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능력’이라는 시집 제목은 이상하지 않았다. 내게 이별은 따로 떨어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별이 발생하는 것과 내가 이별하는 것의 차이라고 하겠다. 맞잡았던 마음을 완전히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놀라울 만큼의 능력이 필요하다.
시집의 첫 시는 ‘발’이고 두 번째 시는 ‘이별의 능력’이다. 능력을 요하는 이별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발로 사랑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발’의 마지막 연에서 무용수들은 손을 발에서 가장 멀리 떨어뜨린 채 쓰러진다. 발이 사랑의 끝을 향해 춤추는 동안 손은 그 여정에서 멀리 떨어져 영원을 기도했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간절히 영원을 바라곤 하지만 많은 것과 이별하고 그때마다 끝을 배운다.
2부의 많은 시는 마주침을 지나 열렬한 사랑을 하는 듯하다. 첫 번째 시인 ‘다정함의 세계’ 속에서 ‘옆’에 대한 네 편의 시를 차례로 읽어본다. 홀로 우뚝 선 것 같은가? 사실 소중한 것이 생길 때마다 당신의 세계에는 ‘옆’이라는 공간이 생겼다. 그러나 아프게도 옆에 대한 시들에서는 집요하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
결국 3부에서는 뭔가가 영영 떠나버린 것 같다. 죽음의 이미지들이 부유한다. 죽음은 영원하다는 점에서 매번 받아들이기 힘든 이별이다. ‘소란과 고요’라는 시 속에서는 심한 바람 속에서 날아온 것들이 다시 날아가기를 반복한다. 우리의 삶은 소란과 고요의 연속이다.
‘고요한 밤이 연기처럼 찾아왔을 때 나는 슬프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슬플 때는 슬픔이 마비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내가 하는 이별’이 시작되는 것이다. 바람이 멎고, 고요가 시작되면 나는 바람 없이도 날아오는 것들을 빗자루로 쓴다. 열매가 떨어지고, 쓸려나가는 것들은 쓰리게 상처를 낸다. 이별을 시작했다는 건 빗자루질을 하겠다는 것이다.
4부는 무엇도 마무리 짓지 않는다. 시집 한 권 동안 파도처럼 밀려온 얼굴들을 만나고, 다정하게 사랑하고, 마지막엔 이별을 해내는 시인은 이제 이별 능력자가 되었을까. 때로는 섬뜩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서툴게 한 편의 이별을 마친다. 이별의 능력은 기르는 것이 아닌가 보다. 우리는 살아가며 멈추지 않는 발로 떠나고 떠나보낼 것이고, 그때마다 마주한 이별에 필요한 만큼의 힘을 낼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때로 주체할 수 없이 힘이 솟구치는 날이 있었다.’
송수원(문과대 철학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