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검토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했다.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에 남아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한계가 꾸준히 지적됐다. 2021년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재판관 네 명이 일부 위헌 의견을 밝힌 것에서 같은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이 재판관들은 헌법이 명예훼손의 구제 수단으로 형사처벌을 당연히 전제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피해 구제는 정정보도와 손해배상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UN 인권 기구가 폐지를 반복 권고해 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형법 조항에는 사실 적시가 공익적 목적일 때 처벌하지 않는다는 위법성 조각 사유가 마련돼 있지만 사실적시가 구성요건에 해당하면 수사 및 재판에 부쳐질 수 있어 위축 효과가 발생한다. 공익성을 본인이 입증해야 한다는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 그 부담은 더 커진다.
결국 인격권 보호와 표현의 자유 중 어디에 더 무게를 둘 것인지의 논쟁으로 볼 수 있다. 명예의 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이견은 없지만 사실을 말한 행위까지 형사절차로 끌어들이는 구조는 언론의 보도와 개인의 공익 제보 등을 위축하는 결과를 낳는다. 사회 규범 중 가장 강한 제재인 형벌이 최후 수단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려하면 진실한 사실의 공개가 수사와 재판으로 귀결되는 현행 제도는 균형을 잃었다. 제도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비해 표현의 자유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지난 12일 이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보통신망법에서 사실적시 처벌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형법상 조항도 이미 9월 박주민 의원이 폐지안을 제출한 상태다. 법무부의 형사법개정특별위원회 출범도 예고되면서 관련 논의는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그러나 폐지 이후 늘어날 수 있는 악의적 폭로에 대한 대비는 분명 필요하다. 사실이라고 해도 정도를 넘어선 비난으로 이어지는 온라인상의 풍토, 이른바 ‘사이버 렉카’식 폭로 문화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다만 과한 사실적시는 형사처벌 유지의 근거가 아니라, 별도의 요건 강화나 민사적 구제 현실화로 대응하는 편이 적절하다. 형벌만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삼는 관성에서 벗어나 문제의 핵심을 정밀하게 조정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박병성 기자 bs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