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 장면 연출하고 싶어
동료 믿음에 에스팀 설립
“좋아하는 일 해야 진정한 성공”
김소연(미술교육과 91학번) 에스팀 대표는 32년간 패션업계에서 활동하며 남다른 감각으로 트렌드를 선도해 왔다. 패션모델에서 쇼 디렉터로, 그리고 국내 대표 종합 엔터테인먼트 에스팀의 총괄대표로 자리 잡은 그는 모델 동료들과 함께 패션 너머의 가치를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에스팀을 운영하고 있다. “패션쇼에서 브랜드의 이미지를 설계해 온 경험을 확장해 브랜드와 대중을 잇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요. 대중들이 브랜드가 주는 감각과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배우 꿈꾸다 패션모델 시작
김소연 대표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뮤지컬 영화 <그리스>를 보고 배우의 꿈을 키웠다. “여주인공 ‘샌디’ 역을 맡은 올리비아 뉴튼 존(Oliva Newton-John)을 보고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스크린에서 오래 기억되는 일이 멋져 보였죠.” 김 대표는 미국 유학을 계획하며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학교 때 부모님께 미국에 가서 헐리우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은 대학 진학이 우선이라며 저를 말리셨어요. 결국 미국 유학을 포기했지만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은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죠.”
연기는 포기했지만 김소연 대표의 관심은 여전히 연예계로 향해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음악 방송을 틀어주는 카페에 자주 갔어요. 개성 있는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감각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 시절 저는 입시생이었기에 뮤직비디오를 연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던 미술을 전공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미술을 선택한 데는 아름다움에 끌리는 그의 성향도 한몫했다. “순수미술보다는 팝 아트처럼 시각적으로 확 들어오는 이미지가 더 재밌었어요. 의미가 깊은 작품보다 보기에 예쁜 작품에 더 끌렸죠. 그때부터 미적 감각을 표현하는 작업에 흥미를 느낀 것 같아요.”
김소연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연예계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고려대 미술교육과에 진학했다. “빨리 일을 시작해 연예계에 입성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부모님께서 명문대 입학을 원하셔서 고려대에 왔죠. 애초에 원했던 길이 아니니 학교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학교는 거의 안 갔고 C, D학점이라도 받아서 졸업하자는 마음으로 다녔습니다.” 김 대표는 강의를 듣는 대신 무대 연출 현장을 찾아다니며 꿈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현장에 가서 옷을 나르고 도시락을 배달하는 소일거리를 도맡았어요.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현장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워 시간 가는 줄 몰랐죠.”
대학교 2학년이 되던 해, 김 대표는 장경아 무대 연출가의 권유로 패션모델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연세대 의상학과 친구의 소개로 졸업 작품전을 보러 갔다가 장경아 선생님을 처음 만났어요. 연예계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제게 ‘너는 키가 크니 모델이 어울린다’며 모델 활동을 권하셨죠. 그 말을 듣곤 곧장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모델 일을 시작해 간단한 화보부터 잡지 촬영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어요.”
모델계에서 선호하는 체형과 달라 활동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 “제 체격이 다른 모델들에 비해 큰 편이라 캐스팅이 잘 안 됐어요.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주변에 모델 일을 시작했다고 자랑해 둔 터라 쉽게 포기할 수 없었죠.” 그럼에도 연예계 진출이라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김소연 대표는 모델을 넘어 다른 역할에 도전해 보기로 다짐했다. 김 대표가 다시 선택한 직업은 무대 연출가였다. “뭐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장경아 선생님을 다시 찾아가 조수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모델이 아닌 연출가 조수로서 무대에 참여하며 패션쇼를 어떻게 구성하고 연출하는지, 무대 연출이 어떻게 분위기와 감정을 끌어내는지 배웠습니다.”
신뢰와 소통으로 패션쇼 만들어
쇼 디렉터로 전향한 김소연 대표는 대학 졸업 후 2002년까지 모델라인과 DCM에서 일하며 본격적으로 패션쇼를 연출했다. 그는 2001년 평양에서 열린 ‘이영희 한복쇼’를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로 꼽는다. “쇼 연출은 대부분 비슷한데, 북한에서 제가 직접 연출한 무대를 선보였다는 점이 특별했어요. 같은 민족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무대를 완성했기에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해외 공연 경험이 많았던 금강산가극단원들이 현장을 도와주시며 편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셨어요. 북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이 폐쇄적이고 고립됐다는 제 편견도 깨졌습니다.”
그가 쇼를 연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다. “패션쇼는 단순히 옷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에요. 관객이 쇼에 입장한 순간부터 브랜드와 상품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어떤 인상을 안고 돌아갈지까지 철저히 설계해야 하죠. 1997년 ‘마크제이콥스’라는 명품 브랜드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여유로운 카페 분위기에서 제품을 선보이면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해 패션쇼 세트장을 카페처럼 만들어 제품을 처음 선보였죠. 쇼를 본 사람들 대부분이 카페 같은 쇼장의 분위기와 브랜드의 감성과 너무 잘 어울린다고 극찬했어요.” 그는 패션쇼의 완성도가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신뢰와 소통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대는 모델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에요. 조명감독,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처럼 무대를 함께 만들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더해져야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쇼가 되죠. 각자의 감각이 어우러져야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는 무대가 완성되거든요. 저도 쇼를 준비할 때 모델이나 스태프들과 충분히 소통해 협업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늘 노력했어요.”
