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협조 없인 수사 불가
워터마크·위장 수사 확대해야
미성년자 윤리교육 범주 넓혀야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허위 영상물이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경찰청에 따르면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범죄 발생 건수는 2021년 총 156건에서 2024년 7월 기준 297건으로 증가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른 딥페이크 성적 허위 영상물 심의 요청도 2021년 1900여 건에서 지난해 7200여 건으로 늘었다. 김승주(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탐지 기술을 개발해 딥페이크 허위 영상물을 잡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위장 수사 허용 범위 확장, 형량 하한선 증가, 아동·청소년 윤리교육 확대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 딥페이크 기술을 제대로 알고 있나
“딥페이크가 단순히 조작 여부를 알아채기 힘든 영상, 최근에 나온 정교한 기술이라는 선입견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인 능욕방’ 등 허위 영상물은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딥페이크 봇’ 등 개인이 인터넷 오픈 소스나 어플을 통해 허위 영상물을 제작하는 방법도 새로운 게 아닙니다. 원래부터 포토샵으로 일일이 처리하던 일이 자동화된 것일 뿐이죠.
딥페이크 자체를 나쁘게 볼 순 없어요. 2019년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은 딥페이크를 이용해 말라리아 퇴치 캠페인 영상을 찍었습니다. 딥페이크는 베컴이 촬영한 영어 영상을 토대로 입 모양만 바꿔 9개국 언어를 구사하는 영상을 만들어냈죠. 이렇듯 딥페이크로 고품질 영상을 저렴하게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 텔레그램이 범죄에 악용되는 이유는
“텔레그램은 보안 메신저입니다. ‘종단 간 암호화’라는 보안 구조를 갖추고 있죠. 종단 간 암호화가 적용된 회사 서버는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암호를 해독해 내지 않는 한 수사가 힘듭니다. 보안 메신저가 추적이 어렵다 보니, 범죄에 악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대중화된 텔레그램의 범죄 이용률이 높은 겁니다.
사실 텔레그램은 최고 수준의 보안 메신저가 아닙니다. 카카오톡, 아이폰이 제공하는 보안 메신저 기능과 비슷한 수준이죠. ‘시그널’, ‘위커’ 등 텔레그램보다 보안 수준이 높은 메신저도 많습니다. N번방 사건 당시 조주빈은 성착취물을 일반인에게 공유할 때는 텔레그램을 썼지만, VIP 방에서는 위커를 사용했습니다.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 때도 범죄 공모에 시그널이 이용됐죠.
그럼에도 굳이 텔레그램을 사용하는 건 ‘CEO 후광효과’ 때문입니다. 텔레그램 CEO 파벨 두로프(Pavel Durov)는 러시아 정부가 정보를 요구하자 거절하고 망명했습니다. 정부와 타협하지 않는 CEO의 모습이 사용률 증가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됩니다. 본사가 해외에 있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국제 공조는 절차상 오래 걸리고, 제대로 수사가 안 되기도 하니까요. 보안 메신저의 기술적 차이에 대한 무지와 CEO 후광효과, 해외 기업이라 안전할 것이란 기대가 버무려진 거죠.
아이러니한 건 대통령실, 정부 등 보안 목적으로 텔레그램을 쓰시는 분들이 막상 보안 기능을 안 켜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텔레그램을 이용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안도하는 거죠. 대중은 디테일한 기술은 모르고 이미지만 보고 소비합니다.”
- 현실적인 수사 방안은
“텔레그램 보안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수사가 불가능합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 NSA는 프리즘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영장을 통해 미국 글로벌 테크 기업 서버에 검색 프로그램을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트 기밀이 유출되며 기업들이 모든 서버를 암호화했습니다. 이제는 압수수색을 해도 암호 해독이 어려워 수사가 불가능해졌습니다. 텔레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암호화된 텔레그램 서버를 풀기 위해 국가별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기술로 문제를 푸는 덴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 수사기관은 위장 수사를 합니다. 미국 FBI는 위장 수사를 통해 텔레그램, 다크 웹에서 마약, 성범죄를 잡았죠. 위장 수사 자체가 금지였던 국내에서도 N번방 사건 이후 위장 수사가 허용됐습니다. 다만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로만 국한됐죠. 전체 성범죄로 범위를 늘리지 않는 한 효과는 미미합니다. 영상만 봐서는 미성년자인지, 성인인지 판별이 어려워 위장 수사 시작이 힘드니까요. 텔레그램이 협조하지 않아도 국내법만 손보면 자립적인 위장 수사가 가능해져요.”
- 피해자·피의자 모두 10대가 많다
“미성년자들이 디지털 성범죄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비속어가 오늘엔 일상용어로 인식되는 것처럼 디지털 이미지 편집을 향한 시각이 변하고 있습니다. 미성년자들의 ‘재미 삼아 한 건데요’가 진심일 수 있다는 겁니다. 아동·청소년 대상 윤리교육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단순한 호기심에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거든요. 교육 대상 연령층을 낮춰 디지털 성범죄의 범주와 처벌을 확실히 가르쳐야 합니다. ‘하면 큰일 난다’라고요.
형량 하한선도 조정해야 합니다. 국회는 최대 형량만 논하더라고요. 최소 형량 기준을 높여야 경각심을 줄 수 있습니다. 원래 최대 형량은 잘 선고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량 하한선이 중요한 거죠. 형량이 최소 3년이란 건, 경찰에 잡히면 3년이니 받아들여지는 게 완전히 다르잖아요. 하한선을 명확히 박아 넣자는 겁니다.”
- 2차 가해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디지털 특성상 영상이 일단 올라가면 무한 복제가 가능합니다. 완전 삭제는 불가능해요. 개인이 외장하드에 보관하거나, 오프라인으로도 거래될 수 있으니깐요. 그러니 인터넷을 통해 유포될 확률은 항상 존재합니다.
결국 유포 속도를 억제해야 합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이트를 차단해 범죄자가 VPN 장비로 우회하게 만드는 거죠. 유포 속도를 낮춤으로써 피해자의 고통을 줄이는 데에라도 도움을 줘야 합니다. 그리고 유포를 막을 수 없으니, 법적 처벌을 통해 소지를 금지해야 해요. 아동·청소년 대상 허위 영상물 소지가 배포 의도와 무관하게 처벌되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 디지털 성범죄 예방법은
“디지털 성범죄에서 개인 차원의 예방법은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범죄자는 허가받지 않고 사진을 촬영하거나 퍼가는 등 작정하고 성착취물을 제작하기에 대처할 방법이 없죠.
게다가 탐지 기술도 새로운 범죄를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기존 범죄 기술을 분석한 탐지 기술이 나오면, 그들은 우회 방안을 찾습니다. 탐지 기술은 모든 구멍을 막아야 하지만, 우회 기술은 한 곳만 찾으면 되는 거죠. 공격자는 항상 우위에 있습니다.
현실적인 대응책은 워터마크 의무화입니다. 인공지능이 제작했다는 꼬리표를 붙이는 겁니다. 워터마크를 붙이면 삼성,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하이테크 기업이 개발한 AI 기술이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범죄자의 편집 기술은 조악해서 탐지 기술만으로 걸러낼 수 있거든요.
그리고 디지털 범죄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못 잡을 범죄는 아니거든요. 성범죄와 관련된 모든 것들에 아예 발도 들이지 마셔야 합니다. ‘안 봤어요’란 말은 먹히지 않습니다.”
글 | 하수민·김민서 기자 press@
사진 | 윤태욱 사회부장 yoonve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