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은 흉조 아닌 각성의 메시지
꿈 작업으로 치유 경험하기도
“내면 탐색 위해 꿈 기록해야”
신의 예언, 초자연적 메시지 등으로 해석되던 꿈은 20세기 초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꿈의 해석>과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꿈 분석>을 시작으로 심리학계의 연구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점차 꿈을 환상이 아닌 무의식을 나타내는 언어로 바라봤으며 꿈의 해석은 인간 내면을 탐색하는 도구이자 심리 치료의 단서가 됐다. 고혜경(치유상담대학원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무의식의 언어인 꿈은 꾸는 사람의 경험에 관련된 정도로만 해석할 수 있다”며 “해석에 몰두하기보다는 꿈을 기록하고 타인과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 꿈을 연구하는 이유는
“꿈은 인간이 겪는 보편적인 경험을 개개인의 이야기로 형상화한 것이에요. 프로이트가 ‘꿈은 내 마음의 왕도’라고 말했듯 꿈이야말로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죠. 나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내면의 기억과 경험 혹은 심리 상태가 꿈 속에서는 그대로 드러나니까요. 꿈 연구에서는 무의식인 꿈을 들여다보며 내면을 탐구하는 데 집중합니다. 개인의 경험과 감정에 비춰 꿈을 바라본다면 자신을 깊이 이해할 수 있죠.”
- 대표적인 연구 방법은
“꿈을 연구하는 방법은 크게 1대1 개인 분석과 그룹 투사 꿈 작업으로 나뉩니다. 먼저 1대1 개인 분석은 내담자가 꿈을 상세히 서술하고 심층·분석심리학자와 함께 꿈 이야기를 하면서 내면의 감정, 개인적 경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작업으로 내면에 숨겨진 무의식적 욕망과 갈증, 나아가고픈 삶의 방향을 탐색하는 연구 방법이죠. 그룹 투사 꿈 작업은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꿈을 공유하는 방식이에요. 각자 다른 사람의 꿈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라면 어떤 기억, 감정이 떠올랐을지를 추측하죠. 타인의 꿈을 빌려 내 경험과 감정을 돌아보는 게 주된 목적입니다. 두 방식 모두 대화를 통해 자신의 내면 깊이 들어가 보는 거죠.”
- 가장 인상적인 연구로는
“2013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8주간 그들의 꿈에 대해 분석하고 상담하는 작업을 했어요. 한 내담자는 첫 만남 때 바다에서 김을 건져 김국을 끓였다는 꿈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빨간 체육복 바지를 입었다가 잡혔고 애국가를 4절까지 외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한 트라우마를 갖고 계셨죠. 심층심리학에서 바다는 무의식을, 음식은 영적인 자양분을 뜻하기에 무의식 깊은 곳에서 자신의 삶과 아픔을 끌어올려 의미 있는 자양분으로 바꿔내셨다고 읽어냈어요.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트라우마가 박혀 있지만 이를 혼자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를 위한 자양분으로 써서 극복해 나가겠다는 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내담자는 오랜 시간 약물, 술 등에 의존하며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셨기에 꿈을 해석하며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행위 자체가 엄청난 치유였죠.”
- 왜 악몽을 꾸는가
“모든 꿈은 꿈꾸는 사람의 건강과 성장을 돕기 위해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예요. 엄밀히 말해 꿈 연구에서 악몽은 없죠. 예컨대 심층심리학에서 죽는 꿈은 개인의 성장과 변화를 의미한다고 해석해요. 지금의 내가 죽어야 성장할 새로운 내가 태어나기 때문이죠.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꿈 역시 불길하게 받아들이기보다 부모님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한다는 성장의 표식으로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합니다. 반대로 도망치는 꿈은 성장에 대한 두려움, 변화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는 무의식의 욕망입니다. 현재에 안주하고 보호받기를 원한다는 메시지죠.
이렇듯 꿈마다 의미를 구분하지만 ‘죽는 꿈은 성장, 도망치는 꿈은 저항’과 같이 공식화하면 안 됩니다. 꿈은 꾸는 사람의 경험과 감정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개인의 상황에 맞게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해요.”
- 미래를 예언하는 꿈의 의미는
“꿈속 무의식의 시간은 일상과 다르게 흐른다는 특징이 있어요. 일상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순서대로 흐르는데 꿈에선 순서가 뒤죽박죽이죠.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무의식 속 정보가 꿈에서 순서 없이 나열되고 그 수많은 정보 속 우연히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정보를 예지몽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태몽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종종 태몽에서 호랑이, 용, 탐스러운 과일처럼 매우 상징적이고 귀한 물건을 봅니다. 출생을 암시하는 징조라기보다는 꿈꾸는 사람의 무의식이 생명이라는 고귀한 존재를 담고 있기에 이것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 꿈을 꾸다 잠꼬대를 하기도 한다
“잠꼬대는 반드시 꿈을 꿔야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무의식과 깊이 연관돼 있습니다. 자신을 살펴봐달라는 무의식의 연극이라 볼 수 있죠. 잠꼬대를 많이 하는 사람들에겐 두 가지 심리가 있어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않는다는 좌절과 설득력 있게 내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불만이죠. 이런 갈증이 강하면 언어로 바뀌어 잠꼬대로 흘러나옵니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도 잠꼬대를 하나의 언어로 인지하고 당사자도 갈증의 단초를 찾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한다면 보다 성숙한 인간관계를 꾸릴 수 있습니다.”
- 가위눌림은 어떻게 봐야 하나
“가위눌림은 생리적·심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꿈을 꾸면 뇌에서는 몸이 움직이지 않도록 근육 활동을 억제하는 글리신과 억제 신경전달 물질 GABA를 분비해요. 얕은 수면 상태에서 깨어날 때 이 신경 물질들의 분비도 멈춰야 하지만 제대로 억제되지 않는다면 의식은 깨어 있다고 느끼는데 몸은 여전히 마비 상태인 가위눌림을 겪게 되죠. 심리적으로는 현실의 자신과 무의식이 원하는 자아를 통합하려는 시도로 바라봅니다. 마비 상태와 같은 강한 충격으로 의식이 무의식 속에 억압된 자아를 인식하기를 바라는 무의식의 신호죠. 어릴 적 가위에 눌리면 계속 징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신호에 응답해 천주교 사제가 된 사례도 있어요.”
- 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카를 융은 꿈꾼 사람이 자신의 꿈을 가장 모른다고 말했어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무의식의 시도가 꿈인데, 꿈을 해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인지 능력 안에 꿈을 가두는 것이기 때문이죠. 아무리 깊이 해석한다고 발버둥 쳐봐야 누구나 자신이 아는 영역까지만 읽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꿈이 진정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이해하려면 일단 기록해야 합니다. 꿈 내용을 녹음하거나 글로 적는 등 모든 무의식을 기록하고 연상하세요. 이후 기록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꿈을 소재로 대화하다 보면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는 물론 상대를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습니다. 꿈까지 신경 쓰긴 바쁘다고 무의식이 던지는 메시지를 외면하다 보면 자아는 표류하고 내면에는 불안과 초조가 쌓일 수 있죠. 많은 사람들이 꿈을 적극적으로 탐색해 자신을 알아가기 바랍니다.”
글 | 김정린 기자 joring@
사진 | 안효빈 기자 light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