심 회장 역시 갈등관계인 정대협 등 타 위안부 관련 단체들에 대해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그는 "이들 단체들이 처음 생겼을 때는 정말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하는 단체였는데 나중에 변질되었다"면서 "이들이 요즘 한 일이라곤 정부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생활지원금을 더주라고 요구한 것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심 회장은 "이들 단체들은 우리와 아무런 의논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모금한 돈의 액수나 사용 용도를 알 수가 없다"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다는 취지로 이들 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모금활동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며 이를 뒷받침하는 몇가지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번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고 있는 일본인 단체에서 정대협 측에 10만엔을 전달했는데 이 돈을 나눠주지 않았다. 또 내가 위안부 문제로 일본에 갈 일이 있으면 이들은 ´심미자 할머니는 아파서 못가니 우리가 대신 가겠다´고 일본 측에 거짓말하며 여기서 성금 등을 받으면 자신들이 챙기곤 했다"

무궁화회 측은 현재 이 단체들에 대해 ´모금행위 및 시위동원 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상태다.

계속해서 심 회장은 "여성부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책정한 예산이 있는데, 무궁화회에는 그 예산이 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도 정대협(공동대표) 출신이라며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한편 아버지가 일제 시절 헌병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파문을 일으켰던 열린우리당 이미경 의원 역시 "정대협(총무) 출신"이라고 강조하며 "(이 의원은)위안부를 팔아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라는 등 맹비난을 가했다.

심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2002년 이미경 의원(당시 한나라당 소속)은 의정활동보고서에서 "자신은 40명의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간담회를 가졌다"고 보고했지만, 실제로 이 간담회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2명이었다. 이 의원이 이처럼 숫자까지 부풀려 가면서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 심 회장의 주장이다.

심 회장은 조국이 그동안 위안부들을 돕는 데 인색했다며 서운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지난 91년부터 14년 동안 일본정부와 법정 투쟁을 벌일 때 이를 도와준 한국인은 없었다. 내가 일본에서 위안부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인 변호사·기자들의 증언 때문이다"

"박복순 할머니 장례식 때 한국인 문상객은 나를 포함해서 김종대 아시아태평양유족회 이사장 등 4명이 전부였다. 오히려 가해국인 일본정부에서는 외무성 관계자 등 9명이 참석했는데, 한국정부 관계자는 직접 오지않고 화환만 보냈다."

심 회장은 위안부를 소재로 하여 파문을 일으켰던 ´이승연 누드사진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심 회장은 당시 사진감독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죄하며 이 사진첩을 불태우려고 했을 때 자신이 이를 말렸다면서 "이승연이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만, 이 역시 불행한 역사의 한 단면인데 태우게까지 하는 것은 같은 동포로서 너무 심하게 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배경을 설명하면서 "그런데 당시 정대협 관계자가 나를 ´정신병자´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이에 기자들이 나를 떠밀다시피 하며 태우는 장면만 취재, 나의 행동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우리가 이런 활동을 하는 취지는 다시는 이 땅에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오늘 내가 한 말들을 ´유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달라"는 심 회장은 "옛 위정자들이 국정을 잘못해서 일제지배를 받게되었고 그래서 위안부 문제도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노무현 정부는 그러한 잘못을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며 현 정권의 정책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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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두번 울린 정대협, 문닫아라(33인)


-33인 위안부할머니들의 이름으로 고한다-


만약 누군가가 위안부할머니들에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이냐고 묻게 된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명칭을 액면대로 해석해 보자면 한국을 대표한 시민단체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정신대로 끌려간 위안부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뤄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앞장서는 한편 위안부할머니들에게는 큰 버팀목 역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는 모두가 허구일 뿐 실제는 위안부할머니들을 팔아서 자신들의 잇속만 채운 사람들의 집단’이며 ‘위안부할머니들을 두 번 울린 사람들’이라고.

정대협이 발족될 당시인 1990년 11월 16일. 당신들은 정대협 간판을 내걸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과 한일간의 왜곡된 역사 바로잡기 위해 정대협을 발족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역사에 묻혀 숨죽여 살아온 우리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얼마나 가슴 벅찬 구호처럼 들려왔는지 지금도 그때의 일을 기억하면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겹도록 흘린 눈물은 당신들의 본래 모습이 하나씩 하나씩 들춰지면서부터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위안부할머니들이 정대협을 분노에 찬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발족의 변에서 밝힌 바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과는 정반대의 길을 달려왔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정대협 관계자들이 위안부 문제를 빌미로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좀더 거칠게 말하자면 당신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들인 것입니다.

