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빠르고 세상은 변해간다. 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표현을 체감하곤 한다.
“로봇청소기는 어떤 브랜드로 살까?” 혼수를 준비 중인 동인에게서 세월의 속도감을 느꼈다. 편집국에서 함께 밤을 새우던 사람이 결혼하다니, 시간이 가속하며 흐르는 듯싶었다. 세상도 대학생이 신랑이 되는 사이에 변했다. 이는 국산 대신 중국산 로봇청소기를 자연스레 추천한 내 답에서 알 수 있었다.
IT 전문지 기자로 일하며 가장 크게 실감한 것은 중국산 가전제품의 올라온 위상이었다. 아직 일부 품목에 한하지만, 중국산 가전은 더는 가성비 제품으로만 취급받지 않는다. 국내 프리미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로봇청소기가 대표적이다. 로보락을 필두로 에코백스, 드리미 등 중국 브랜드는 국내 프리미엄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중이다.
싸게 사고 금방 버리는 제품이 중국산 가전이란 말이 통용되는 우리나라였다. 그런데 대당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중국산 로봇청소기에 소비자 지갑이 열리고 있다. 공격적인 프로모션 덕분일까? 그 영향도 무시할 순 없겠으나 본질은 아니다. 중국산 로봇청소기가 국산 로봇청소기보다 성능 면에서도 소비자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의 대표 가전기업을 다니는 취재원이 기자인 내게 “로봇청소기는 중국 거 사세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한 것과 맞닿아있다.
로봇청소기는 AI,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등 모든 부문에서 최첨단 기술을 도입해야 하는 제품이다. 이런 기술 집약적인 가전에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중국의 로봇청소기 궐기는 박리다매와 내수 시장 중심으로 성장해 온 중국 가전기업이 이젠 기술력을 앞세워 우리나라 가전기업과 본격적으로 경쟁한다는 신호탄이다.
이제 중국 제품의 기술력이 우리보다 떨어진다는 고리타분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우리나라 기업이 1위를 수성하고 있는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 중국 기업을 ‘맞수’로 여겨야 한다. 그래야만 중국의 성장을 냉정하게 판단하며 우리가 지닌 기술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일본이 우리에게 글로벌 가전 시장을 내준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세월은 빠르고 세상은 변해간다. 아직 머나먼 미래처럼 느껴지지만, 나도 동기처럼 눈 깜짝할 새 결혼을 할지 모르겠다. 그 미래엔 세상이 또 한 번 변하길 바란다. ‘3대 이모님’ 중 하나로 불리는 로봇청소기를 고를 때, 당연하게도 국산 브랜드를 선택하는 미래를 그려본다.
<찰리>
