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중‘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중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레이먼드 카버

 

  단편 소설의 생명은 경제성이다. 좋은 소설은 한 단어를 빼도 한 단어를 더해도 무너지는 정교한 구조물이다. 아주 유구한 소설 창작 강령이다. 그런 만큼 ‘미니멀리즘 소설’이라는 양식은 어딘가 어색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애초에 미니멀리즘이 소설 창작의 기본자세인데 그렇게 따로 분류해야 할 만큼 차별화되는 점이 무엇일까. 어쩌면 그들의 방식은 이제 누구나 아는 정석으로 자리 잡아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걸까? 이게 카버의 명성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다.

  <대성당>의 수록작 ‘깃털들’에서 눈에 띈 건 묘사와 대사였고 그건 나를 당혹스레 만들었다. 내게 세밀한 묘사와 지면의 경제성은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수록작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읽으면서 재고하게 됐다. 이 소설의 묘사는 단순히 장면을 그리는 걸 넘어 이면의 무언가를 암시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 공간에서 무언가를 암시할 수 있는 기호만을 골라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결말에 빵집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날씨가 추워 히터를 켰다는 서술과 앤과 프랭클린 가족이 조우할 때 앤이 무언가를 더 듣고 말하고 싶어한다는 심리 묘사가 그랬다. 둘 다 이후의 훈훈한 결말에서 활용되는 정보였다. ‘너무 슬펐는데 그 사람이 이런저런 느낌을 주어서 위로가 됐어’ 따위의 서술이 아니라, 작품 내내 철저한 ‘보여주기’가 이뤄졌다고 느꼈다. 그게 곧 경제성과 예술성으로 직결되고 있는 것 같았다. 예술은 뻔해선 안 되고 우회해서 묘사하며 조금 모호할지라도 새로운 걸 제공하는 데 위력이 있다는 점을 헤아려볼 때, 이는 잘못된 추론 같지 않았다. 좋은 묘사는 오히려 경제성과 예술성에 이바지한다는 것. 이 소설에서 배운 교훈이었다.

  커버의 소설을 읽고 나면 항상 들었던 생각이 ‘이 분량을 이 줄거리로 채웠다고?’였다. 언뜻 보기에 이는 미니멀리즘과 반대되는 특성 같기도 했다. 간소한 줄거리를 간소화해서 쓰면 당연히 분량은 짧을 테니까. 나는 막연히 오 헨리 같은 아주 짧지만 강렬한 소설을 상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그보다는 차라리 간소한 줄거리를 아주 압축된 디테일로 깊이 있게 쓴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농밀하다는 말이 가장 어울렸다. 분량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캐릭터도 많고 대사도 많았지만 상관없었다. 이 소설이 압축한 걸 전부 풀어쓰면 이것보다 세배는 더 길 거다. 최소한의 문장과 기호로 최대한의 깊이를 보여주는, 예컨대 ‘실압근(실천압축근육)’ 같은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에녹(문스대 문예창작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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