이미 정치인으로 둔갑해 간 이미경과 지은희를 포함해 정대협의 전현직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입이 닳도록 주장해온 ‘일본군 위안부 범죄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죄 그리고 법적보상’을 위해 당신들은 지금까지 한 것이 무엇이었나요. 일본놈들이 누누이 강조해왔던 ‘법적배상은 국가간 이미 끝났다’는 점을 일본재판소에서도 마찬가지로 ‘65년 한일협정 당시 종결된 것’으로 결론을 내린데 대해 왜 단 한번도 일본법정에 나가 따져 묻지 않았나요. 우리 위안부할머니들은 10년을 넘게 사비를 털어 일본을 오가며 법정투쟁을 벌여왔는데 말입니다.

일본놈들이 수 차례 걸쳐 국가간 배상문제는 끝났다는 주장에 대해 설령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국가간 배상과 관계없이 개인적인 배상은 유효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한국정부를 상대로 한일협정이 어떻게 이뤄졌고 배상문제가 어디까지 협정서에 올라있는지 그 내용을 따져 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더군요. 혹 침묵의 댓가로 발족한 이래 98년까지는 정부로부터 일정액의 정부 보조금을 타내 정대협을 운영해왔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각종 프로젝트니 뭐니 하는 것을 만들어 편법으로 정부지원금을 타내 국민혈세를 축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당신들이 말한 위안부 인권회복 운운에 대해서 위안부할머니들은 치를 떨고 있습니다. 먼저 원론적인 질문 하나 할까 합니다. 대체 15년 동안 위안부 인권회복을 위해 무엇을 해왔는지 우리 위안부할머니들로서는 전혀 체감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반대로 인권유린은 당신들로부터 받은게 참으로 많았습니다. 한 가지 실례로 97년 2월 27일 ‘정신대문제 어디까지 왔나’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윤정옥이라는 당신들의 대표가 한 말 기억하십니까? ‘아시아여성기금을 받는다면 자원해 나간 공창이 되는 것’이라고 공개석상에서 떠들어 댔던 일, 그것이 인권회복을 위한 발언이었나요?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을 세치 혀로 조잘된 윤정옥 같은 사람이 대표로 있는 정대협은 분명 책임도 지지못할 인권유린을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몇 년만 젊어 거동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윤정옥 이년의 입에 주리를 틀고 싶은 심정뿐입니다.

아울러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창이라는 말까지 듣게된 그 기금이 당신네들이 주는 돈입니까?. 한 가지 예로 지나가는 길에서 술취한 미X놈이 여자 행인을 강제로 끌고가 윤간을 했다손 칩시다. 당시에는 그가 누군지 몰랐다가 세월이 한 참 흐른 뒤에 그 취객의 자손이 나타나 피해배상 문제와는 별도로 가족들이 모은 위로금이니 이것이라도 받아 준다면 우리가족들 마음에 조금이나마 죄스러움을 씻을 수 있겠다며 애원해 그 피해 여성이 그 돈을 받았다면 그것이 창녀 짓의 댓가로 받는 것입니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주는 위로금을 당신들이 뭔데 공창 운운하며 우리를 두 번 울리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7명의 위안부할머니들이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았다고 해서 당신들 무슨짓을 했습니까. 공개적으로 7명의 위안부할머니들을 대놓고 매도하는가 하면 정부가 위안부할머니들을 가엽게 여겨 일괄 지급해주기로 한 보상금 31,500,000원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한 사람들이 바로 당신들입니다. 결국 어떻게 됐나요. 우리의 동료인 위안부할머니들 7명만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정부 보상금을 받지 못하고 지금까지 가슴에 한이 남아있는 것 당신들은 알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지 못하도록 당신들이 그렇게 방해하고 통장계좌를 수시로 확인하고 전화로 공갈협박을 일삼아도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형편이 어려워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당신들은 왜 모른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에 우리 무궁화회 할머니들은 모두는 당신들의 집요한 방해공작으로 정부 보상금을 받지 못한 7명의 할머니들에게 지금까지 지급하지 않고 있는 정부 보상금을 빠른 시일내 지급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방해공작을 펴 왔던 국회의원 이미경과 여성부 장관 지은희가 정대협 출신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앞장설 것을 다시한번 강력히 항의합니다.

