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가을의 시작이라 부르기에는 어딘가 어색하다. 입추가 지났지만 더위는 좀처럼 물러나지 않는다. 달력의 날짜는 가을을 향해 가고 있지만 나는 늘 그렇듯 계절의 변화를 한발 늦게 체감한다. 완벽히 준비하지 못한 채 맞이하는 2학기도 모든 시작은 설렘이 불안을 이기는 순간 비로소 가능하기에 미완성의 미학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개강을 하면 동기, 선후배와 오랜만에 만나 술자리를 가질 일이 많다. 나는 술자리에서 오가는 인생이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소주 한 잔에 털어 넘기는 게 아직 어렵다. 헐떡고개를 넘어 내려가 왼편으로 가면 칵테일 바 ‘바비런던’이 있다. 이곳은 인생이 쓰면 술이 달다는 말이 잘 와닿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게 안에는 고풍스러운 나무 탁자와 생김새가 각기 다른 소파가 놓여 있다. 책장에는 LP판이 가득 꽂혀 있고 빈 술병들도 진열돼 있다. 수많은 빈 병과 벽에 붙은 포스트잇을 보고 있으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지 궁금해진다. 은은한 조명과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도 분위기를 더한다.

  바비런던에는 2시간 30분 동안 무제한으로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메뉴가 있다. 술이 약한 사람은 한 잔씩 주문해도 좋다. 칵테일을 처음 마셔보는 사람이라면 사장님께 취향을 설명하고 추천을 받을 수도 있다. 내가 추천하는 메뉴는 피나콜라다다. 파인애플과 코코넛의 조합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첫입에 느껴지는 상큼한 파인애플 맛, 뒤이어 은은하게 번지는 코코넛 향과 달콤함은 누구라도 매력을 느낄 만하다. 칵테일뿐 아니라 다양한 해외 맥주와 쌉싸름한 포도주도 있어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곳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안주로는 감자튀김, 피자, 마른안주 등이 준비돼 있는데, 모두 칵테일과 잘 어울린다.

  여러 가지 맛이 섞인 칵테일 한 잔처럼 계절도, 새로운 시작도 한 가지 맛으로 정의할 수 없다. 어떤 맛이 날지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불확실함 속에서 피어나는 설렘으로 2학기를 채워 보면 어떨까.

 

고명준(과기대 전자정보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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