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85%까지 지자체 의존
관객 유치에 어려움 겪어
전력 강화해 성적 올려야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시민들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축구단인 시민구단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인천유나이티드, 강원FC, 대구FC 등 시민구단은 운영비의 약 80%를 지자체 예산에 의존하므로 구단 운영에 있어 지자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자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 이상범(오산대 스포츠지도과) 교수는 “시민구단 자체적으로 마케팅 역량을 강화하거나 성적을 개선해 재정 자립과 독립적인 운영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애물단지, 시민구단
시민구단은 1990년대 후반 수도권에만 집중된 기업구단이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해체되는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축구단 운영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로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이를 활용하려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졌다. 이상범 교수는 “시민구단은 스포츠를 위해서라기보단 축구 열풍을 이용하고자 하는 지자체의 정치적 의도로 창단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구단은 기업구단에 비해 가용 자원이 한정적인 만큼 축구단에 충분히 투자하지 못했고 더딘 성장세 속에서 관객을 유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023시즌 K리그1 한 경기 당 평균 관중을 보면 기업구단인 전북현대모터스는 1만6601명, 울산HDFC는 1만2105명이었던 것에 비해 시민구단인 대구FC는 9300명, 인천유나이티드는 7673명, 강원FC는 4682명에 그쳤다.
만성 적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시민구단은 마케팅이나 성적 향상을 통해 팬을 유입하려 노력하기보다 지자체의 지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경기도 안양시는 FC안양의 연간 운영비 100억 원 가운데 60%를 시 기금인 50억 원과 경기도와 함께 조성한 보조금 10억 원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수원FC는 2024년 운영비 200억 중 85%를 세금에 의존하고 있다. 이상범 교수는 “마케팅이나 성적 향상으로 팬을 유입시키는 것보단 지자체로부터 세금을 받는 게 더 편하고 운영하기 쉽기에 세금만 받아 쓰는 시민구단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3년 차 수원FC 팬 백진현(강남대 경영24) 씨는 “수원FC는 팬이 많지 않아 세금에 어느 정도 의존하는 건 이해하지만 마케팅 개선이나 전력 강화 없이 세금만 받아가는 건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시민구단은 K리그 26개 구단 중 14개를 차지하기에 함부로 없앨 수도 없다. 김천상무FC 마케팅팀 직원 안희성 씨는 “시민구단들이 대비 없이 해체될 경우 K리그 자체의 지역적 기반이 약화돼 전체 리그의 존속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남FC와 상생 계약을 맺은 이랑어학원 권세라 대표는 “비록 팬 수는 적지만 그 애착과 깊이가 강하기에 구단을 없앤다면 반발의 정도가 매우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범 교수 또한 “팬들의 수가 적다고 해도 지자체 선거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이기에 지자체 입장에서도 무턱대고 해체하기는 조심스럽다”고 설명했다.
'시민'구단 아닌 '시립'구단
지자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시민구단은 지자체 개입 없이 자체적인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 이상범 교수는 “사실상 구단 운영 자금의 8할을 지자체에 의존하기에 시민이 주인이 되는 구단이 아닌 지자체에 종속된 구단이다”고 말했다.
성남FC 관계자 A씨는 “구단은 지자체장에게 예산을 받기 위해 지자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며 “지자체장에 의한 낙하산 인사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3년 대구FC는 사무국장직에 대구광역시 퇴직 공무원을 기용했고 2014년 유정복 인천광역시장은 인천유나이티드의 사장직을 맡으며 인천시 공무원을 구단에 파견해 선수단 임명, 구단 예산 운용, 직원 채용 등에 영향을 미쳤다. 2018년 수원FC 단장에는 수원시 군공항 이전추진단장이 임명되기도 했다.
지자체 재정 상황에 따라 구단 운영이 크게 영향을 받기도 한다. A씨는 “구단이 지자체에 의존하는 관계가 지속되면 종종 외부 환경에 따라 구단 운영이 쉽게 흔들리게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인천유나이티드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최 이후 인천광역시의 예산이 부족해 일부 선수들에게 임금을 체불하기도 했다.
시민구단의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낮은 인기가 지속되고, 재정이 부족하니 훈련 시설이나 선수 영입에 투자도 못해 전력을 강화하지 못하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1983년 K리그1 출범 이후 시민구단은 한 번도 K리그1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으며 2024년 K리그가 처음으로 관중 300만 명을 기록했을 때도 관중의 절반 가까이가 기업구단인 FC서울, 전북현대모터스, 울산HDFC에 집중됐다. 안희성 씨는 “시민구단의 성적이 좋지 않아 팬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또 다른 재정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구단에 비해 이적료, 연봉 등 운영비가 적은 시민구단은 스타선수를 영입하기도 어렵다.
시민 참여·전력 강화 유도해야
전문가들은 시민구단이 지자체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려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재정자립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범 교수는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기반으로 효과적인 마케팅을 통해 구단의 존재감을 높여야 한다”며 “마케팅이 성공할 경우 티켓 가격을 높이거나 기업들의 스폰서를 유치해 재정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희성 씨는 “디지털 및 SNS 활용을 늘리고 지역 밀착 사업을 추진해 마케팅 강화에 더 신경 쓸 것”이라고 전했다.
시민 참여를 늘리는 방식으로도 구단의 재정 자립을 도모할 수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50+1 규칙'이라는 법적 장치를 둬 구단의 주요 결정권이 시민에게 있고 외부 투자자의 지분율은 50%를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교수는 “구단이 외부 투자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팬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시스템을 운영할 때 진정한 재정적 자립이 실현 가능하다”고 말했다. A씨는 “지자체 예산의 비중을 조정하고 팬 기반의 운영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구단이 지역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건 매출로 직결되는 시민구단의 성적이다. 광주FC는 재정 운용이 어려운 시민구단임에도 불구하고 2021년 이정효 감독을 선임한 후 자체적인 전력 강화로 2022시즌 K리그2 1위에서 2023시즌에는 K리그1 3위를 차지했다. 이달엔 2024-2025 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에서 국내 프로 구단 중 유일하게 8강에 진출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광주FC 전략기획팀 조지연 프로는 “좋은 성적을 내자 응원 관중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를 기회 삼아 재정 강화에도 힘쓸 것”이라고 전했다.
유소년 발굴 체계를 강화하는 것도 선수 영입 예산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대구FC는 최근 스페인 명문 구단 FC바르셀로나를 벤치마킹해 유소년 시스템을 개편하고 이를 통해 구단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안희성 씨는 “국내 구단의 유소년 시스템 강화는 구단이 미래를 대비하고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구단 내부적으로는 좋은 선수를 발굴해 전력을 강화하고 그렇게 발굴한 좋은 선수를 다른 구단에 판매해 많은 수익을 올리는 선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글 | 김재현 기자 remake@
일러스트 | 박은준 전문기자
사진 제공|백진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