정대협에 관계하고 있는 당신들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할 일 또 있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이 알고 있기로는 당신들 대부분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인 크리스찬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해서 하나님 이름으로 당신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91년 1월 16일 미야자와 일본 총리 방한을 계기로 대사관 앞에서 정신대 문제를 위해 시작한 수요시위를 계기로 92년 1월 8일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의 수요집회를 왜 지금까지 끌고 나가는 것입니까. 할머니들을 꼭두각시처럼 앞장세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열고 있는 수요집회의 진정한 뜻이 무엇입니까. 일본은 한일협정으로 이미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한 배상은 끝났다고 하고 한국 정부나 매국노 김종필은 입을 다물고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 할머니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들의 속셈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수요집회를 지속해야 정대협이라는 배가 항해할 수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국내에 있는 위안부할머니들이 한결같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수요집회를 꺼려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다시는 우리를 앵벌이로 삼는 노름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현재 수요집회에 그나마 참석하는 위안부할머니들이 누가 있습니까. 기껏해야 중국에서 들어온 중국 위안부할머니들이 고작 아닙니까. 경고합니다. 이제 다시는 할머니들을 앵벌이 삼아 자신들의 명분 쌓기에만 급급한 수요집회를 당장 중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진정 당신들이 하나님을 두렵게 생각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당신들이 위안부할머니들을 위한답시고 전국 각처에서 손을 빌려 걷어들인 성금이나 모금액이 전부 얼마입니까. 그 많은 돈 대체 어디에 사용했습니까. 모르는 국민들은 그 모금이나 성금이 우리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당신들이 걷어들인 성금이나 모금으로 수혜를 받은 적 없습니다. 당장 고해성사 하고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턴 돈들을 모두 사재를 터는 한이 있더라도 토해낼 것을 촉구합니다.

또 우리를 슬프게하는 것은 또 있습니다. 99년 3월 3일 교육관을 개관한데 이어 2001년 6월에는 전쟁과 여성인권센터(가칭)를 설립했더군요. 위안부할머니들은 홀로 어렵게 생활하며 병마와 싸우고 있는데 위안부할머니들의 인권을 회복시키는 일을 한다는 당신들은 정대협이 살아날 길만 찾는데 혈안이 된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위안부할머니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세상에 알린 위안부 실태 증언을 비디오로 제작해 돈을 받고 상영해주는가 하면 책으로 엮어 책장사하고 시민들을 상대로 강의료 받아오며 호의호식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분명 당신들이 걷고 있는 행실에 대해 죄라 말할 것이며 언젠가는 그 죄값을 지불하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정대협 사무실에서 이름만 달리하고 있는 한국정신대연구소, 소위 피해할머니들에 대한 조사와 위안부 관련 자료를 연구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교육 홍보활동 및 관련 운동단체와 연대사업을 한다는 그곳은 정대협이 위장한 또하나의 정대협이 아닙니까.

98년 정부로부터 정액보조금이 중단된 이후 정신대연구소 이름으로 대체 얼마나 많은 국민혈세를 흡혈귀처럼 빼먹고 있습니까.

얼마전 당신들이 여성부로부터 3억원의 예산을 타내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다는 것입니까. 적어도 실태조사를 했다고 한다면 위안부할머니들이 살고있는 집을 직접 찾아 어떻게 살고있고 확인을 해 그 실정을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33명의 무궁화회 할머니들은 그 어떠한 곳으로부터도 전화나 방문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실태조사를 했다는 것이며 그 돈 어디에 사용했습니까. 당신들은 분면 국고를 유용하거나 횡령을 한 것입니다.