하지만 화려한 무대 뒤 일상은 녹록지 않았다. “일주일에 20개가 넘는 쇼를 소화하느라 집에 들어갈 틈도 없었어요. 새벽까지 일하고 쪽잠을 자다가 다시 리허설 현장으로 가는 생활을 견디다 보니 어느 순간 제 삶이 없단 생각이 들었죠.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내 삶이 없다면 의미 없단 생각이 들어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김소연 대표가 다시 패션업계에 돌아올 결심을 한 건 에이전시를 설립해달라는 동료 모델들의 요청 때문이었다. “처음엔 회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함께 일했던 모델들이 ‘언니는 회사를 운영해도 잘할 수 있다’고 저를 설득하더라고요. 제가 단순히 패션쇼를 연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준 동료들에게 큰 감동을 받았죠.”
김소연 대표는 동료들의 믿음에 힘입어 2004년 모델 에이전시 에스팀을 설립했다. “적금을 다 털어 회사를 세웠지만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하지만 이 회사는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곳이라는 믿음으로 버텼죠. 단순히 모델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김 대표는 에스팀에서 기존 에이전시와는 다른 운영 방식을 도입했다. 모델료와 무대 운영비를 명확히 분리해 지급하고 모델료는 일주일 안에 정산했다. “많은 에이전시가 모델료와 무대 운영비를 구분하지 않아 모델들이 자신이 받는 정확한 금액을 알기 어려웠어요. 추가 비용을 모델료에서 차감하는 일도 빈번했죠. 우리는 모델료를 투명하게 나눠 모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모델들이 연기나 가수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했다. “모델은 활동 수명이 10~15년으로 매우 짧아요. 처음부터 함께 회사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니 모델 활동 이후의 진로도 함께 고민해 주고 싶었죠. 그렇게 하나둘 새로운 도전을 함께하다 보니 에스팀은 모델 에이전시에서 종합 엔터테인먼트로 나아갔습니다.” 자본금 3천만원과 5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에스팀은 동료들의 더 나은 업계 생활을 보장하며 함께 회사를 만들어 가겠다는 목표 아래 국내 대표 종합 엔터테인먼트로 우뚝 섰다.
“모두가 즐거운 일터 만들어야”
2010년대 들어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김소연 대표는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회사가 잘되면서 저와 직원들은 모델 에이전시 1등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어요. 모델들 사이에서도 실적이 좋지 않은 모델은 홀대당했고 잘 나가는 모델은 더 높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죠. 당시 사내 분위기는 경직되고 직원들 사이에서는 긴장감만 넘쳤습니다.”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2015년 종무식에서 모델 장윤주 씨가 낭독한 편지 덕분이었다. “윤주 씨가 ‘우리가 업계 1등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함께 하기에 의미 있는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낭독했어요. 그 말을 듣고 모두가 눈물을 흘렸죠. 그날 이후 에스팀은 1등 회사라는 이름에 매몰되기보다 모두가 즐거운 회사를 만들자는 방향으로 나아갔어요. 업계에서의 위치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다 보니 1등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제 슬럼프도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김소연 대표에게 에스팀은 새로운 도전을 위한 발판이 되기도 했다. 그는 현재 ‘사물 매니지먼트’ 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인물 중심의 매니지먼트를 해왔다면 앞으로는 아티스트가 신거나 입고 사용한 물건처럼 의미가 담긴 사물로 그 범위를 확장하고 싶어요. 브랜드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더욱 깊고 진정성 있게 연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가 구상 중인 사물 매니지먼트는 단순한 물품 보관을 넘어 각 사물이 지닌 역사와 상징성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작업이다. “마이클 잭슨이 입었던 옷처럼 아티스트의 삶이 담긴 물건들은 그 자체로 역사이자 문화죠. 저는 그런 것들을 박물관처럼 의미 있게 관리하고 싶어요.” 그는 K팝과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금이야말로 아티스트뿐 아니라 그들이 남긴 흔적까지 체계적으로 보존해야 할 시기라고 말한다. “한국이 가진 대중문화 자산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킬 기회라고 생각해요. 에스팀 소속 인플루언서들과 엮어 다양한 시도도 준비 중이에요.” 그는 매니지먼트의 범위를 ‘인물’에서 ‘작품’으로 넓혀가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아티스트뿐 아니라 그들이 만든 작품이나 콘텐츠도 매니지먼트 대상이 될 수 있어요. 저는 더 넓은 의미의 아티스트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김소연 대표는 고려대 후배들에게 진정한 성공이란 자신의 길을 즐겁게 걸어가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좋은 직장에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저는 남들이 말하는 성공에 집착하기보다 잘하는 일을 찾아 뛰어들었던 제 대학 시절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들도 부모님이 만들어 준 내 모습이나 사회가 만들어 준 내 모습에 갇히지 말고 정말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을 수 있는 대학 생활을 하길 바라요.”
글│김규리 기자 evergreen@
사진 | 안효빈 기자 light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