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탈락에 월 100시간 통학도
민자 투입 시 거주비 부담 커
선거용 반짝 기숙사 공약 지켜져야
본교 경영대 2학년 A씨는 지난 학기부터 안암학사 프런티어관을 떠나 신설동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대부분 정원이 신입생에게 배정되는 입소 규정으로 인해 2학년은 잔류가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권 타 대학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강원도 춘천시에서 한양대 서울캠으로 통학하는 B씨는 1교시 강의를 위해 2년째 새벽 5시에 일어난다. 왕복 5시간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매일 오간다. 기숙사 확충은 대학생들의 거주 불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꾸준히 거론되지만 저조한 수용률은 좀처럼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과 전문가들은 수용률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를 마련하거나 공공자본을 투입해 저렴한 기숙사를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차례 공약에도 정책은 제자리
지난해 전체 대학 기숙사 수용률은 2022년보다 0.3%p 하락한 23.5%다. 수도권 기숙사 수용률은 18.1% 정도로 상황은 더 심각하다. 연세대 등 신입생 전원을 입소시키는 기숙형 대학을 포함하더라도 수용 인원은 전체 5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
정원 부족으로 기숙사 입소에 실패한 학생들은 긴 통학 시간을 감수한다. 경기도 수원시에서 성균관대 인문사회과학캠퍼스로 통학하는 C씨는 “본가가 수도권이라 지방 거주자 우선권이 주어져 입소하지 못했다”며 “1시간 30분이 넘는 시간을 2번 환승해야 학교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비싼 월세를 내며 자취를 하기도 한다. A씨는 “기숙사에 거주할 때보다 자취를 시작하니 주거비로 매달 30만 원 정도가 늘었다”고 전했다.
선거철이면 낮은 기숙사 수용률을 해결하겠다는 공약이 난무한다. 제19대 대선 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모두 기숙사 확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제22대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은 ‘대학 기숙사의 지속적 확충’을, 더불어민주당은 ‘대학 연합 기숙사 5만호 공급’을 제시했다. 그러나 대학생 표심을 위한 선거용 공약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B씨는 “선거철 기숙사 확충 공약이 나오더라도 선거가 끝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하다”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결국 실행을 안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21대 국회에선 국공립대학 학생 정원 30% 이상의 기숙사 정원을 의무 운영하는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숙사 수용률 하한선을 재설정하려는 시도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기숙사는 학생들을 위한 기본적인 교육 여건이기에 일정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숙사 수용률 일률 도입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5월 제21대 국회 교육위원회는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 보고서에서 “대학에 따라 기숙사 설립·운영을 위한 여건이 상이하고,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기숙사 공실률 상승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일률적인 기숙사 수용률 기준 적용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를 수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기획재정부도 기숙사 규모 및 설치·운영을 일률적으로 의무 규정할 경우 교육여건 변화에 따른 탄력적인 대학 운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 밝혔다. 최은영 소장은 “기숙사 수용률과 가격이 대학 평가에 유의미한 지표로 반영되면 각 대학이 자연스럽게 개선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숙사비 부담 높이는 ‘민자 기숙사’
부담스러운 기숙사 건립 비용에 대학은 자연스럽게 민간 자본을 투입해 자금을 유치하는 ‘민자 기숙사’로 시선을 돌렸다. 과거엔 ‘대학설립·운영규정’ 대통령령으로 ‘교지 안에는 설립 주체 외의 자가 소유하는 건축물을 둘 수 없다’고 규정해 민자 기숙사 설립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지만, 2005년 본령이 개정되면서 민자 기숙사 설립이 가능해졌다. 임은희 연구원은 “당시에도 학생들에겐 기숙사가 필요했지만 대학들이 자체 건립에 금전적 어려움을 겪었다”며 “건설 경기를 부양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흐름과 맞물려 규정이 개정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민자 기숙사가 새로운 부담으로 다가온다. 민자 기숙사의 비싼 가격 때문이다. 대학교육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민자 기숙사는 일반 직영 기숙사에 비해 많게는 2배 이상의 기숙사비를 책정한다. 본교도 직영 기숙사인 학생동의 가격은 1박당 7600원인데 반해 민자 기숙사인 프런티어관의 가격은 1박당 1만3600원으로 상당한 가격 차이를 보인다. 본교 학생동에 거주하는 D씨는 “프런티어관이 시설이 더 좋긴 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럽고 경쟁률이 높아 학생동에 계속 거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은영 소장은 “대학이 민자 기숙사 건립을 통해 학생들에게 금전적 부담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 말했다.
지역사회와의 갈등 넘어 상생해야
최근에는 한국사학진흥재단에서 대학생 주거비 부담 경감을 위해 운영하는 ‘행복기숙사’가 기숙사 수용률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은 지난해 8월부터 서울에 2개의 행복연합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서 건립부지를 제공받아 연합 기숙사를 건립하고, 인근 대학은 입주하는 대학생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태다. 거주하는 학생들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송지영(경영대 경영23) 씨는 지난 학기 안암학사를 떠나 동소문 행복기숙사에 입주했다. 송 씨는 “학교와 가까운 편인데 기숙사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시설도 깨끗하다”며 호평했다.
걸림돌은 건립과정에서 빚어지는 지역사회와의 갈등이다. 조망권 침해와 교육환경 악화를 우려한 지역 주민들이 반대집회를 벌여 동소문 행복기숙사 건립은 4년 가량 지연됐다. 성동구에 추진되던 행당 연합기숙사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건립 자체가 취소되기도 했다. 최은영 소장은 “반대 의견도 존중해야겠지만 기숙사가 필요한 학생들의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며 “주거권과 재산권이 충돌할 때 일방적으로 대학생들의 주거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립과정에서 빚어지는 지역사회와의 갈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지어지는 한국장학재단 대학생 연합 기숙사는 체육시설 등의 주민 복지시설을 함께 조성해 지역사회와 상생 방안을 마련했다. 입주 대학생과 인근 초·중등 학생들 간의 멘토링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임은희 연구원은 “현재 2개의 행복기숙사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대학생 주거문화에 대한 우려가 일정 정도 해소되고 있다”며 “연합 기숙사가 지역사회에 녹아들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와 지자체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기숙사 수용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제도가 뒷받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임은희 연구원은 “공공·행복 기숙사를 확대해 학생들이 좋은 환경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은영 소장은 “기숙사 확대뿐만 아니라 청년 임대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등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 정책 설계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글|유승민 기자 cyanysm@
사진|윤태욱 사회부장 yoonve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