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농도가 옅어지면 숨 또한 옅어지는 이들이 있다. 뜻밖일 수도 있겠으나 조치원은 그런 이들에게 구석구석 상냥함을 품은 마을이다. 맑은 밤이면 단란한 별의 무리가 마음에 총총히 박히고 토실토실 살 오른 길고양이들이 순하게 다가와 몸을 비빈다. 조치원 골목 사이에는 숨죽인 음악과 짙은 커피 향이 안개처럼 흐른다. 낭만의 안개를 뚫고 삐져나오는 영사기 불빛을 따라 걷다 보면 조그마한 독립 영화관에 발길이 닿는다.

  조치원역에서 5분, 조치원 터미널에서 2분 거리에 자리한 시네마 다방은 국내 개봉한 독립 예술 영화들을 시간대별로 상영하고 있다. 사전에 공지된 상영 시간표를 참고해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하거나 현장에서 표를 살 수 있다. 좁은 상가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영화 포스터로 세심히 꾸민 벽이 드러난다. 반 뼘 크기의 스티커 종이에 손 글씨가 꾹꾹 눌러 적힌 영화표가 참 귀엽다. 넓고 쾌적한 상영관에는 큼지막한 소파가 놓여 있어 편안히 반쯤 누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내부의 각종 영화 관련 소품들과 턴테이블, 엽서, 포스터에는 상영관을 운영하는 이들의 정열과 애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조치원의 영화 사랑은 비단 오늘날만의 것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조치원 교리에 일본인 관객을 위한 극장이 설립됐고 해방 이후 왕성극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왕성극장은 영화 상영뿐 아니라 다양한 공연이 이뤄지고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조치원의 소중한 문화 공간이었다. 90년대 대중문화 시설이 발전하며 왕성극장은 폐관했으나 시네마 다방이 그 뜻을 물려받아 지역 문화와 독립 영화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시네마 다방은 지역 대학생 단편 영화 제작 지원, 조천변 영화제 개최 등 조치원과 독립 예술 영화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이어가는 중이다. 시네마 다방은 영화와 예술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공간이 틀림없다. 새로운 낭만을 찾아 조치원 골목을 누비는 이들에게 이곳을 조심스레 추천해 본다.

 

고현(글비대 한국학23)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