정대협 출신의 지은희가 여성부 장관이 되더니 정대협과 짜고 3억원의 국고를 유용하거나 횡령한 사실을 과연 노무현 대통령은 알고 계신지 참으로 궁금하기만 합니다. 또한 그같은 행각을 일삼아왔던 정대협 출신들이 정계에 속속 입문하는 것을 보고 노무현 대통령 사람을 볼 줄 모른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33명의 무궁화자매회 소속 위안부할머니들은 매일 밤 십자가 앞에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면 우리를 두 번 죽이고 있는 정대협 사람들을 몰라내 주시고 다시는 위안부할머니들을 팔아 배를 불리게 하는 일 없도록 강구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들린다면 같은 하늘아래서 같은 하나님께 머리숙여 기도하는 우리들의 작은 기도를 듣게 된다면 정대협의 간판을 내리고 그동안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지은 죄 속죄하십시오. 그 날이 속히 오기만을 서원하며 우리 33명의 위안부할머니들은 지금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2004년 1월

태평양전쟁피해자인 위안부할머니들의 모임 세계평화무궁화회 33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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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를 정신대로 호칭한 코미디사회 >>

위안부를 보듬겠다고 설치한 정대협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약자이다.

정대협은 이름 자체가 말해주듯 ‘정신대’와 '위안부'를 동일한 존재로 취급했다.

태평양 전쟁 때, 군수공장에 인력이 부족해서, 천황의 칙령으로 여자근로자들을 모집했다 한다. 15-40세까지의 여성들이 더러는 꼬임에 빠지고 더러는 생활고 때문에 지원을 했다 한다. 이들이 곧 ‘여자근로정신대’였다 한다. 이들은 성을 바친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근로자들이었다.

그런데 ‘정대협’은 이름 자체가 말해주듯 ‘여자근로정신대’를 위안부로 왜곡했다. 수많은 정신대 여인들이 일본에 가서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이런 근로정신대를 한국사람들은 위안부로 오해했다. 수많은 근로정신대 여성들이 명예를 훼손당한 것이다.

정신대가 무엇이고, 위안부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일본인들은 한국 정부와 한국의 사회단체가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웃었을까?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노란 겉옷을 입고 시위하는 할머니는 한국사회에서 정신대로 불려왔다. 국가, 사회, 단체 모두가 정신대와 위안부의 차이마저 구분하지 못하고 13년간 시위를 하고 배상요구를 하고 증언을 하러 다녔으니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어떤 존재로 보였을까?

오늘 심미자 할머니 (일본에서 인정한 위안부) 가 또 다른 사실을 털어놓았다. 위안부를 보듬겠다는 정대협이 위안부를 창녀라며 경멸하고, 한국시회에서 위안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얼굴이나 이름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것이 위안부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라 한다.

오늘 전화로 어느 할머니가 필자와 통화를 했다. 그런데 그 할머니 역시 신상정보를 밝히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극진한 예의를 갖추고 따뜻한 마음으로 도와주기 때문에 일본 사회단체를 더욱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의 각 사회단체에는 수없이 다니면서 증언을 했어도 한국에서는 노출을 적극 피했다 한다.

그렇다면 TV에 단골로 비치는 할머니들에 대해서도 정대협은 배려를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TV를 보면 유영철 같은 악인도 얼굴을 가려준다. 이런 방송문화권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그리고 정신대 관련 방송이 있을 때마다 늘 같은 얼굴을 전국적으로 비쳐주는 것에 대해 필자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그 할머니들은 대역으로 나온 분들이라고 공표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오늘도 심미자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자꾸만 떠오른다.

“대체적으로 지각있는 위안부들은 한국사회에서 TV에 얼굴 나타내기를 절대로 꺼린다.”

필자는 대사관 앞에 단골로 나오시는 할머니들을 가짜라고 하지는 않았다. 단지 심미자 할머니가 여러 번, 반복해준 이 말에 수긍이 갈 뿐이다. 차라리 TV에 서슴없이 얼굴을 내놓는 할머니들이 대역이라고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심미자 회장에 의하면 일본 측에서 가짜 위안부라고 돌려놓고, 아시아 여성기금이 주는 500만엔도 주기를 거절하고, 단체 소송에서 이름을 뺀 바 있는 할머니도 일본 대사관 시위에 단골로 나온다 한다. 중국에서 온 할머니들에 대해서도 "위안부 할머니 수입"이라는 좋지 못한 말들이 오가며 비웃는다고 한다. 이럴 바에야 차리리 "모든 위안부는 노출을 꺼리니, 페포먼스 상, 대체 할머니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면, 보다 인도주의적이고, 보다 솔직하고, 그래서 설득력을 더했을 것이다.

