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나길 참을성이 없어 불편한 곳이 있으면 찾아내 고쳐야만 다음 일을 할 수 있었다. 언젠가 기자가 된다면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가려운 곳을 즉시 긁어주는 기사를 쓰고 싶었다. 개강호에 실린 과학도서관 열람실 축소 기사는 그 대표 격인 글이다.
방학 중 학교엔 사람만큼이나 소식이 뜸하다. 그런데 유난히 에브리타임이 뜨겁길래 들여다보니, 과학도서관 4층 열람실이 사라질 예정이며 공지가 내려오기도 전에 삽을 떴다는 말로 시끄러웠다. 요란한 냄비가 식기 전에 뭐라도 써야겠단 다짐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사실을 가려내는 데만 2주가 넘게 걸렸다. 과학도서관은 구역마다 관리와 공사 주체가 달라 학부생이 파악하기 힘든 이해관계가 얽혀 있던 탓이다.
발품 팔아 알아보니 공지하기도 전에 삽을 떴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다. 인근 강의실 공사가 시작되던 때 열람실 공사 소식이 들려오자 불어난 오해였다. 그러나 열람실 축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학생 목소리가 배제된 건 여전히 사실이었다. 총학생회와의 간담회 답변과는 말이 다른 내부 계획안을 발견하는가 하면 결정된 바 없다던 안이 하청 사이트에 올라오기도 했다. 이에 일방적 추진을 비판하는 기사를 계획했으나, 취재가 시작되자 학교 부처에선 면담을 요청해 왔다. 학교는 내부 계획은 변동 가능성이 크단 걸 소명하고, 수요가 높은 구역인지 몰랐다며 학생 의견을 반영할 구체적인 방안을 약속했다. 결국 기사는 노골적인 비판보다는 오해를 바로잡고 잘못은 지적하는 방향으로 완성됐다.
‘취재가 시작되자’라는 말이 있다. 언론 취재가 시작되면 당사자들이 곧바로 문제를 시정하는 현상을 가리킨 밈이다. 원래는 늑장 대응을 비꼬는 말이었다지만 막상 ‘취재가 시작’돼 보니 이렇게라도 문제가 해결될 수만 있다면 늦은 시정쯤은 아쉽지도 않다.
활자의 영향력이 약해진 시대라 하더라도 취재는 힘이 있다. 반면 기사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않아 금세 냄비가식어버리면 못내 아쉽다.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소식을 찾기에 급급하고 태초의 불만은 무엇이었는지 잊은 듯하다. 취재가 시작되자 문제를 시정하는 쪽이 있다면 ‘취재가 끝나도’ 약속이 이행되는지, 말이 바뀌진 않는지 지켜보는 쪽도 있어야 한다. 가려운 곳이라면 얼마든 긁어주고자 노력할 테니 지켜보는 모두가 조금만 더 천천히 식어 주면 좋겠다.
이경민 기자 mean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