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모르는 사람에게 커피챗을 요청했다. IT 업계 커뮤니티의 CEO에게 다짜고짜 메일을 보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계속할지 말지 고민돼요.” 2023년부터 펫로스 증후군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일 방문자 수도 꽤 되고, 충성 고객이 제법 생겨서 유저들과 내적 친밀감도 쌓인 상태이다. 하지만 회사 일이 바빠지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서비스가 부담되었다. 그렇다고 서비스를 종료하자니 도의적인 책임감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자 팀원들의 이탈도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대표님과의 대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질문은 “지금 가장 두려운 게 뭐예요?”였다. 낯선 질문에 머뭇거리며 답했다. “우리 서비스가 종료되면 충성 유저들의 펫로스 증후군이 더 심해질 것 같아요.” 그랬더니 그가 이것저것 해답을 주었다. 정 힘들면 서비스는 종료하되, 충성 고객에게 따로 연락드리면 된다고도 했다. 그는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해소할 방법들을 조곤조곤 설명해 줬다.

  꽤나 인상적인 질문이었다. 특히나 모르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묻는다는 것이 신선했다. 대표님은 팀원을 채용할 때 항상 두려움에 관해 묻는다고 했다. 이유는 ‘하고 싶은 마음’보다 ‘함으로써 발생할 손해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이기적이기 때문에 더 본심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대표 입장에선 이 사람의 두려움을 내가 해소해 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두려움이 우리 회사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을까를 고민한다고 한다. 그런 두려움을 진솔하게 말하지 않는 사람은 팀원으로 함께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애써 숨기는 진심을 짐작하며 일하는 것은 심리적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이날 커피챗 이후, 나는 두려움에 대하여 더 많이 곱씹게 되었다. 최근 정세만큼 두려움이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시기가 없는 것 같다. 누군가는 민주주의 몰락을 두려워하는데, 다른 누군가는 같잖은 자존심의 추락을 두려워한다. 누군가는 나라 경제의 하락세를 걱정하는데, 다른 누군가는 개인이 누리던 권력의 박탈을 두려워한다. 집단별 두려움의 맨얼굴 앞에 착잡함만 남는다. 대통령과 정치인이란 사람들이 고작 저 정도 수준의 두려움만 가지고 있는 걸까. 나라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에게선 보이지 않는다. 오롯이 개인을 향한 두려움이라, 그 수준이 너무나도 저급하여 처참하다.

  두려움에도 급이 있다는 결론이 나는 요즘, 그리고성찰 없이 자란 어른들의 추악함을 매일 지켜보는 게 답답하고 참담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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