위안부 단체가 단체원의 구미에 맞지 않는 선택을 하고 항의를 한다 해서 "창녀"라고 몰아 붙이거나, '미친 노인'으로 매도하는 것도 단체의 품위와 양심을 의심케 하는 것이며, 몇 몇 할머니들만 고정적으로 얼굴을 팔게 하는 것도 품위와 양심과 도덕성에 의심을 던지게 하는 행위라고 본다.

일본에 항의하고, 국제사회에 호소하려면 우리부터 세수하고 단장하여 깨끗한 얼굴, 우이한 품위를 갖춘 후에 해야 무게가 실릴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사회공공 이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부터 깨끗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초장부터 공개토론을 막으려고 소송부터 해놓는 행위는 단체의 정당성과 자신감에 또 다른 의심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소송이라면 100번도 받겠다. 모든 네티즌들은 제 이름을 인용하여 공개토론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이런 것이 사실이라면 . . " "사회적 의혹은 밝혀져야 한다"는 등의 토론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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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33명은 나눔의 집에 없다"...
(1)강제로 성노리개 된 사람 (2)가난해서 생계형 위안부 (3)돈 받고 공장 등서 일한 사람 등 3종류 있다" [2005-04-13 18:36:20]


-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수요집회에서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 지만원 소장이 일본군 위안부 중에는 진짜와 가짜가 있다며 최근 활발히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할머니들중 진짜가 아닌 사람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해 또 한차례 파문이 예상된다.

지 소장은 13일 자신의 홈페이지인 시스템클럽에 ´위안부를 해부한다´는 제하의 글에서 "위안부 문제라면 아예 손사래를 치며 멀리 하려 한다. 위안부 문제 역시 예전의 5.18처럼 금단의 구역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금단의 장막에 가려져 있는 곳일수록 문제가 많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라며 위안부 문제를 제기했다.

지 소장은 "진짜 위안부 할머니들은 정신적 고통과 성병 및 기타 질병으로 건강이 너무 상해 거동이 불편하다고 한다"며 "그런데 최근 TV에 보여지는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는 연세가 그렇게까지는 많아 보이지도 않고, 건강도 매우 좋아보이며, 목소리에도 활기가 차 있는 분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2004년 11월 29일 일본 대법원에서 6하 윈칙에 따라 확실한 “일본군위안부”였다고 인정받은 할머니가 있다. 현재 82세다. 이 할머니가 인정하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는 33명이며, 이들 중에는 일본대사관에 나가 시위를 하는 할머니가 단 한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지 소장은 또 "최근 TV에 얼굴을 비추고 있는 할머니들 중에는 중국에서 온 5명 정도의 할머니들도 있다한다. 이들은 일본 대사관 앞에 나오는 대가로 하루에 몇 만원씩의 일당을 받는다고 한다. 중국에서 온 할머니들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에 수용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진짜로 알려진 33명의 할머니들은 나눔의집이 싫다며 나와서 산다고 한다"고 전했다.

다음은 지만원 소장의 글 전문이다.

위안부를 해부한다

2005.4.12. 밤 9시 뉴스에 “위안부 할머니는 북한공작원”이라는 뉴스가 나왔고, 익일 아침 신문에도 같은 내용들이 보도됐다. 이를 본 가족이 욕을 했다. “일본 놈들, 저런 엉뚱한 소리를 하니까 UN 상임이사국에서 떨어지지!”

일본은 1910년 한국을 합방했다. 그로부터 32년 후인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공격 함으로서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32년동안에는 위안부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32년간에는 왜 위안부문제가 없었는가?

중국, 인도,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이 유럽강국들과 일본의 식민지가 됐었다. 선의였느냐, 악의였느냐에 대해 따지는 것은 뒤로 미루기로 하고, 결과만을 가지고 본다면 한국은 다른 여타의 식민지들보다는 사정이 좋은 편이다.

