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동안 수많은 수학자의 열정과 삶을 요구한 희대의 난제를 제시한 동시에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간단명료한 문장으로 쓰인 명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다. 이 책은 무한대의 도미노를 쓰러뜨리기 위한 투쟁의 역사를 몰입감 있게 그려내며 비전공자도 그 여정을 즐기게끔 한다.
1993년 앤드루 와일즈는 타니야마-시무라의 추론을 완벽히 설명해 내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을 ‘끝내고’ 볼프스켈상을 받았다. 어쩌면 이것이 책의 결론이다. 이 바쁜 시대에 우리는 모든 일의 요약을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배우는 것들은 도통 재미가 없다. 무시무시한 이름인 타니야마-시무라의 추론이 얼마나 위대한 수학의 다리이며 그 배경에 찬란하면서 애상적인 우정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쳐 버린다. 볼프스켈은 페르마의 정리로 생명을 구했기에 감사를 담아 전 재산을 걸어 상을 제정했다. 추론과 정리의 연관성이 밝혀지는 것조차 얼마나 험난했는지, 따라서 와일즈를 ‘끝낸 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 이전의 모든 시도와 좌절들이 쌓은 기반이 엮여가는 것을 읽으면서 마음으로 배운다.
지구만 한 크기의 쇠공에 100만년에 한 번씩 파리가 앉았다가 날아가는 상황이 반복돼 쇠공이 모두 닳아 없어질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그것은 영원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무한과 영원이란 얼마나 놀랍고 두려운 개념인가.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무한의 경우를 만족하는 영원한 진리를 확립하기 위해 엄밀하고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것, 그리고 그러한 수학자의 자부심이란! 이 책으로 인생을 바치고 싶게 할 만큼 매혹적인 수학의 아름다움에 전염되고 말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를 작성할 때부터 어떠한 분야에서 내가 얼마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왔다. 세기의 수학자들은 불확실한 세상에 한 발짝씩 확신을 창조해 왔고,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한 수많은 응용과학에도 이바지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수학의 존재가치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마치 십자말풀이를 하듯 대가성 없는 순수한 즐거움을 추구할 뿐이다. 대학에 와서도 실용적인 공부를 찾고 있는 나에게는 순전히 몰두할 수 있는 학문이나 진로를 발견한다는 것이 가장 부러운 일이다. 인생을 전부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즐거움과 가치를 가진 ‘그것’에 용기를 내어 도전하는 것, 그것이 세상에도 이로운 일이다. 즐기는 자를 어찌 이길 수 있으랴.
진해은(문과대 중문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