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기자
김재현 기자

 

  2006년, 당시 유벤투스 FC 단장 루치아노 모지는 특정 경기에 대해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불리한 판정을 한 심판을 공격하기 위한 언론플레이, 세무조사 회피를 위한 수사기관 로비, 이적 협상 불법 개입까지 서슴지 않았다. 일명 칼초폴리라 불리는 스포츠계 최대의 스캔들이었다. 

  루치아노 모지는 범죄 공모죄 및 스포츠 사기죄를 선고받았다. 구단도 징벌을 피해 갈 순 없었다. 명문 유벤투스는 2부리그 강등이라는 치욕을 맞았다. 스타 선수들은 연달아 팀을 떠났고, 명망 높던 흑백 줄무늬 유니폼은 이내 부패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떠나지 않은 이들은 있었다. 그중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는 떠나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팬들에게 그 유명한 한 마디를 남겼더랬다. “신사는 숙녀가 필요로 할 때 떠나지 않는다.”

  낭만을 바라보며 충성심, 의무감이라는 무형의 가치에 인생을 갈아 넣는 사람들이 어리석어 보일 때가 있었다. 손흥민을 보면서도 그랬다. 2018년 장기 계약을 체결하고 2021년에 재계약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선수로서 가장 전성기의 나이에 우승과는 거리가 먼 구단에 10년 가까운 커리어를 바친다는 게 솔직히 바보 같아 보였다. 

  그랬던 그에게 마지막 우승 기회가 찾아왔다. 유럽대항전인 유로파 리그의 결승전 토트넘 홋스퍼의 주장 완장을 찬 손흥민은 지난 한국 시각 22일 새벽 잉글랜드의 빅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대0으로 꺾고 41년 만의 유로파 우승컵을 차지했다. 

  태극기를 두르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며, 그동안 품어왔던 한 가지의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우리는 나오지 않는 성과에 대해 너무 쉽게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타인을 조롱하고, 성급하게 성과를 요구했던 건 아닐까. 단 한 번도 떠나지 않았기에 그는 그날 누구보다 뜨거운 환호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22일 새벽 6시 30분, 헌신의 성과는 느리게 도착할 때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지만은 않는다는 걸 경기를 보고 조금은 깨달았던 것 같다. 떠나지 않았던 델 피에로는 어떻게 됐을까? 팬들을 위해 기꺼이 팀에 남은 신사는 2011-12시즌, 흑백 줄무늬의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고 다시 한번 세리에A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리그 마지막 경기인 아탈란타전. 그는 교체 아웃되며 전 구장이 일어나 보낸 기립박수 속에서 유벤투스 생활을 마무리했다. 

 

김재현 기자 rem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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