- 일본은 조선 여인들을 어떻게 대우했는가? -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가졌던 나라들은 흑인을 노예로 잡아다가 아들 딸 부모를 떼어서 팔았고, 소나 말처럼 채찍으로 때려가면서 부렸다. 인도와 중국은 아편쟁이들이 되었다. 이처럼 여타의 식민지들은 착취와 약탈의 대상이었지만, 한국만은 일본인이 건너와 천년만년 살고 싶어 했던 땅이라 애착을 가지고 가꾸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한국에는 지진도 없고, 산수가 수려하고, 대륙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한국을 일본만큼 가꾸고 한국인들 역시 일본인들과 동등한 대우(내선일체)를 하는 것을 정책으로 삼았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을 사범학교에 보냈고, 졸업을 하면 한국에 있는 학교에 배치했다. 한국에 일본인 전용학교들, 한국인 전용학교들을 세웠으며 도로, 철로, 항만, 발전, 공장, 건물 등 많은 자본을 투자했다. 패러다임 측면에서 보면 다른 여타의 식민지들은 착취의 대상이었지만 한국만큼은 가꿈의 대상이었다는 것이 그 시대를 아는 분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이는 당시의 경제를 연구한 젊은 학자들에게도 형성돼 있는 견해인 듯 하다.

여성에 대한 대우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우리는 5,000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 역사는 침략 받고 고통 받은 역사들로 채워져 있다. 900여회의 침략을 당했고, 대부분의 침략을 중국으로부터 당했다. 중국이 우리를 침략하면 예외 없이 부녀자들을 겁탈하고, 여성들을 중국으로 끌고 갔다. 나이가 들면 퇴물이라며 버렸다. 버림 받은 한 많은 여인들이 그래도 내 땅이라고 조선을 찾으면 조선인들은 이들을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원래는 ‘환향녀’라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중국인들처럼 한국여성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한다.

- 위안부의 종류 -

“위안부”, “정신대” 이런 말들이 나올 때마다 한국인들은 흥분부터 한다. 지난 번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가 “위안부는 양 색시와 같다”라는 말을 했다가 혼이 났고, 지금도 많이 시달리는 모양이다. 그의 글 역시 거두절미한 언론의 희생물이었다. 여배우 이승연이 위안부 역할을 하느라 누드 사진을 찍었다해서 벼락 맞듯이 당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위안부 문제라면 아예 손사래를 치며 멀리 하려 한다. 위안부 문제 역시 예전의 5.18처럼 금단의 구역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금단의 장막에 가려져 있는 곳일수록 문제가 많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위안부에는 엄격히 3가지로 구분돼 있지만 필자를 포함해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를 구별하지 못해 왔다.

(1) “일본군위안부”: 일본인들의 비위를 건드리거나 일본에 반항하던 집안의 규수들, 시집을 미처 가지 않은 규수들이다. 밥을 짓다가, 김을 매다가, 빨래를 하다가 또는 학급에서 공부를 하다가 잡혀간 규수들이다. 이 여인들이야 말로 가장 억울하게 잡혀가 일본군인들에게 윤간을 당한 여인들이며, 그래서 일본을 증오하는 마음이 뼈에 사무쳐 있다. 일본의 통계나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일본군위안부”는 20%, “종군위안부”는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2) “종군위안부”: 이들은 살림이 극히 어려워 스스로 군표를 받고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 창녀라 한다.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했던 말은 바로 이런 측면을 말한 듯 하다.

(3) “정신대”(挺身隊): 이는 ‘여성근로정신대’의 준말로, 15-40대에 이르는 근로여성으로 돈을 받고 간호사, 군수공장 등에서 일한 여성들이다. 끝까지 정조를 지킨 사람, 때에 따라 몸을 팔기도 한 사람, 또는 ‘종군위안부’로 변신한 사람도 있었다 한다.

이 세 부류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일본군위안부”들이다.

- 일본군위안부는 지금 몇 살인가? -

1944년이 아마도 마지막 “일본군위안부”가 끌려갔던 때일 것이다. 당시에 15세 이상의 여성이었다면 지금은 최소한78세 이상이 되어야 한다. 일본군인들에게 5-6년간 몸을 바치게 했다면 78세 이상의 고령에다 몸도 건강하지 못하다는 게 진짜 할머니의 증언이다. 진짜 위안부 할머니들은 정신적 고통과 성병 및 기타 질병으로 건강이 너무 상해 거동이 불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TV에서 보여 지는 위안부 할머니들 중에는 연세가 그렇게까지는 많아 보이지도 않고, 건강도 매우 좋아 보이며, 목소리에도 활기가 차 있는 분들이 있다.

- 한승조 교수가 쓴 위안부(정론지) -

“태평양전쟁 중에 한국인 여성이 挺身隊(정신대)로 끌려가서 일본군의 성적인 위안물로 이용되었다 하여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계속 요구하는 모습은 일본을 나락에 밀어 떨어뜨리려다가 자신들이 먼저 떨어지는 ‘사악함과 어리석음’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 . . 일본이 한국여성을 전쟁 중에 그렇게 이용했다는 것도 전쟁 중의 일시적이면서도 예외인 현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만일 그런 정책의 희생자가 수천, 수만 명이 된다면 六何原則에 따르는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어서 정식으로 거론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리 많았던 수도 아니었는데 그런 봉변을 당했다고 진술하는 몇 명 안 되는 소수의 노파를 끌고 다니면서 과장된 사실을 믿게 해줄 만한 명백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거듭 배상금을 요구하며, 그나마 이미 받은 것 이외에 더 많은 돈을 요구하면서 몇 십 년 동안 물고 늘어져 왔다는 것은 고상한 민족의 행동거지로 볼 수가 없는 것이 아닌지. 그런데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어쩌자고 이런 노파들의 행동이나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를 만들고 열심이 보도해 대는 것인지. 애초에 性의 문제는 돈으로 환산될 수가 없는 것인데 왜 돈의 문제와 결부시켜서 자기 망신을 계속하는 것인지? 이런 치사하고 못난 짓은 하면서 어떻게 위대한 민족임을 내세울 수 있겠는가?”

- 6하 원칙에 의해 인정받은 “일본군위안부”는 누구누구인가? -

2004.11.29. 일본 대법원에서 6하 윈칙에 따라 확실한 “일본군위안부”였다고 인정받은 할머니가 있다. 현재 82세다. 이 할머니가 인정하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는 33명이며, 이들 중에는 일본대사관에 나가 시위를 하는 할머니가 단 한명도 없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위안부였다고 말하는 할머니들에 대해서는 그 진위 여부를 누가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요사이 TV에 자주 나오는 할머니의 경우에는 일본 유관단체가 “가짜”라며 보상금 지불 마저 거절한 바 있다 한다. 일본 기자 4명에게 인터뷰를 했는데 네 번 다 말이 틀리다는 것이었다.

베트남 전은 1965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병사들은 지금 60세 전후가 됐다. 고엽제 등 보상 받을 일이 생기면 “내가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기록이 없다. 증명하는 방법은 월남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이 없으면 당시의 지휘관들과 동료들을 찾아 증언을 하는 것이다.

1980년 광주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누가 민주화투사였느냐, 누가 시위에서 피해를 입었느냐를 조사하는 데에도 별 희한한 속임수들이 많았다. 서로가 서로를 증언해주는 일들도 허다했다. 당시에는 주유소에 가면 휘발유 통을 마구 주었다 한다. 용달차 운전자가 휘발유를 드럼 채 얻어가는 재미에 3차례나 드럼통을 가득 실어 집으로 날랐다. 4번째 가다가 총을 맞았는데 민주화투사로 보상을 받는다 한다. 이는 광주 교도소에서 들은 말이다. 이런 유의 잡다한 사례들은 광주인들 스스로도 부끄러워하는 일이다.

그런데! 60여년이 지난 지금 가짜 위안부로부터 “진짜 일본군위안부”를 가려내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대개는 "노인이 돼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당한 건 사실이다"라며 우기는 경우가 많다 한다.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 낮 12:00-13:00까지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3명에서 많게는 6명 정도의 할머니들이 가슴 앞에 노란 색 천을 두르고 시위를 한다. “진상을 규명하라” “사죄하라” “배상하라” “역사교과서에 진실을 실어라” “전범자를 처벌하라”. 벌써 600여회를 훨씬 넘겼다 한다.

진짜 “일본군위안부”나 “종군위안부”였던 할머니들은 창피해서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는 후미진 곳에 산다고 한다. 일본 법정에서 진짜 “일본군위안부”로 증명된 할머니의 말씀으로는 진짜 할머니들은 TV에 얼굴 찍히기를 싫어하여 단 한번도 노출된 적이 없다고 한다. 최근 TV에 얼굴을 비추고 있는 할머니들 중에는 중국에서 온 5명 정도의 할머니들도 있다한다. 이들은 일본 대사관 앞에 나오는 대가로 하루에 몇 만원씩의 일당을 받는다고 한다. 중국에서 온 할머니들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에 수용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진짜로 알려진 33명의 할머니들은 나눔의집이 싫다며 나와서 산다고 한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에 구애됨 없이 보상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위 3개 카테고리 중에 어느 카테고리에 속하는지 분명히 구분하여 보상을 청구하면 받아주겠다고 한다. 모두가 “일본군위안부”라는 가장 유리한 카테고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한다. 현재 “일본군위안부”라고 서로 믿는 할머니 수는 33인이며, 이들은 “세계평화 무궁화회 33인회”를 구성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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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위안부에 대해)

심미자 회장에 의하면 일본 측에서 가짜 위안부라고 판명나서 돌려 보낸 할머니로, 아시아 여성기금이 주는 500만엔의 전달을 거절하고, 단체 소송에서 이름을 뺀 바 있는 할머니가 지금 일본 대사관 시위에 단골로 나온다 한다..

<<--일본의 양심적변호사들이 가짜라고 판단하고 위로금전달도 거부하고, 한국의 진짜위안부할머니들과의 단체소송에서조차 뺀 할머니가 지금 설치고 다닌답니다..이래서 일본의 양심적시민단체의 지원을 얻어 낼 수 있겠습니까?

위안부 문제를 수면위에 올려놓은 한국의 OOO( 이름 잘 기억 안 남) 할머니는 가짜로 판명났습니다. 버마에서 위안부생활을 했다고 했는데, 당시 눈이 왔었다고 증언했는데 버마는 열대지방입니다. 눈이 올리가 없죠. 계속 심문하자 결국 가짜로 판명났고, 술집을 운영하는 양아버지 밑에서 14세 때부터 작부노릇을 하던 여인으로 판명났습니다..이런 개망신을 당하고서 어떻게 위안부문제를 일본에 따질 수 있습니까? 일단 우리부터 당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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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동문회 정대협 지은희 이미경 일당의 국고횡령, 위안부할머니 착복에 대해)

"한번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고 있는 일본인 단체에서 정대협 측에 10만엔을 전달했는데 이 돈을 나눠주지 않았다. 또 내가 위안부 문제로 일본에 갈 일이 있으면 이들은 ´심미자 할머니는 아파서 못가니 우리가 대신 가겠다´고 일본 측에 거짓말하며 여기서 성금 등을 받으면 자신들이 챙기곤 했다"

무궁화회 측은 현재 이 단체들에 대해 ´모금행위 및 시위동원 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상태다.

계속해서 심 회장은 "여성부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책정한 예산이 있는데, 무궁화회에는 그 예산이 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도 정대협(공동대표) 출신이라며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한편 아버지가 일제 시절 헌병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파문을 일으켰던 열린우리당 이미경 의원 역시 "정대협(총무) 출신"이라고 강조하며 "(이 의원은)위안부를 팔아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라는 등 맹비난을 가했다.

아시아여성기금을 받는다면 자원해 나간 공창이 되는 것’이라고 공개석상에서 떠들어 댔던 일, 그것이 인권회복을 위한 발언이었나요?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을 세치 혀로 조잘된 윤정옥 같은 사람이 대표로 있는 정대협은 분명 책임도 지지못할 인권유린을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몇 년만 젊어 거동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윤정옥 이년의 입에 주리를 틀고 싶은 심정뿐입니다.

그렇다고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지 못하도록 당신들이 그렇게 방해하고 통장계좌를 수시로 확인하고 전화로 공갈협박을 일삼아도......

이에 우리 무궁화회 할머니들은 모두는 당신들의 집요한 방해공작으로 정부 보상금을 받지 못한 7명의 할머니들에게 지금까지 지급하지 않고 있는 정부 보상금을 빠른 시일내 지급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98년 정부로부터 정액보조금이 중단된 이후 정신대연구소 이름으로 대체 얼마나 많은 국민혈세를 흡혈귀처럼 빼먹고 있습니까.

당신들은 분면 국고를 유용하거나 횡령을 한 것입니다.

정대협 출신의 지은희가 여성부 장관이 되더니 정대협과 짜고 3억원의 국고를 유용하거나 횡령한 사실을 과연 노무현 대통령은 알고 계신지 참으로 궁금하기만 합니다.
작성일:2006-12-07 18:33:50 203.229.176.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